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할매시인들 작품이 사투리와 맞춤법 틀린 것까지 그대로 옮겨놓은 날것이라면, 이들의 작품은 맞춤법을 다듬어 상대적으로 세련된 편이다. 기실 세련미나 기발한 상상력은 기성시인들에게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만 이들의 시를 공통으로 돋보이게 하는 건 그들이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진솔하게 길어올린 진정성이다.
뒤늦게 한글을 깨쳐 시집을 낸 이명옥, 윤복녀, 유미숙, 김영숙씨(왼쪽부터). 이들은 지난 삶의 아픔을 시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통해 치유의 시간을 보냈다. 박미산 제공 |
윤복녀(68)씨는 셋방살이를 전전하며 떡볶이 장사 등을 거쳐 어렵사리 집을 장만했을 때 어린 딸이 신이 나서 하루 종일 문을 열어놓고 ‘주인집 딸’이라고 외치던 모습이 가슴에 맺혔다고 했다.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었구나/ 꺼내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을까/ 못나고 아픈 것도 있는데/ 예쁜 것만 찾아 놓을까// 그래도 마음속에 한줄기/ 빛을 비추고 싶다./ 다 괜찮다고 모든 게/ 어우러지면 완숙되는 거라고/ 나를 꺼내 하늘로 날려 보낸다.”(‘시, 잠자는 나를 꺼내다’)
표제시를 쓴 김영숙씨는 큰 물난리로 가족을 잃고 방황하는 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살게 되어 공부는 엄두도 못 내고 동생 돌보며 집안일 하느라 학교를 중단했다. 손자까지 본 처지에 한글을 배우러 다닌다는 말을 차마 꺼내기 어려웠는데 큰 용기를 내어 학교에 나왔고 내친김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시까지 썼다.
재능 기부로 시쓰기를 이끈 박미산 시인. |
“‘아무도 없어요’ 하며/ 문을 열어 주지 않는 쌀쌀맞은 목소리// 몇 날 며칠을 벼르고 별러서 막내딸 손을 잡고 간/ 담벼락 높은 그 집// 거기는 아버지가 너무 사랑하는 맏딸을 보낸 집이다// 까치발을 딛고 대문 너머로 뭐든 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 집/ 그냥 발걸음을 돌려야만 하는 아버지// 건드리면 그 자리에 쓰러질 것 같은 아버지 손을 잡고/ 담벼락 높은 그 집을 등지고 다시 걸어간다”(‘담벼락 높은 그 집’)
북쪽에 부모 형제 아내 아들을 두고 내려와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를 늘 흥얼거리던 유미숙씨의 아버지는 남의 집 애보기로 보낸 맏딸을 둔 채 행방불명이 됐다.
박미산 시인은 “시는 진정성이 생명인데 이들의 시는 자신들만의 구체적인 삶을 그대로 가져와 감동적이고 새롭다”면서 “누구든지 시를 쓸 수 있지만 과연 자기 내면에 있는 치부까지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영숙씨는 재능 기부로 그들의 아픔을 시로 치유해준 박미산 시인과 이현정 마들여성학교 교사에게 이런 시를 헌정했다.
“당신은 바람입니다./ 닫힌 마음 열어주니// 당신은 햇살입니다./ 찬 마음 녹여주니// 당신은 이슬입니다/ 새싹 돋우어 꽃피게 하니// 당신은 등불입니다./ 까막눈 뜨게 해주니”(‘선생님’)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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