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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안뜰]은밀하게 혹은 대담하게… 사랑과 금기의 경계를 걷다

입력 : 2016-07-29 19:40:26 수정 : 2016-07-29 19: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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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동성애, 그 미추(美醜)와 소화(笑話) 사이 다음에 제시한 말의 뜻은 무엇일까.

‘대식(對食) 남총(男寵) 남통(男通) 남색(男色) 풍남지희(風男之戱) 북충(北衝) 남간(男奸) 계간(鷄姦) 비역질 밴대질’

시험에라도 출제되면 대부분의 응시자들은 적잖게 당황할 것이다. 한자라는 낯섬과 함께 예상하기 힘든 ‘동성애’ 혹은 ‘동성 간 성관계’를 뜻하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 가장 일반화된 어휘는 ‘대식’이 아닌가 싶다. 여성끼리의 동성애를 ‘밴대질’이라 하며, 그 외에는 모두 남성들 사이의 동성애 혹은 성관계를 의미한다.

플로랑 타마뉴의 연구에 따르면 서구에서는 ‘동성애(homosexuality)’라는 용어가 1869년에야 등장하고 ‘게이’라는 단어 역시 1945년 이후부터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23년부터 ‘동성애’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한 연구에서 밝혀지기도 하였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의 기원이 그리 길지 않았음이 새롭게 다가온다.

고려시대 왕과 호위무사의 동성애를 다룬 영화 ‘쌍화점’의 한 장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통시대 동성애는 다양한 계층에서 드물지 않게 있었던 관계의 한 형태였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조선시대 동성애를 연구한 사람들

전통시대 동성애에 대한 기록들은 왕조실록, 문집, 총서류, 야사류, 야담류 등 꽤 많은 곳에서 보이며, 사건의 기록이나 문학적 형상화와는 다른 용어와 의미에 대한 탐구가 등장하기도 한다. 윤기(1741~1826)는 ‘무명자집문고’에서 ‘남총’의 의미를 고찰하였고, 정약용(1762~1836)은 ‘흠흠신서’에서 남성들 간의 성범죄를 의미하는 ‘계간’의 중국 사례 2건을 정리하고 법률 적용이 잘못된 사례로 소개하였다.

이규경(1788~1863)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남총변증설’(男寵辨證說)과 ‘한궁대식변증설’(漢宮對食辨證說)을 두어 ‘남총’과 ‘대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는 중국의 사례뿐만 아니라 조선과 일본의 사례를 함께 다루면서 이에 대한 개념과 실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전통시대 동성애에 대한 기록은 실록, 문집, 총서류 등에 다양하게 전한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남자들의 동성애를 일컫는 ‘남총’, ‘대식’에 대한 생각을 적었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제공
◆조선의 로열패밀리, 동성애 스캔들에 빠지다!

조선에서 동성애 문제가 왕실에서 비교적 일찍부터 제기되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세종대왕의 며느리 봉씨와 궁녀 소쌍의 동성애 사건이 가장 대표적이다. 봉씨와 소쌍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는 아니었다. 봉씨는 여성 화장실을 엿보는 관음증이 있었고, 소쌍은 동료인 단지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소쌍과 단지는 밤에 성관계를 즐길 뿐만 아니라 대낮에도 애정표현에 과감하였다.

이러한 소쌍과 단지의 애정표현을 목격한 봉씨는 소쌍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세자빈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앞세워 소쌍을 옆에 두고 강제로 성관계를 즐겼다. 봉씨와 소쌍의 관계는 세종대왕에 의해 ‘극추(極醜)’로 묘사되었고, 세자빈 폐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교지(敎旨)에서 그 사실을 기록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금기시되었다.

성종 13년(1482) 6월 11일 당시 형방승지(刑房承旨) 강자평이 제안대군 이현의 아내 박씨가 몸종들과 동침한 사실을 왕대비전에 보고했다. 본격적으로 수사를 벌인 결과 사건은 이현의 유모인 금음물의 배후 조종으로 내은금, 금음덕, 둔가미, 개질동 등의 시비들이 가담하여 박씨 부인을 무고한 사실이 밝혀진다.

이 과정에서 둔가미는 금음덕, 개질동과 동침하는 관계였고 내은금 역시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시비임이 밝혀진다. 박씨는 동성애 혐의에서 벗어났지만 강제 이혼을 당하게 되고, 3년 후 이현은 평소에 사모하던 김씨와 재혼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사건은 안순왕후의 명에 따라 제안대군이 김씨와 강제 이혼을 한 뒤에도 김씨를 잊지 못한 데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제안대군이 김씨와의 재회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금음물이 동성애 스캔들을 일으켜 제안대군과 박씨의 이혼를 이끌어 낸 것이다. 필자는 예종의 원자(元子)임에도 불구하고 왕이 될 수 없었던 제안대군 이현, 그리고 그를 둘러싼 동성애 스캔들과 그 이면에서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스토리를 추적 중이다.

◆소년을 사랑한 남자

드라마 ‘천추태후’, 영화 ‘쌍화점’에서 각각 광종과 공민왕의 동성애를 다루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던 고려시대는 어땠을까. 이름 높은 승려와 뛰어난 재주를 가진 소년의 사랑이 대문장가인 이규보의 글을 통해 전한다. 이규보는 ‘차운공공상인 증박소년오십운’(次韻空空上人 贈朴少年五十韻)>이라는 작품을 통하여 ‘공공상인’과 ‘박소년’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남겼다. 공공상인은 이규보와 교유가 깊었던 유가대사(瑜伽大士) 경조(景照)라고 하는 당대 고승이었다. 그는 여인을 멀리하여 속세를 떠나 도를 즐겼으며 정욕을 모두 끊게 되자 요녀는 물론이고 아름다운 선녀 역시 접근하지 못했다고 한다. 박씨 소년이 대체 어떠한 외모이기에 未知朴子形何似

상인(上人)을 미치게 했나 坐使空師意反狂

박소년은 총명하고 해박하여 마치 봄날의 윤택한 숲과 둥근 달의 모습과도 같았고, 시를 짓는 데도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박소년과의 사귐은 속세를 떠난 스님의 마음을 미치게 했다. 결국 박소년의 영특한 재주와 경조 스님의 고매한 정신세계가 만나서 서로 부합하게 되자, 이들에게는 남녀 사이의 연정을 뛰어넘는 동성애 관계가 형성되었다.

다소 결이 다르긴 하지만 이웃집 소년을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가 19세기의 문인 육용정(1843~1917)에 의해 전한다. ‘이성선전’(李聖先傳)이라는 작품을 통해서다.

오직 궁인대식과 같이 풍남지희 하는 것을 좋아했다. 然猶好爲風男之戱如宮人對食樣

그대가 혼인하기 전까지는 한결같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及爾未醮 願得一依勿偸

이성선은 현실도피적 상황에서 이웃집 소년과 애정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으나, 소년의 배신으로 잠재되었던 시기심이 분출하게 되고 결국은 칼부림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이성선의 의리와 그를 배신한 소년의 문제로 설명하고 있다. 즉, 칼부림 사건의 원인을 소년의 배신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시대의 동성애를 추적해가다보면 여기서도 남성중심주의가 드러난다는 점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용어에서부터 철저한 남성 중심의 경향을 보인다. 남성의 동성애는 낭만적 사랑 혹은 의리로 포장되어 나타난다. 비록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나더라도 약간의 조롱거리 혹은 우스운 이야기 정도로 마무리 짓기 마련이다.

반면 세자빈 봉씨와 궁녀 소쌍, 단지의 경우나 제안대군의 두 번째 부인 박씨 및 그 시비들의 경우처럼 여성들에게 동성애는 철저한 징치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강문종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객관성을 갖고 냉정하게 연구하자

낯설기는 하지만 전통시대의 동성애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세자빈과 궁녀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이었고, 고승이나 몰락한 양반과 소년 사이에서도 같은 관계가 성립했다. 유명 정치인들이 포함된 동성애 사건도 있었고, 학질에 걸린 남성이 치료를 목적으로 건장한 남성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도 전한다.

이러한 현상은 “궁인과 여염의 어린아이 및 요사한 여중이나 천한 과부들이 서로 동성애를 한다”는 전통시대 지식인들의 지적과 전통 유교사회를 지금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예상보다 동성애가 훨씬 다양하고 많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조선의 성풍속을 연구할 때 동성애 분야가 매우 중요한 연구대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문종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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