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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의 문자로 보는 세상] (16) 날씨와 기후이야기

입력 : 2016-07-29 19:40:51 수정 : 2016-07-31 14: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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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인간, 날씨 못 피해
순응하며 긍정적 삶 살아야
한반도는 푹푹 찌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불볕더위 속에 후텁지근한 열대야가 계속되어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내주에는 기록적인 무더위가 한반도를 덮치고, 9월 중순까지 더운 날씨가 이어진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지구촌 전체가 살인적인 더위 속에 허덕이고 있으니 우리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 이라크, 미국, 영국 등 북반구의 여러 나라는 역사상 최고 더운 여름을 힘겹게 보내고 있다. 중국의 수해와 인도의 가뭄, 미국의 산불 등은 대재앙 수준이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날씨는 여전히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로 존재한다.

모든 생물은 순간순간의 날씨를 피부로 느끼며 이에 대비하거나 반응하면서 살아간다. 직업에 따라서는 날씨가 생업을 좌우하기도 하며 더러는 날씨가 피할 수 없는 재난을 동반하기도 한다. 결론은 날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날씨’는 일정한 지역에서 그날그날의 대기 상태를 말한다. ‘날씨’에서 ‘날’의 근원적인 뜻은 ‘날 일(日)’이라 할 때의 ‘날’처럼 ‘해’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날이 덥다’라고 할 때의 ‘날’은 ‘날씨’를 가리킨다.

그런데 같은 ‘날’이라도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라고 할 때의 ‘날’은 자정에서 다음 자정까지로 24시간이지만, ‘날이 저물다’라고 할 때의 ‘날’은 ‘하루 중 환한 동안’만을 가리키므로 날의 기간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 ‘아침나절, 반나절’에서 ‘나절’은 하룻낮의 절반쯤 되는 동안을 뜻하므로 ‘날’의 절반이다.

‘날’에 ‘-씨’가 붙어서 날씨가 되는데, 이때의 ‘-씨’는 ‘말씨, 글씨, 솜씨, 마음씨’ 등에 붙어있는 ‘-씨’와 같은 의미로 본다. 여기의 ‘-씨’는 ‘태도’ 또는 ‘모양’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다.

한편 명사 ‘씨’의 일차적인 뜻은 식물의 씨앗이나 종자(種子, seed)를 뜻한다. ‘개량종의 씨’라고 할 때의 ‘씨’는 동식물에 다 해당하고, ‘씨가 다른 형제’라고 할 때의 ‘씨’는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말이다.

남의 이름 밑에 띄어 쓰는 ‘씨(氏)’는 높임의 뜻이고, ‘경주 김씨, 이씨, 박씨’라고 할 때의 ‘-씨’는 같은 성을 가진 씨족을 나타내는 접미사이다. 대추씨를 심으면 열매 속에는 대추씨만 맺히듯이, 여성의 성씨와는 관계없이 ‘김씨’인 남성과 결혼을 하여 낳은 자식은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 ‘김씨’가 된다. 따라서 ‘혼인할 혼(婚)’은 ‘여자가 씨를 받는 날’로 풀이된다.

또 ‘씨’를 받아들이는 여성의 성기 또는 성교를 속되게 표현하는 말도 다 ‘씨입(氏入)’의 준말인 그것이다. 지난날, 혼인한 부부의 아내에게 이상이 있어 대(代)를 잇지 못할 경우에 재물을 받고 그 남자의 아이를 대신 낳아 주던 여자를 일러 ‘씨받이(代理母)’라 하고, 남편에게 이상이 있어 남편 대신에 합방하여 아이를 배게 하던 남자를 ‘씨내리(代理夫)’라고 했다.

호연지기
‘날씨’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한자어에 ‘일기(日氣)’, ‘천기(天氣)’, ‘기상(氣象)’ 등이 있다. 여기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글자는 ‘기운 기(氣)’이다. ‘기운’이란 말은 ‘기운이 세다’에서 보듯이 한자어처럼 느껴지지만 순우리말이다. 그리고 ‘무더운 기운’에서 보듯이, 기운이란 느낄 수는 있으나 눈으로 볼 수는 없다. 그래서 하루의 기운인, 일기(日氣)를 예보하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가 보다. 잘 맞혀야 본전이고 틀리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 곳이 기상청(氣象廳)이다. 이처럼 소중한 일을 하는 곳이므로 전에 관상대(觀象臺)라고 하던 명칭을 기상청으로 높여 부르게 되지 않았을까.

‘날씨’와 비슷한 말이지만, ‘온대기후(溫帶氣候)’에서처럼 어느 특정 지역의 평균적인 기상 상태를 일컫는 말로 ‘기후(氣候)’가 있다. 기후는 본래 1년의 24기(氣)와 72후(候)를 줄여서 하는 말이었다. 또 기(氣)는 절기(節氣)로, 후(候)는 절후(節候)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15일간의 날씨를 절기라 하고 5일간의 날씨를 절후라 했는데, 이 중 절기만은 오늘날에도 달력에 표시하고 있다.

그런데 달(moon)을 중심으로 만든 음력은 농사철과 맞지 않기 때문에 농사가 주업이던 선조들은 해(sun) 중심의 24절기 명칭을 기본적으로 외우고 살았다. 절기를 순우리말로 ‘철’이라 한다. 절기를 모르면 ‘철부지’였고, 절기를 알면 ‘철든 이’였다.

농업 교과서나 다름없는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는 농가에서 연간 해야 할 일을 월령체 형식으로 적고 있는데, 월(月)마다 두 절기 이름이 앞에 나온다. 이 대목에서 귀농(歸農) 붐도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이때, 지금에 해당하는 음력 6월령 앞부분만이나마 음미해 보고자 한다.

유월이라 계하(季夏, 늦여름) 되니

소서(小暑), 대서(大暑) 절기(節氣)로다.

대우(大雨)도 시행하고(때로 오고)

더위도 극심(極甚)하다.

초목(草木)이 무성(茂盛)하니

파리, 모기 모여들고

평지(平地)에 물 고이니

악마구리(참개구리) 소리로다.

봄보리, 밀, 귀리를

차례로 베어내고...

수복강녕
소서, 대서 절기 중의 삼복(三伏)이 한창인 때는 큰비가 내리고, 파리와 모기가 많았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여기에서 치매 예방을 위한 연월일시(年月日時) 공부 좀 해 볼까. ‘1년(年)은 4계절(季節)이요, 계절에는 3개월(個月)이 들어있다. 한 달에는 두 절기(節氣)가 있고, 한 절기에는 세 후(候)가 있다. 따라서 1후는 5일(日)이요, 1일은 12시(時)로다.

봉건 시대에 영토를 가지고 그 영내의 백성을 지배하던 사람을 제후(諸侯)라 했는데, 제후는 주몽처럼 기본적으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제후 후(侯)’에서 온 ‘물을 후(候)’ 자는 기본적으로 ‘묻다, 시중들다, 기다리다’ 등의 뜻이 있다. 의미상 이질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상관관계가 깊다. 이를테면, 제후(諸侯)는 황제를 자주 방문하여 안부를 묻는 문후(問候)를 잘해야 하고, 어떤 자리에 결원이 생길 것을 대비하여 후보(候補)처럼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며, 철새 곧 후조(候鳥)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시후(時候)나 절후(節候)를 살필 줄도 알아야 한다.

집안 어른께 편지 올릴 때, 상투적으로 쓰는 문구가 있었다.

‘기체후(氣體候) 일향만강(一向萬康)하온지요’

여기서 후(候)는 ‘상태’, 일향(一向)은 ‘한결같이’, 만강(萬康)은 ‘매우 평안함’을 뜻하니, ‘정신과 육체의 상태가 한결같이 매우 평안하온지요’ 정도의 뜻이 되겠다. 건강 날씨를 묻는 말이다.

기후 타령에 기력(氣力)이 부친다. ‘원기(元氣)’를 회복하여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살려야지. 날씨와 관련한 속담 중에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속담은 “어느 구름이 비 될지 모른다.”이다. 언제 어느 것이 복이 될지 모른다. 날씨에 순응하면서 긍정적으로 살아가야겠다.

권상호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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