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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화가' 김창열 미술관 제주에 개관

입력 : 2016-09-18 10:20:30 수정 : 2016-09-18 10: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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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부터 기증작 220점 보여주는 개관기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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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의 미술관이 24일 개관한다. 제주시 한림읍에 들어선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은 김창열 화백이 6.25전쟁당시 제주에 머물렀던 인연으로 작품 220점을 기증하면서 설립됐다. 총사업비 92억원을 투입해 지상 1층,연면적 1587㎡ 규모로 지난 2014년 4월에 공사에 착수,올 5월에 완공됐다.

미술관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작품을 모티브로 빛의 중정과 각각의 방들로 건축됐다. 수장고도 전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컨셉을 적용해 ‘보이는 수장고’를 만들었고, 빛․바람 등의 자연을 실내로 유입하는 통로인 회랑을 통해 기획·상설 전시가 연계되도록 했다.

개관 개관기념전으로 25일부터 ‘존재의 흔적’전이 열린다.내년 1월 22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로 김창열화백의 기증 작품들을 연대기적 보여주는 자리다. ▲ 1960년대 초의 ‘앵포르멜’시기로부터 1970년대를 거쳐 80년대까지 물방울이 형성되어온 과정을 보여주는 ‘물방울의 기원’▲ 1980~90년대까지 ‘회귀’ 연작을 중심으로 대형 작품들이 전시 되는 ‘존재의 흔적들’▲ 한자 및 천자문 등 화면의 주제와 배경의 관계에 있어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는 시도들을 보여주는‘물방울의 변주’로 구성된다.

김창열 화백은 1929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서예를 사사 받은 그는 붓글씨를 통해 회화를 접했고, 광성고보 시절 외삼촌으로부터 데생을 배우면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해방의 혼란 속에서 사설미술학원인 경성미술연구소에 다니다가 몇달 후 이쾌대 선생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워 나갔다. 

194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였으나 곧이어 일어난 6․25 전쟁으로 1950년 학업을 중단했다. 그는 강제 징용을 피해 월남하여 경찰학교에 지원하였고, 1955년까지 경찰생활을 지속하였다. 특히 1952년부터 1년 6개월간 제주에 피난 와서 제주시 도심과 애월, 함덕 등에 거주하며 제주와의 인연을 쌓았다. 

1955년 고등학교 교사 자격 검정시험에 합격한 후, 경찰에서 나와 서울과 수도권의 고등학교에서 짧은 기간 동안 미술교사로 일했다. 1957년에는 박서보, 정창섭 등과 함께 한국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여 한국의 급진적인 앵포르멜 미술운동을 이끌었다. 

이후 세계무대로 눈을 돌린 그는 1961년 제2회 파리 비엔날레, 1965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출품하였다. 김창열은 1966년 부터 1968년까지 미국 아트 스튜던트 리그(Art Student League)에서 판화를 공부하고 1969년 백남준의 도움으로 파리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여했고, 이를 계기로 뉴욕을 떠나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1970년 파리에서 약15km 떨어진 마구간에 아틀리에와 숙소를 마련한 그는 이 시기에 평생의 반려자인 마르틴 질롱을 만났다. 1972년 파리 살롱 드 메에 “밤의 행사(Event of Night)”를 출품하며 유럽 화단에 본격적으로 데뷔하였고, 이후 현재까지 물방울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04년 프랑스 국립 쥬드폼 미술관에서 물방울 예술 30년을 결산하는 전시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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