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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그 시대 흐름 담아낸 세계의 동물원

입력 : 2016-08-19 20:55:50 수정 : 2016-08-19 20: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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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 허 지음/남혜선 옮김/어크로스/1만7000원
동물원 기행/ 나디아 허 지음/남혜선 옮김/어크로스/1만7000원


대만의 젊은 작가인 저자는 처음 배운 스페인어가 ‘천천히, 천천히’라고 고백한다. “작별의 순간, 스킨십을 나누는 열정적인 찰나, 고된 여정 끝에 도달한 설산의 꼭대기” 어디서든 반드시 요구해야 할 단어는 ‘천천히’다. 지금은 프랑스령이지만 주민들은 영락없는 스페인 카탈루냐 사람들인 페르피냥에서 조급한 행동은 비현실적이고 심지어 아무 효과도 없다.

페르피냥에서 멀지 않은 몽펠리에동물원의 시간도 느리게 흐른다. 모든 동물이 자기 구역에서는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며, 그것은 유유자적한 모습이라기보다는 극단적으로 늘어진 모습이다. 악어는 살기를 느끼지 못해 온순해 보일 정도고, 홍따오기는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려 있다. 이곳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과 뒤돌아보며 밀란 쿤데라의 말을 음미한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베를린 동물원은 2차대전의 비극을 전하는 또 다른 표식이다. 시가지의 90%가 파괴되고, 1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던 참화 속에서 베를린동물원도 초토화됐다. 3715종 가운데 살아남은 동물은 사자 두 마리, 코끼리 한 마리, 개코원숭이 열 마리 등 모두 91마리뿐이었다.

동물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화창한 날씨, 다정한 엄마 아빠와 아이들, 정성스러운 도시락 혹은 간만의 외식 등등이 아닐까. 각국의 14개 동물원을 돌아본 저자가 전하는 그것은 사뭇 다르다. 파리동물원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의 불길을 연상하고, 창춘동식물공원에서는 일본군, 국민당, 인민해방군까지 여러 차례 주인을 바꿔야 했던 격동의 현대사를 되짚는다. 저자는 “오래된 동물원은 거만하지도 그렇다고 비굴하지도 않게 그 시대의 흐름을 담아낸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 어떤 건물보다도 훨씬 더 진실하게 그 도시의 성격을 말해준다”고 적었다. 또 동물과 동물원에 얽힌 다양한 사건들을 소개하며 우리 삶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를 탈출해 사람을 공격한 고릴라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과 동물 사이의 적절한 거리가 얼마일지를 묻고, ‘유전자 중복’을 이유로 도살당한 기린 마리우스의 이야기를 통해 과학적 합리성의 의미를 따진다.

강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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