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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봉칼럼] 무분별한 영어 조기 교육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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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24 21:45:31 수정 : 2016-07-24 21: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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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부터 20년이나 배워도
해외로 어학연수 유학생 최다
입시 위주 시험점수 지향 문제
영어 능력별 자격제로 전환을
여름방학을 기해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학생들의 출국이 줄을 잇고 있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의 2015년 6월 보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생의 84.9%가 해외연수를 희망한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지 20년이 됐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까지 원어민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대학 진학 후에도 여전히 생활영어를 배워야 하고 어학연수를 떠나야 한다. 영어 조기 교육의 효과는 어디로 간 것인가.

영어 조기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영어 발음은 좋아졌고 청취 능력도 향상됐으며, 음악 뇌인 우뇌가 활성화되는 효과도 인정된다. 반면 모국어 능력이 큰 폭으로 발달하는 만 2세에서 10세 사이에 낮은 수준의 복수언어를 접하게 됨에 따라 연령별로 익혀야 할 어휘수준과 문장수준은 떨어졌다. 영어만 해결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영어는 향상됐지만 다른 능력이 저하된 것이다.

이덕봉 동덕여대 명예교수·전 한국교육문화융복합학회장
유네스코 통계연구소 2012년 자료에 따르면 학위 취득을 위한 해외유학생은 1위 중국 69만명, 2위 인도 19만명, 3위 한국 12만명으로, 미국의 5만명과 일본의 3만명에 비해 월등하게 많다. 교환학생과 어학연수생에 조기 유학생까지 포함하면 22만명이 넘는다. 인구 대비 세계 최다 유학생이 나가 있는 것이다. 영어 조기 교육이 학생들의 영어권 진출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첨단 학문을 수행할 수 있는 고도로 발달한 언어와 문자를 가진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나라이다. 그리고 세계 최고수준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한다. 그러한 나라에서 대학들은 여전히 해외유학 교육에 의존하고 있고, 온 나라가 영어 조기 학습에 몰입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유학으로 인한 국부의 유출이 적지 않고, 머지않아 가시화될 인재의 국외 유출 또한 심히 우려된다.

20년 가까이 영어를 배우고서도 다시 어학연수를 가야 하는 기현상은 우리의 영어교육이 시험점수를 지향하는 영어교육이기 때문이다. 대입에서는 소수점 단위로 진학의 향방이 달라진다. 입시에서 영어 점수제를 영어 능력별 자격제로 전환한다면 지금보다 적은 시간을 들여 더욱 높은 수준의 구사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외국어를 잘한다는 것은 문법과 발음의 정확성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언어 내용에 담긴 지적 수준과 행동문화에 맞는 교양 있는 언어행위를 포함한다.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영어 또한 정보를 수집하고 지시사항을 알아듣는 수준이 아니고, 외국인을 설득하고 교섭해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모든 삶은 문화 속에서 영위되기 때문에 문화를 함께 익히지 않은 영어로는 그러한 기능 수행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문화를 중시해 조기 유학으로 익힌 현장 영어는 문화적 정체성이 달라져 역으로 우리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대학입시에서 영어 점수제가 영어 자격제로 바뀐다면, 지금처럼 조기 교육으로 아이들을 힘들게 하지 않고서도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이중 언어 능력에 필요한 이중 문화 능력까지 기를 수 있는 살아 있는 영어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영어 조기 교육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구체적인 영어 학습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초등학교 영어 교육과정에서 의도하는 것처럼 영어에 친숙해지기 위한 기초과정인지, 입시나 능력시험을 위한 것인지, 컴퓨터 정보 활용 때문인지, 현대인이 갖춰야 할 교양용인지, 취업용인지, 유학이나 이민을 위한 준비과정인지에 따라 학습연령과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날로 발전하고 있는 외국어 자동통·번역기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영어학습 때문에 지적 능력과 문화적 정체성이 손상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실패한 교육이다.

이제부터라도 각종 영어 교육기관과 부모는 어린이의 발달단계에 맞는 영어 학습방향을 설정함으로써 지적 정서적 발달을 저해하지 않는 더욱 건강한 영어학습이 되도록 지혜를 모아야겠다.

이덕봉 동덕여대 명예교수·전 한국교육문화융복합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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