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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상호 감독 “‘부산행’은 시대에 관한 우화”

입력 : 2016-08-14 14:00:00 수정 : 2016-08-14 14: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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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1000만 영화에 등극한 ‘부산행’(감독 연상호, 제작 영화사레드피터, 제공/배급 NEW)은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 연출작이란 점에서 여러모로 놀라움을 안긴다.

‘부산행’은 달리는 KTX 열차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벌어지는 절체절명의 재난 상황을 그린 블록버스터로, 지난 7일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이 영화가 처음 칸영화제에 공개됐을 때나, 국내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였을 때 많은 이들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게 사실. ‘한국에도 좀비물이 나올 수 있다니’란 감탄을 넘어선 충격. 그리고 일말의 의심도 말끔히 씻어버린 오락성과 대중성, 그 틈바구니에 생존한 감독의 뚝심이 그것이다.

연 감독은 첫 실사영화 연출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노련한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묘사 등으로, ‘왜 그여야 했는지’ 이유를 명확하게 알려줬다.

감독 데뷔 후 애니메이션 두 편, 실사영화 한 편이 필모그래피 전부인 이 감독에게 과연 어떤 힘이 감춰져 있던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1000만이라는 꿈의 숫자에 도달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다만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것이란 건 굳이 물어보지 알 수 있었다. 영화란 결과물 속에 그 힘겨운 과정들이 오롯이 녹아있었으니까. 인터뷰에서 연 감독은 “이 영화를 많은 관객들이 보게 하는 게 중요했다”라며 흥행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놨다. 순 제작비 85억원, P&A 비용을 포함한 총 제작비는 115억원에 달하는 대작 프로젝트였던 만큼 전작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처럼 감독의 의지대로만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흥행 소감을 묻자 “얼떨떨하기만 하다”고 답하는 그다. 

'부산행' 스틸컷.


“아직 얼떨떨해요. 이게 뭔가 싶고.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 만들면서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평가는 꽤 괜찮았는데, 이렇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관객이 많이 들어본 적은 처음이니까. 하하. 전작 두 작품 통틀어 총 4만명이 봤는데, 이 영화는 100배, 200배를 훌쩍 넘어섰는데 얼떨떨할 수밖에요. 영화는 감독 중심의 예술이라고들 하지만 주어진 예산을 책임져야 하는 측면이 중요해요. 좀비영화인 ‘부산행’은 막대한 예산에 비해 리스크가 무척 많은 소재였어요. 이런 소재, 내용을 어떻게 대중적으로 풀어내느냐가 제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였어요. 당연히 전작들과는 다른 톤 앤 매너를 가져야 했죠. 사실 오히려 그게 좋았어요. 예전 방식이 아닌 다르게 풀어나간다는 점이요. 좀비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즐길 수 있게 만들자.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 나갔습니다.”

‘부산행’은 펀드매니저로 일하는 바쁜 아빠 석우(공유)와 그와 서먹한 관계인 딸 수안(김수안), 곧 출산을 앞둔 임신부 성경(정유미)과 좀비도 한방에 쓰러뜨릴 정도로 믿음직한 남편 상화(마동석),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는 버스회사 임원 용석(김의성), 풋풋한 10대 커플 영국(최우식)과 진희(안소희), 외모․성격․인품 달라도 너무 다른 할머니 자매 인길(예수정)과 종길(박명신), 그리고 미스터리한 노숙자(최귀화)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재난과 맞서는 과정을 짜임새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연상호 감독은 캐릭터의 행동이나 장면 하나하나에 관객들이 쉽게 눈치 챌 만한 은유를 담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다양한 사유의 여지를 남긴다. 그는 가장 먼저 배우 최귀화가 연기한 노숙자 캐릭터에 주목해달라고 했다.

“‘부산행’의 프리퀄인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곧 개봉하는데, 서울역 하면 노숙자나 노숙자 사회가 떠오르고는 해요. 그래서 최귀화 배우가 연기한 노숙자 캐릭터가 파생됐죠. 일반인과 좀비의 경계선상의 느낌도 주려고 했고요. 처음엔 그를 멀리했던 주인공이 서서히 그를 자기 그룹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흥미로웠죠. 그는 상화의 죽음(감염)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하는데 나중에는 그 은혜를 갚고 떠나죠. 맨 마지막 성경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희생’보다는 일종의 ‘염치’를 보여주고 주고 싶었어요.”



주인공들 외에 영화에 등장하는 독특한 커플이 있었으니 바로 인길과 종길, 두 할머니 자매다. 언니 인길은 조용하고 자애로운 성품이지만, 동생 종길은 그런 언니가 답답하다며 시종일관 투덜거린다. 이들은 좀비를 피해 잠시 정차한 대전역에서 흩어져 운명이 갈리고 마는데 연 감독은 이 두 할머니에 대해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할머니 두 분은 열차 사람들을 위기에 빠트리는 민폐 캐릭터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전혀 다른 정치적 성격을 띤 인물들이라 할 수 있죠. 과거 이데올로기 중심의 세계관을 사람들. 그런 대립된 가치관을 가진 윗세대들의 퇴장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일종의 ‘시대에 관한 우화’죠.”연 감독은 인길과 종길을 포함한 성경, 수안, 진희 등 여성 캐릭터들이 노약자, 임신부 등 나약하게 그려지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 역시 ‘매드맥스’ 시리즈의 ‘퓨리오사’ 같은 캐릭터를 꿈꾼다는 말과 함께. 이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를 유독 약하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는 그는 오히려 남성 중심, 물질 중심의 지금 사회의 자멸을 표현하려 애썼다고 설명했다.

“곱씹어보면 성경은 임신부이지만 적극적으로 좀비와 싸우고 다른 이들을 구하려고 노력해요. 이기적인 아빠 석우에게 다른 사람도 살려야 한다고 외치는 아이 수안도 그렇고. 성경처럼 용감한 임신부 본 적 있으신가요?(웃음) 이 영화에서 용석은 유일한 안타고니스트처럼 등장하는데, 그렇다고 주인공 석우가 영웅인 것도 아니에요. 마지막 열차 격투신은 서로 싸우고 물어뜯으면서 물질중심 캐릭터들이 자멸해 가는 모습을 그려 보이고 싶었죠.”

다만, 연 감독은 “영화를 보시고 해석하는 것은 오롯이 관객들이 몫”이라며 “감독의 의도를 일일이 말하는 건 개인적으로 선호하지는 않는 편”이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1000만 고지를 넘어선 ‘부산행’의 최종 도착지는 과연 어디일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려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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