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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강빛 머금은 비 오는 날의 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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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07 10:00:00 수정 : 2016-07-06 21:2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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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탄금대
열두대 전망대서 바라본 열두 개의 풍경, 열두 개의 단상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우륵은 가야의 멸망을 한탄하며 가야금을 연주했을까
마주 선 탄금대교와 우륵대교 사이 강빛에 잔뜩 찌푸린 하늘이 데칼코마니를


충북 충주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합수머리 위를 비를 머금은 구름이 지나가고 있다. 달천 위로 놓인 교각이 물결치듯 춤추는 탄금대교와 달천과 합류한 뒤 흐르는 남한강 위로 가야금의 열두 줄을 형상화한 우륵대교가 만나 ‘여덟 팔(八)’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탄금대는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한 명인 우륵이 풍경을 바라보며 가야금을 뜯은 곳으로 전해진다.
전국에 있는 큰 강줄기는 저마다 갖가지 사연을 안고 수백 수천 년을 흐르고 있다. 변함없이 그 자리를 꿋꿋이 흐르면서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품는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마음속 깊은 사연을 강물이 알 리 없을 터인데, 희로애락을 품고 있는 물줄기를 보면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만감이 교차한다. 흐르는지 마는지 모를 정도로 우직하게 흐를수록 그 깊이는 더한다.

충북 충주의 탄금대에서는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합수머리와 용섬을 내려다볼 수 있다. 큰 폭의 강줄기 하나로는 외로운 듯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탰다. 강원도에서 발원한 남한강과 충북에서 시작된 달천이 탄금대 앞에서 만나 서울 방향으로 흐른다. 달천 위로 교각이 물결치듯 춤추는 탄금대교와 남한강을 가로질러 가야금의 열두 줄을 형상화한 우륵대교가 ‘여덟 팔(八)’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잔잔한 물결의 강 한 줄기만 흘러도 그 풍경에 빠져들 텐데, 두 줄기가 모인 곳이니 옛 성현들도 풍광을 그냥 지나치진 않았다.

탄금대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3대 악성(樂聖) 중 한 명인 우륵이 풍경을 바라보며 가야금을 뜯은 곳으로 전해진다. 신라에 귀화한 가야인 우륵은 충주에 머물렀는데, 우륵이 이곳에 터를 잡아 가야금을 연주하자 사람들이 점차 모여 마을을 이뤘다고 한다.

우륵이 연주했던 음악이 망해가는 가야의 슬픔을 노래했을지, 새로운 나라의 축복을 읊었을지 모르지만 탄금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에게 많은 영감을 줬을 것이다.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했던 때부터 1000여년이 흐른 뒤 탄금대는 피비린내나는 슬픈 역사의 현장이 된다.

임진년(1592년) 신립 장군과 결사대가 왜군을 맞은 자리다. 무참히 패했다. 신립 장군과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않은 8000여명의 군사는 이곳을 마지막 격전지로 삼아 조총으로 무장한 2만여 왜군과 맞섰다. 앞에서는 왜군이 몰려오고, 뒤에는 강이 흘러 물러날 곳도 없는 ‘배수의 진’을 쳤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인 줄 예상은 됐지만, 결과는 처절했다. 이곳에서 패배로 임금 선조는 피란길에 오르게 된다.

패장은 말이 없다지만, 탄금대 전투의 패배는 북방 오랑캐를 벌벌 떨게 한 신립 장군의 공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험준한 요새였던 조령에서 전투를 벌이자는 부하 장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벌판에서 왜군과 붙은 것은 신립 장군을 무능력한 장수로 각인시켰다. 더구나 원군으로 온 명나라 이여송이 조령을 지나다 “천혜의 요새를 지킬 줄 몰랐던 신 총병도 지모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했다는 말이 ‘징비록’에 기록돼 신립 장군에 대한 패장 이미지가 강조됐다.

하지만 조령에서의 전투가 왜군 선봉군은 막을 수 있어도, 조령 옆으로 난 하늘재나 이화령으로 진군하는 왜군을 상대할 수 없어 이들을 한 번에 상대하기 위해 탄금대 벌판을 선택했다는 얘기와 당시 농민들이 대부분이었던 군사들을 이끌고 전투를 벌이다 보니 배수진을 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신립 장군에 대해 어떤 평가가 내려지든 당시 도망가기 급급했던 조선 장수 중 목숨을 걸고 항전한 얼마 안 되는 장군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여행객들이 가야금의 열두 줄을 의미하는 전망대 열두대를 걸어 내려가고 있다.

탄금대에서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합수머리를 잘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열두대다. 열두대는 우륵이 연주한 가야금의 열두 줄을 의미하는 것 외에도 신립 장군이 전투 당시 활 시위를 식히기 위해 강을 열두 번 오르내렸다는 데서 이름 붙여졌다는 얘기도 있다.
충주 출신으로 항일운동을 한 권태응 시인의 대표작 ‘감자꽃’ 비석.

탄금대에는 충주 출신으로 항일운동을 한 권태응 시인의 대표작 ‘감자꽃’ 비석도 세워져 있다. 감자꽃은 ‘자주 꽃 핀 건 / 자주 감자 / 파 보나 마나 / 자주 감자 / 하얀 꽃 핀 건 / 하얀 감자 / 파 보나 마나 / 하얀 감자’란 내용이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하자 이에 저항해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더라도 그 뿌리는 변함없으리란 민족정신을 감자꽃에 비유했다.
탄금대에서 이어진 세계무술공원의 돌미로 석벽 위를 가족이 걸어가고 있다.

탄금대에서 걸어갈 수 있도록 길이 이어진 세계무술공원도 돌아보자. 어린 자녀와 함께라면 돌미로가 기다린다. 남한강의 호박돌로 담을 쌓아 미로로 만들었다. 미로 가운데 정자에서 바라보는 남한강과 열두대, 멀리 보이는 탄금· 우륵대교가 한여름에도 시원함을 더한다.

충주=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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