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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몸을 캔버스로 삼은 여자

입력 : 2016-06-21 20:58:55 수정 : 2016-06-21 22:5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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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해방’ 주창하는 작가 오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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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의 성형수술을 한 프랑스 여성작가 생 오를랑(69)은 외모 자체도 평범치 않았다. 위로 치켜세운 머리카락을 흰색과 검은색으로 반씩 염색했고, 눈썹과 이마 사이 관자놀이엔 초승달 모양의 혹을 달았다. 일부러 그렇게 성형수술을 한 것이다. 아름다워지기 위해 수술한 것이 아니라 성형의사에게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수술을 해보자고 제안해서 이뤄진 결과다. 10월 2일까지 전시가 열리는 성곡미술관에서 그를 만났다.

“인간, 특히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압력에 관한 것이 나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50년 이상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작업한 오를랑. 그는 과거의 정치·사회·종교가 우리의 몸, 특히 여성의 몸과 정신에 가한 낡은 정체성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개념의 신체를 제시한다.
그는 자신의 신체를 직접적인 예술작업의 재료로 선택했다. 굳이 그리 한 이유는 타인의 신체로 작업하기보다는 자신의 몸으로 하는 편이 더 쉽다고 생각해서다.

“나는 미술사를 아이로니컬하게 바라본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상화된 모습은 오늘의 성형문화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는 정형화된 얼굴 성형의 모습과 사진의 포토샵 처리에서 과거의 미술사를 본다.

“15세기 르네상스 초기 이탈리아 작가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보라. 보티첼리가 붓과 물감으로 이상화된 비너스를 그렸다. 오를랑의 포토샵 처리와 뭐가 다른가. 나는 성형수술을 통해 그런 것들을 해체하고 싶었다.”

중국의 전통가면극에서 영감을 얻은 ‘베이징 오페라 가면’, 스마트폰 앱을 통해 증강현실도 체험할 수 있다.
그는 획일적인 것에 반기를 든다. 인간을 억압하는 종교적, 성적, 인종적 차별에 끊임없이 저항했다. 사회가 정한 여성성과 미의 기준에 직접 맞서기 위해 캔버스 대신 자신의 몸을 창작의 도구로 선택했다. 그의 몸은 끊임없는 변형을 통해 어떠한 기준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몸으로 재탄생한다. 성형수술을 퍼포먼스하듯 생중계한 것은 대중과의 강한 소통을 위해서다.

“모두 다 섞이자고요!”

그의 외침에는 우리 모두가 다르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다. 이미 같은 것은 섞일 필요도, 섞일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그의 예술세계에서는 역사, 문화적으로 주입된 여러 가지 기준과 관념들이 차례로 용도 폐기된다.

“나의 몸은 정말 나에게 포함된 것인가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내 몸을 규정하던 외부의 압력과 권력중심적인 잣대들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를랑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성모를 분장하고 찍은 사진. 종교가 부여하고 있는 여성의 가치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몸을 주체적으로 다룰 권리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육체적 한계에 대한 도전은 나아가 몸을 둘러싸고 있는 인식의 한계로부터 자유를 이끌어 낸다.

더 이상 성형수술을 할 수 없게 된 오를랑은 호주 과학기술연구소와 협업하여 자신의 피부 세포와 흑인의 태아세포, 그리고 포유동물들의 세포들을 교배 배양한 세포들을 영상으로 담아 생물학적 융합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미래의 새로운 몸에 대한 탐구다. 육체와 영혼, 감성과 지성을 갖춘 ‘만물의 영장’이란 관념으로부터도 해방이다. 생명공학과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끄는 몸이 떠올려진다.

그는 인터뷰 서두에 “내 피부에 이식된 기계에 배터리를 넣으면 어떤 외국어도 할 수 있는데 서울에 오니까 그 기계를 찾을 수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기술을 통한 과거 인간의 정체성으로부터 탈피를 넌지시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온갖 굴레로부터의 인류해방이라 할 수 있다.

“인류문명사는 몸의 확장사라 할 수 있다.”

오를랑는 파리 퐁피두센터, 팔레 드 도쿄, 오르세 미술관 등에서 전시를 가졌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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