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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웰컴 투 파타고니아]자연이 빚은 '푸른 거탑' 향해 또 한걸음

입력 : 2016-08-18 14:10:00 수정 : 2016-08-17 20:4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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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로 돌아오는 길 40번 국도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에서 칠레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는 버스에서 바라본 창 밖 풍경은 여정이 끝난 뒤에도 쉽게 잊을 수가 없다.
어제 오후, 피츠로이와 세로토레 트레킹 마을, 엘 찰튼을 떠난 버스는 3시간여를 달려 늦은 시각 엘 칼라파테에 도착했다. 늦은 저녁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혹시나 버스시간에 맞춰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호텔 프런트에 모닝콜을 부탁해 두었다. 모닝 벨이 울린다. 아직 이른 새벽이지만 칠레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휴게소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기는 버스 승객들.

늦은 밤까지 여행객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즐겼던 호텔 식당은 조용하다. 칠레로 떠나는 다섯 명만이 커피와 빵으로 조용히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버스에서 다시 잠을 청하고자 따뜻한 우유로 빈속을 채우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알파카 털로 만든 스웨터와 머플러, 방석 등으로 꾸며진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는 여행객들.

동이 트지 않은 세상은 어두컴컴하다. 버스는 몇 군데 호텔을 돌아 여행객을 태운 후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자리를 잡은 승객들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버스 안은 기사가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만 울린다. 나 역시 엘 칼라파테에서 페리토모레노 빙하 트레킹과 엘 찰튼에서의 피츠로이, 세로토레 트레킹으로 무거워진 몸을 좌석 깊숙이 묻고 잠에 빠져든다. 얼마를 달렸는지 동이 트고 창밖이 밝아오면서 버스는 휴게소에 멈췄다. 휴게소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오두막이다. 승객 중 몇몇이 내려 파타고니아의 바람을 맞으며 모닝커피를 마신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트레킹을 떠나기 위한 거점도시인 푸에르토 나탈레스. 바다가 내륙까지 깊이 들어와 호수처럼 보인다.

아직 잠이 깨지 않은 탓인지 아침 햇살과 바람이 어우러진 초원 위의 작은 휴게소는 현실감 없는 몽환적인 모습이다. 버스가 다시 초원 위를 질주하자 메마른 초원 위 작은 동물 무리가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털을 지녔다는 비쿠냐(vicuna)다. 안데스산맥의 고지대에 서식하는 비쿠냐는 낙타류 중에서 가장 몸집이 작다. ‘모직계의 황금’, ‘신의 섬유’ 등으로 불릴 만큼 비쿠냐의 털은 현존하는 동물성 섬유 중에서 최고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잉카제국에서도 왕과 귀족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슴같이 선한 눈망울의 연약한 이 동물에게 ‘황금 털’은 재앙이 됐다. 밀렵으로 1960년대에 개체수가 6000마리까지 줄었다. 다행히 페루를 비롯한 각국 정부의 노력으로 밀렵을 막고 번식을 위해 노력한 덕에 지금은 35만여 마리로 증가했다. 안데스산맥 고산시대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멸종위기를 넘긴 비쿠냐를 보면서 인간의 욕심이 초래하는 재앙의 무서움을 다시 생각해 본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의 공원앞 커피 판매점.

비쿠냐보다 더 친숙하게 다가온 동물은 알파카(alpaca)였다. 하얀 털을 뒤집어쓴 알파카는 이국적이면서도 귀여운 모습으로 인해 남미를 대표하는 친숙한 동물이다. 남미에서는 털이 귀한 바쿠냐와 달리 양처럼 풍부한 털로 융단이나 의류제품으로도 익숙한 동물이다. 두 번째로 들린 제법 규모를 갖춘 휴게소에 스웨터와 머플러 등 알파카의 털로 만든 제품들이 알파카 인형과 함께 전시돼 있었다. 휴게소 직원이 알파카는 양이 서식할 수 없는 고산지대에서 사람들에게 털을 제공하는 유용한 동물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달리는 버스 창 밖으로 무리를 지은 비쿠냐들과 함께 과나코(guanaco) 무리들이 보인다. 비쿠냐와 과나코는 모두 라마(lama)와 유사한 동물이다. 라마와 알파카가 가축으로 길들여진 반면 비쿠냐와 과나코는 야생으로 서식하고 있다. 과나코는 비쿠냐에 비해 털이 많았지만 덩치는 좀 더 작다. 아르헨티나의 엘 칼라파테에서 칠레의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 276㎞에 달하는 40번 고속도로는 파타고니아 초원과 함께 남미의 대표적인 고산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의 한 건물에 위도가 표시돼 있다. 남위 51도 극지방에 가깝다.

며칠 전 떠나온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다시 도착했다. 파타고니아 트레킹의 절정인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국립공원 트레킹을 떠나기 위해서다. 3박4일이 소요되는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위해 오늘 하루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몸과 마음을 정비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푸른 탑’이라는 뜻을 지닌다. 토레스는 스페인어로 ‘탑’이고 파이네는 이곳 원주민이었던 테우엘체 인디언 언어로 ‘푸르다’는 뜻이다. 푸른 탑,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은 파타고니아를 대표하는 풍경이자 세상에서 가장 극적인 산세로 불린다. 마치 신들이 거대한 산을 층층이 쌓아올린 것처럼 거친 산들이 높게 솟아 있다. 더구나 다듬어지지 않은 산들의 모습은 태초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다. 손에 베일 듯 날카로운 산들은 만년설을 이고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원시적인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극적인 산세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 지형을 3박4일에 걸쳐 깊이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는 트레킹 코스는 알파벳 ‘W’형태를 띠고 있다고 해서 ‘W 트랙’이라 불린다.
바다를 감싸안은 병풍과 같은 설산들이 안데스의 만년설이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하루의 평안함을 제공한 숙소는 며칠 전 이곳을 떠날 때와는 다른 곳이다. 작지만 조용해 마음에 들었다. 더불어 친절한 주인이 트레킹을 위한 여러 조언까지 들려준다. 더구나 3박4일 트레킹이 끝난 후 짐을 찾아가라며 배낭의 일부분을 덜어내라는 배려까지 해주었다. 한결 가벼워진 배낭을 꾸린 뒤 새로운 트레킹에 대한 기대에 부푼 채 잠자리에 든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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