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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환철의법률이야기] 명의신탁엔 안전장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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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26 21:49:19 수정 : 2016-07-26 21: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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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탁자가 임의 처분해도 횡령죄 안 돼
타인명의 등기한 부동산 보호 못 받아
갑이 을로부터 토지를 매수한 후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하지 않고, 병의 이름으로 등기를 마쳤다. 물론 갑과 병 사이에서는 부동산을 병의 이름으로 등기하기로 서로 약정(명의신탁계약)했다. 그런데 그 후 병이 갑의 허락도 없이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했고, 이에 갑은 병을 횡령죄로 고소했다. 병은 처벌을 받을 것인가.

부동산을 매수한 사람이 그 부동산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등기해 두는 관행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소위 ‘명의신탁등기’라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나 탈세 방편으로 많이 이용됐다. 이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1995년에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등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법에 따르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명의신탁계약’은 무효이고,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는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법의 제정 및 시행에도 불구하고 명의신탁 관행은 근절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관행을 근절할 수 있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됐다. 판결 내용은, 위 사례와 같은 경우 병의 행위는 형법상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의 대법원 판결은 위 사례와 같은 경우 횡령죄가 된다고 봤기에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 부동산을 함부로 처분하지 못했다. 형법355조는 횡령·배임의 죄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중 횡령죄에 대해서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과거의 대법원 판결은 명의신탁자 병이 갑의 부동산을 자기 이름으로 등기한 것을 병이 명의신탁행위를 통해 갑의 부동산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해 병이 횡령죄를 범한 것으로 판단했다.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하면, 위 사례와 같은 경우 형법상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으므로, 명의수탁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명의신탁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할 수 있게 된다. 남의 재산을 함부로 처분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 일반인의 법감정상 이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명의수탁자(위 사례에서 병)의 처분행위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부동산실명법상 처벌 규정이 전제하고 있는 금지 규범을 위반한 명의신탁자(위 사례에서 갑)를 형법적으로 보호함으로써 부동산실명법이 금지·처벌하는 명의신탁 관계를 오히려 유지·조장해 그 입법 목적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타당하지 않다’고 판시하고 있다. 갑이 먼저 법이 금지하는 행위(명의신탁행위)를 했으므로 굳이 갑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판결은 자신의 부동산을 타인에게 명의신탁을 해둔 사람이 가졌던 최소한의 안전장치, 즉 명의수탁자가 자신의 동의 없이 부동산을 함부로 처분하면 형사적으로 처벌받는다는 안전장치를 제거해 버린 것으로서 장차 명의신탁 관행을 근절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부동산을 타인의 이름으로 등기한 경우 그 타인이 부동산을 마음대로 처분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러한 걱정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부동산은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하고, 그 소유 및 기타 법률관계를 확실하게 가져가는 것이다.

변환철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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