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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영화인사이드] 쉼표 같은 ‘최악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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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25 21:53:23 수정 : 2016-08-25 21: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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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유난히도 덥다. 덕분에 여름성수기를 겨냥해 내놓은 대작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 대박을 기록하는 중이다. ‘부산행’이 1100만 관객을 동원했고 ‘인천상륙작전’은 700만 관객을 향해 달리고 있으며, 조금 늦게 개봉한 ‘덕혜옹주’와 ‘터널’도 500만 관객을 넘겼다.

4편의 영화들은 철저한 상업 장르영화다. 관객들의 구미에 맞게, 관객을 동원하기 위해 전형적으로 맞춤 제작된 영화다. 따라서 반공영화나 재난영화와 같이 논란을 야기할 만한 소재가 선택되었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그러나 이들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영화가 최근 개봉했다. ‘최악의 하루’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 서촌과 남산을 배경으로 주인공 은희(한예리)의 소소한 로맨스를 그린다. 은희(한예리)는 서촌과 남산에서 오늘 처음 본 외국인(이와세 료) 남자를 비롯해 세 명의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꼬여버린 최악의 하루를 유쾌하고 담백하게 담아냈다.

‘최악의 하루’는 여자의 복잡한 감정과 심리상태를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세 남자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단순한 연애 이야기 같지만 남자 셋을 대할 때 여자는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은희는 낯선 일본인 남자에게 느끼는 설렘 때문에 친절을 베푸는 상냥한 여자다. 오랜 관계 때문에 익숙한 남자친구에서는 귀여움을 폭발한다. 전 남자친구였던 유부남을 대할 때 이별의 정서를 느끼는 그녀는 그동안 우리가 한국 영화에서는 보지 못했던 여성의 주체적인 일상의 모습이다.

따듯하고 맑은 영상미는 영화를 더욱 빛낸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종관 감독은 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에서 서촌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바 있다. 이번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골목길 사이사이, 풀밭 사이사이를 살피듯 사소하고 작은 부분을 담담하게 포착하고 그려간다. 이번 영화에도 서촌 골목과 남산 일대에서 일어나는데 그 공간이 지루함 없이 따뜻하고 아름답고 싱그럽게 그려진다. 더욱이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할 때는 미묘한 클로즈업을 사용해 배우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관객이 몰입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연출된 감독의 섬세한 배려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캐릭터와 배우들의 연기도 한몫을 담당한다. 귀에 붙는 차진 대사들은 배우들의 메소드 연기로 풀어냈다. 한예리는 다양한 감정 연기의 변주를 보여준다. 권율과 이희준 역시 자연스럽게 극의 몰입을 유도한다. 권율은 천연덕스럽게 조잔한 연기를 보여준다. 운철은 끊임없이 은희에게 질척대며 지질함의 극치를 보인다. 지질한 남자친구 현오와 운철의 캐릭터들도 영화의 매력이다.

영화 ‘최악의 하루’는 주인공 은희의 최악의 하루를 담고 있지만 보는 관객에게는 최고의 순간을 제공하는 수작이다. 김종관 감독은 시간과 공간의 분위기로 인물들의 감정의 섬세한 결을 스크린에 잘 담아냈다.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제’ 본선에 진출했으며 제38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선정되었다. ‘최악의 하루’는 이번 여름, 자극적인 대작 영화에 식상해 있는 관객들에게 쉼표 같은 영화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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