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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마지막 '포도밭예술제' 여는 류기봉 시인

입력 : 2016-08-29 13:33:34 수정 : 2016-08-29 21: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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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인은 “모쪼록 그의 선한 의지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빈다”고 1998년 열린 첫 포도밭예술제 팸플릿 서문에 썼다. ‘그의 선한 의지’가 이제 유종(有終)한다. 류기봉(51) 시인은 김춘수(1922~2004) 시인의 제안으로 시작한 경기 남양주시 장현리 포도밭예술제를 9월 3일 오후 2시 19회째로 열고 막을 내린다. 마지막이니만큼 이번 예술제는 행사를 처음 제안한 스승 김춘수 시인을 추모하는 내용으로 꾸릴 예정이다.
김춘수 시인의 제안으로 시작해 19년째 이르러 포도밭 예술제를 접는 류기봉 시인. 그는 “예술제는 접지만 포도와 시에 대한 애정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손이 다 부르트고 등이 휘도록 나무를 자르고 넝쿨을 걷어내며 산을 일구어서 이 포도밭을 일구었습니다.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예쁜 밭은 실은 산에서 겨우 밭이 된 거친 땅이었죠. 아버지의 땀이었습니다. 42년 동안 경작해온 이 포도밭은 주인이 몇 번 바뀌었고 최근에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먹는 기획부동산이 개입해 땅 주인을 바꾸고 하루아침에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분쟁 때문에 포도밭예술제의 이미지까지 훼손할 수 없어 초창기부터 깊은 애정을 보여주신 시인 분들의 의견을 들어 이 행사는 그만 내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류기봉의 포도밭예술제는 시가 포도와 만나는 상징적인 행사로 연륜을 쌓아왔다. 포도밭 사이에 김춘수 조정권 정현종 서정춘 노향림 이문재 박주택 심언주 등 내로라할 시인들의 시가 적힌 광목을 걸어놓고 솔바람 소리를 배음으로 포도밭 머리 잦나무숲에서 시낭송을 하고 창을 들으며 무용을 보는 명품 예술제로 소문난 포도밭 행사였다. 단순한 농업이 아니라 문화농업을 제안한 김춘수 시인의 아이디어로 시작했지만 포도밭 농부 아들로 태어나 군입대 기간을 제외하곤 한 번도 포도와 떨어져본 적 없는 농부 시인 류기봉의 근면과 근력이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역사다.

기독인인 부친의 영향으로 한국성서대학을 다니던 그가 김춘수 시인을 만난 건 용산도서관에서 열린 시소리 낭송회 자리에서였다. 선생의 자택이 있던 서울 강동구 명일동이 자신의 집에서 30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때부터 선생을 태우고 다니며 충실한 말벗으로 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얼음처럼 차가웠던 선생도 두 번째 시집을 낼 즈음에서야 그의 시를 상찬하고 발문까지 써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승의 거주 기간이 짧아 지키지 못했다. 김춘수는 새로 지은 시를 차 안에서 읽어주며 그의 느낌을 청했고 13년 간 매주 그와 보내며 얻은 이야기들은 ‘김춘수의 시노트’라는 이름으로 이번 마지막 예술제에서 공개한다.

“포도는 나의 시고 내 시는 포도입니다. 포도의 눈물이 많을수록 충실한 열매가 열리듯 내 시도 포도의 향기를 닮고 싶습니다. 포도밭에 손이 상대적으로 덜 가는 한가한 때는 오히려 시가 안 나오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저녁 9시까지 일할 때, 그 생생한 포도밭의 현장감이 시를 밀어냈습니다. 예술제는 끝내지만 포도와의 인연은 끝나지 않을 겁니다. 다만 새로운 생의 전환점에 선 거지요. 너무 포도에만 갇혀 있다는 자각에서 시도 새로움을 모색하고 싶습니다.”

만날 적자만 보는 유기농 포도 농부의 아내 이명신(49)씨는 한 번도 남편이 자신보다 먼저 자거나 늦게 일어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수확철이면 새벽부터 포도밭에 나아가 해가 뜨기 전에 포도를 따서 그날 오후에 서울 경기 일원에 직접 포도를 배달한다. 아침 일찍 포도를 따야 당분이 제대로 저장돼 있어 가장 달콤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인데, 택배로 보냈다가 망가지는 바람에 일일이 직접 배달하며 포도 상자 안에는 자신의 시를 포함한 포도밭예술제 시인들의 시를 선별해 담은 시집까지 넣었다. 시인이 직접 배달하자 반갑고 놀란 고객들은 그를 안으로 들여 음료수까지 대접하지만 그는 특유의 어색한 농부 웃음만 날리고 서둘러 다음 배달지로 뛰어야하는 처지였다.

“일을 하다가 시가 떠오르면 비를 가릴 수 있는 포도밭 몇 군데에 동생이 중고 컴퓨터를 취급하는 바람에 얻어온 서너 대의 노트북을 가져다놓고 달려가 시를 치는 거지요. 최근 몇 년 사이에 걷잡을 수 없이 시가 밀려와 200여 편이 축적됐습니다. 포도밭예술제를 끝내면서 한 권은 일반 시집의 내용과 형식으로, 또 한 권은 제 포도밭 인생 역사를 담은 시집으로 두 권을 내고 싶습니다. 포도는 사람들이 좋다고 맛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포도 시’는 각별하다. “봄비라는 포도가 있다./ 아내라는 봄비다./ 눈물이 밭에 내리고 있다./ 큰포도 인지 중간포도인지 작은포도인지/ 비슷비슷하게 생긴 여자 세분”(‘도로 내리는 비’)이라고 썼듯이 그는 포도가 자신의 애인이자 자식이자 친구라고 말했다. 산문집 ‘포도밭 편지’를 비롯해 시집 ‘장현리 포도밭’ ‘자주 내리는 비는 소녀 이빨처럼 희다’ ‘포도눈물’ 등에 그의 포도밭 사연은 촘촘히 녹아 있다. 포도밭 에술제를 20년 가까이 진행해오는 동안 각종 매체의 인터뷰와 기사만으로도 그는 포도와 시의 상징적인 결합체로 알려져온 셈이다. 그것도 농약을 쓰지 않는 생태농법의 유기농 포도로 자긍심을 지켜왔다. 

“사실 그동안 유기농을 하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풀이 많이 자란다고 공무원이 와서 팔십대 노인이 농사를 지어도 이보다는 낫겠다는 핀잔도 했고, 경동시장에서 한약찌꺼기를 받아다 밭에 뿌리니 이건 자연 농법이 아니라고 한 방송인 거들기도 하더군요. 산더덕을 캐다 발효시켜 뿌리기도 하고 바흐나 모차르트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이러저러한 수많은 변화를 주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건 포도나무 입장이 아니라 제가 좋아서 했던 행동들 같습니다. 아무리 나무가 아파도 약 한 번 쓰지 못하는 심정, 알아서 스스로 극복하도록 방치해두는 그런 이기심에서 이제는 그만 벗어나서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포도 농사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스피커들을 구해서 포도밭 구석구석에 비치하고 음악을 들려주다 문득 생각해보니, 이건 자신이 좋아서 하는 행위이지 포도나무는 광릉 숲의 새소리 바람소리 빗소리를 더 듣고 싶어 했을지 모른다는 자각이 생긴 것이다. 대부분 포도 농가는 비닐하우스를 씌워 자연과 차단하는 게 상례인데, 그도 어쩔 수 없이 비닐 천장은 씌웠지만 최대한 광릉숲과 소통하도록 배려하며 포도농사를 지었다. 포도와 자신을 일치시키는 감성으로 보자면, 유기농은 반드시 아름다운 농법인 것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아프면 약을 주고 싶었다는 시인 농부의 마음이 애처롭다. 먹는 사람 입장에서만 유기농이 아름다울 뿐, 사실 포도나무 입장에서는 다른 시각이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서정춘 노향림 조영서 심언주 시인의 시를 서울에서 광목에 받아온 날 오후, 류기봉은 남양주 포도밭에서 말했다.

“멧돼지들이 내려와 봉지를 벗기고 가지까지 찢어놓고 달아납니다. 우리집 개가 그놈들과 싸우다 피투성이 돼 포도밭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는 걸 본 적도 있어요. 이 녀석 며칠 겨우 간호해놨더니 다시 싸우러 가더군요. 멧돼지가 건들지 못한 햇포도가 50리터짜리 독에서 마지막 예술제를 위해 포도주로 익어가고 있습니다.”
 
남양주=글·사진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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