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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 던져진 한진해운…법정관리 가면 외국선사 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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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27 13:10:26 수정 : 2016-08-27 1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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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 TEU 급 컨테이너선 한진 코리아호
주사위가 던져졌다. 국적 1위 해운선사 한진해운의 운명이 30일 결정된다. 채권단은 25일 한진해운이 제출한 자구안에 대한 수용 또는 거부 입장을 30일 밝힌다. 한진해운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느냐, 회생의 과정을 밟느냐가 이제 채권단의 손으로 넘어간 것이다. 한진해운의 자구안이 거부돼 법정관리로 경우 산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이 지대할 것으로 예상돼 채권단의 부담이 더욱 커진 형국이다.

◆사력 다한 한진해운 자구안...채권단 수용할까

한진해운이 25일 채권단에 총 5000억원 규모의 유동성 확보 방안이 담긴 자구안을 제출했다. 한진해운과 채권단에 따르면 이번 자구안에는 대한항공을 통한 유상증자를 비롯해, 추가 자금 필요시 그룹차원의 지원과 포괄적 범위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고통분담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 쪽에서 ‘사력’을 다한 자구안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한진해운이 위기에 빠진 2013년 이래로 그룹이 한진해운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은 한진해운 지원을 위해 2조원 규모에 달하는 알짜 자산이었던 에쓰오일 지분 28.41%를 전량 매각했다. 

한진에너지 차입금 상환 등을 제외하고 남은 9000억원 중 대부분은 한진해운을 살리는데 쏟아 부었다.

대한항공의 경우 유상증자로 4000억원, 영구채로 2200억원, 교환사채 TRS 보증으로 2000억원 등 총 8259억원을 지원했다.

㈜한진의 경우 신항만 지분과 평택터미널 지분인수를 비롯해 아시아 역내 노선 영업권, 베트남 터미널법인 지분 인수 등을 통해 2351억원을 지원했다.

한진칼은 한진해운의 미국, 유럽연합(EU), 아시아 등의 상표권을 매입하는 형태로 총 1857억원을 보탰다.

여기에 이번에 총 5000억원에 달하는 추가 자구안 계획에 따라 한진해운이 확보하게 된 유동성의 총액은 2조7000억원을 훌쩍 넘게 된다.

이 중 1조7000억원은 한진그룹으로부터의 지원이다.

조양호 회장의 경우 한진해운이 사실상 부실의 늪으로 빠져버린 2014년 구원투수 역할로 경영에 참여했고, 이번 자구안 전까지도 2조가 넘는 유동성을 확보할 정도로 헌신해온 바 있다. 그래서 시장에서도 현대상선과는 달리 조양호 회장에게까지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또 조양호 회장까지 고통분담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는 등 한진해운에 대한 강한 회생 의지를 보임으로써, 한진그룹으로서는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다 내 놓았다는 설명이다.



◆한진그룹 재무 악화 우려에도 왜 지원 계속했나

한진그룹과 조양호 회장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한진해운에 지원을 계속한 이유는 해운업 살리려는 일념 하나 때문이다. 한진그룹은 육·해·공 운수와 물류로 국가에 보답한다는 ‘수송보국’을 기업 신념으로 삼고 있는 회사다.

그런데 현재 한진그룹의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다.

그룹 주력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우 올해 2분기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1100%가 넘었다. 대한항공 재무구조 악화는 한진해운에 대한 지원에 기인한 측면도 상당하다.

게다가 한진해운 지분가치 조정에 따른 평가손실, 영구채권 회수가능가액 하락에 따른 손실 등 올해 상반기에만 5000억원에 가까운 영업외 손실을 기록했으며, 향후에도 3000억원 이상의 넘는 잔여 손실의 위험이 남아 있다.

지난 7월 말 한국신용평가는 한진해운에 대한 대한항공의 독자적인 지원이 이뤄지는 경우 자체 재무부담 확대가 지속적인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신용도에 매우 부정적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또 지난 18일 경제개혁연대는 '한진해운 구조조정 진행상황과 문제점'이라는 자료를 통해 "이미 한진그룹은 한진해운에 상당한 자금을 지원한 상태이며, 대한항공의 경우 한진해운의 재무구조 악화로 인한 지분법 손실위험도 존재한다"며 "향후 한진해운의 회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계열사들의 지원이 계속된다면, 계열사 임원들의 배임 논란뿐 아니라 계열사들의 동반부실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한진그룹 자체도 부채비율이 높은 현 상황에서 계열사들이 계속 한진해운을 지원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이렇게 한진그룹은 동반 부실 우려에도 국가기간산업인 해운산업을 살리고자 하는 일념으로 과감한 자구안을 내밀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이제 채권단이 한진그룹의 의지를 평가하고, 결정하는 일만이 남았다”고 강조했다.



◆해운업 붕괴는 국가 기간산업 붕괴...지나친 원칙론은 금물

만약 30일 채권단이 한진해운에서 제출한 자구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칙론대로 처리하게 된다면 법정관리 외에 대안이 없다. 또 한진해운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게 되면 화주들이 즉각적으로 운송 계약을 해지하게 된다. 또한 선박압류, 용선계약 해지 등 선박 운항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는 한편, 급유중단, 터미널 및 육상수송 작업중단 등 현금거래만 가능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아울러 채무는 그대로인데 반해, 신뢰도 하락에 따라 운임 등 채권 회수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에 따라 운영자금이 부족하게 되는 악순환도 반복된다. 또한 즉각적으로 해운 동맹체에서 퇴출되어 공동운항 노선에서 출수하고, 협약구간에서의 서비스 또한 붕괴한다.

문제는 한진해운의 기업회생절차행이 한진해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진해운이 몰락하면 사실상 한국 해운산업 자체가 붕괴되는 것은 물론, 해운업과 필수불가결한 관계인 조선업, 항만업 등 연관산업과 하청업체들까지도 문을 닫게 될 위기에 놓이게 된다.

최근 발표된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국적선사 구조조정의 영향 및 대응방안' 자료에 따르면 한진해운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서게 되면 부산항의 경우 환적 물동량이 16.4%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연간 1152억원 규모에 달한다. 이는 관련 산업의 대량 실업사태와도 연관된다.

아울러 한진해운 법정관리는 수출입 화물기업 또한 국적선사의 공급이 축소되고, 해외 해운사들이 한국 기항할 이유도 잃어버리면서 운임이 폭등한 상황과 이어진다.

안정적인 물류 네트워크를 확보할 수 없으니 물류 비용이 급등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KMI 자료를 보면 한진해운이 퇴출될 경우 미주 항로 운임이 27.3%, 유럽항로 운임은 47.2% 상승한다.

또 이 같은 운임 상승으로 국내 화주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운임은 연간 4407억원에 달한다.

이 같은 운임 상승은 수출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미주행 수출품 가격은 0.7%, 유럽행 수출품 가격은 1.2% 오를 것으로 전망되어, 한국 무역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한국의 국제적 신인도 하락도 예상된다.



◆한진해운 무너지면 외국 선사들만 이득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모든 결정은 채권단의 몫이 됐다.

해운업계에서는 채권단이 돈의 논리에만 휘둘리지 말고, 해운산업이 가진 중요성과 특수성을 십분 고려한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운산업은 국내 수출입 화물운송의 99%, 국가 전략물자 수입의 100%를 담당하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또한 국내 항만산업을 비롯해 연관산업의 고용 창출에도 지대한 역할을 하는 산업이다. 유사시에는 병력 및 군수품 등 전시화물을 운송하는 ‘제 4군’의 역할을 한다.

이와 관련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추가 유동성 투입으로 회생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채권단에서도 지금까지의 주장한 원칙론을 버리고, 지원 가능성을 열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1개의 원양 서비스 노선을 구축하는데 통상 드는 비용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한진해운이 무너지면 수십 조원의 국가적 네트워크 자산이 손실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다.

수십 년간 쌓여 온 네트워크가 손실되면, 해운산업의 회생은 요원하다.

한진해운이 만일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장기적으로 해운동맹 등에서 퇴출되면 그 과실은 고스란히 외국 경쟁 선사들이 따먹게 된다.

한진해운은 세계 8위 규모의 대형 선사다. 무엇보다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아시아∼미주 노선은 한진해운, NYK, K-라인, MOL, 하팍, 양밍 순으로 한진해운이 가장 많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통관 정보 서비스 PIERS 기준으로는 한진해운이 미주항로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에서 세계 1위 선사인 머스크보다도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아시아∼유럽 항로도 마찬가지다. 이 노선에서는 하팍, 한진해운, 양밍, MOL, NYK, K-라인 순으로 한진해운이 하팍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그렇잖아도 외국 선사들은 초대형 선박과 해운동맹을 앞세워 영업망 확충을 추진 중이다. 대형사들은 시장이 안 좋은 지금과 같은 시기를 경쟁사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로 보고 경쟁적으로 영업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그 빈 자리는 영영 다시 찾아올 수 없는 외국 선사의 몫이 되어버리는 꼴이다.

한 해운사 관계자는 “채권단은 지금이라도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산업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한번 다지고, 혹시 모를 기업회생절차행이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세세하게 살펴보고 난 이후 현명한 결정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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