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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익숙한 멜로디 두려워… 새벽까지 오선지와 싸움”

입력 : 2016-08-14 22:39:07 수정 : 2016-08-15 17: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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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연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음악 책임진 김문정·구민경 콤비

어떤 날은 하루가 4부제로 흘러갔다. 1부는 대학교수로서 강의, 2부는 음악감독으로서 뮤지컬 연습이었다. 저녁에는 뮤지컬 지휘봉을 잡았다. 공연이 끝난 자정부터 4부, 작곡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선지와의 싸움은 새벽 두세 시에나 끝났다.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작곡가이자 뮤지컬 음악감독인 김문정이 지난해 10월부터 겪은 일상이다. 이 와중에 ‘레미제라블’ ‘레베카’ ‘마타하리’ ‘맘마미아’처럼 굵직한 작품의 음악감독으로도 종횡무진했다.

 “매일 저녁이 괴로웠어요. 숙제 안 한 사람처럼. 편하게 잠든 날이 하루도 없었고요. 민경 감독에게 스트레스도 많이 부렸어요. 한 번은 LG아트센터 분장실에서 훌쩍였어요. 여력은 안 되고 부담감은 짓누르고.” (김문정)

 “끝까지 감정이 차오른 듯 보였어요. 조금만 잘못 돼도 불같이 폭발하거나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구민경)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김문정(오른쪽) 작곡가와 구민경 음악감독은 “성형이나 시술로 모두가 아름다워질 수 있는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이 작품은 진정한 아름다움의 기준과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 것 같다”고 소개했다. 김 작곡가는 “가장 어려웠던 곡은 도리안과 화가 배질의 장면”이라며 “연출가가 끈적끈적하고 섬세하고 악마적 매력이 있으면서 아름답기까지 한 곡을 원해서 네다섯 번은 새로 쓴 것 같다”고 전했다. 남제현 기자
 음악감독으로 최고 주가인 김문정이 ‘울트라 슈퍼 우먼’이 돼야 했던 건 내달 3일 초연하는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 때문이다. 배우 김준수가 출연해 화제인 창작 뮤지컬이다. 원작 소설가인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와 김준수의 궁합에 일찌감치 관심이 집중돼 왔다. 이 작품의 음악은 여성 2인방이 담당하고 있다. 곡을 쓴 김문정(45), 그의 오랜 파트너로 음악감독을 맡은 구민경(37)을 11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났다.

 ‘도리안 그레이’의 시작은 가벼웠다. 3년 전 조용신 감독이 ‘워크숍 공연으로 재미있게 해보자’며 작곡을 제안했다. 무작정 덤볐다. 공연 후 기획사들이 제작 의사를 내비쳤다. 그중 한 곳이 배우 김준수의 소속사인 씨제스엔터테인먼트였다. ‘노래가 너무 좋다’고 문자를 보내왔던 김준수는 지난해 ‘데스노트’ 공연 중 이 작품의 행방을 다시 물었다. ‘군대 가기 전에 올리고 싶다’고 했다. 이때부터 제작이 급물살을 탔다.

 김 작곡가는 김준수에 대해 “사석에서 ‘넌 사람 역할 하지 말고 비현실적인 걸 해’라고 한 적이 있다”며 “이후 ‘디셈버’를 보며 사람 역할도 잘하는구나 싶었는데 이번 도리안도 잘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전했다.

 “풋풋하고 청량한 미소년이 자기 아름다움을 깨달았다가 타락, 파멸하는 내용이라 캐릭터가 잘 들어맞아요. 김준수는 고유한 음색이 있는데 이를 고려했어요. 관객은 김준수가 가진 요소가 뮤지컬화되는 걸 보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준수씨가 이를 고집하지는 않아요. 뭐든 주문하면 ‘해볼게요’ 하는 예스맨 기질이 있더라고요.” (문정)

 “준수씨가 1막에서 사랑에 빠질 때 굉장히 순수한 표정과 행동이 나와요. 타락한 모습을 보여줄 때는 카리스마 있게 돌변하고요.” (민경)

 김문정은 이번에 1막 12곡, 2막 13곡을 썼다. 워크숍 공연 때 만든 곡들은 두 곡만 살아 남았다. 꼼꼼한 완벽주의자의 면모가 엿보였다. 그는 작곡가로는 새내기다. 김문정은 “음악감독이 현장에 맞게 계속 곡을 수정하지만 명예와 스포트라이트는 작곡가에게 간다”며 “작곡가를 받쳐주는 그림자인 음악감독으로서 음악적 한계를 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완성된 곡들에 대해 그는 “색으로 말하면 반짝이는 진회색 같다”며 “어두우면서 아름다운 알갱이가 있는 느낌”이라 했다.

 “한편으로 두려웠어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멜로디를 쓰게 될까봐. 민경 감독에게 많이 물어본 게 ‘이거 어디서 들어봤어’였어요.”

 “제겐 새롭고 신선하게 들렸어요. 낯설지 않으면서도요. 배우들이 연습하면서 음악을 굉장히 칭찬해요. 새로 배울 때마다 ‘이 곡 대박이야’ 이래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작곡가가 김준수의 도리안, 박은태의 헨리, 최재웅의 배질을 생각하면서 만들었으니까요.”(민경)

 “그 누구의 칭찬보다 좋네요. 민경 감독은 무조건 ‘네네’ 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아닌 건 아니라고 하거든요.”

 김문정은 “민경에게 음악감독을 제의하면서 ‘이제부터 너한테 빨개벗을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상사이자 언니로서 써온 베일 아래의 민낯과 치부를 다 드러내겠다는 뜻이었다. “아무한테나 드러내고 싶지 않았지만, 민경 감독이면 이해하고 힘이 되주리라” 믿었다. 두 사람은 2002년 첫 인연을 맺은 뒤 2004년 ‘맘마미아’에서 음악감독과 연주자로 함께 일했다. 이후 12년째 호흡을 맞춰왔다.

 “민경 감독에게 부지휘자 일을 맡기면 제작사, 배우에게서 뒷말이 전혀 안 들려요. 부지휘자는 힘든 직업이에요. 잘해야 본전이죠. 하지만 민경은 늘 자기 일을 똑부러지게 해요. 제 든든한 지원군이에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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