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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문학기행] ‘진정한 나’를 찾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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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23 01:17:24 수정 : 2016-09-23 01: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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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식지 않았던 눈부신 맨발의 시절
내 꿈이 뿌리내린 자유의 땅 밟고 싶어
대학에서는 인문학 수업이 점점 축소돼가고 있지만, 학교 바깥에서는 ‘어른들을 위한 인문학 수업’이 점차 활기를 더해 가고 있다.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인문학 강연에 나서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간절한 표정으로 ‘진정한 나’를 찾고 싶어 한다. 그 간절함에 감동받아 나 또한 더욱 열정적으로 강의를 준비하게 된다. 학교 밖 인문학 강연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하면 나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진정한 나’를 찾는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그럴 때마다 나는 독서와 글쓰기의 힘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고, 비록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아주 느리고 꾸준하게 우리의 삶을 바꾼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최근에는 최문자 시인의 ‘발의 고향’을 읽으며 무릎을 탁 쳤다. 내가 지금보다 더 나다웠던 시절을 향한 그리움이 그 시 속에 오롯이 박혀 있었다. “내가 나라는 때가 있었죠/이렇게 무거운 발도/그때는 맨발이었죠/오그린 발톱이 없었죠/그때는/이파리 다 따 버리고/맨발로 걸었죠.” 항상 ‘마음만은 맨발’이었던 그 시절. 오그린 발톱도, 딱딱한 굳은살도 없었던, 눈부신 맨발의 시절. 어떤 마음의 무장을 하지 않아도 그저 ‘맨발의 나 자신’만으로도 충분했던 시절.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정여울 작가
“그때는/세우는 곳에 서지 않고/맨발로/내가 나를 세웠죠/그때는/내 이야기가 자라서/정말 내가 되었죠/불온했던 꽃 한철/그때는/맨발에도 별이 떴죠/그 별을 무쇠처럼 사랑했죠.” 소리내어 읽으면, 발가락이 문득 간지러워지기 시작한다. 발바닥이 아플까봐 몸 사리지 않고, 맨발로 성큼성큼 이 땅을 걸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기 시작한다. 간절하게 찾고 싶다. 누구의 눈치도 아랑곳 않고, 내 꿈이 씨앗을 파종하던 그 잃어버린 시간을. 어린 시절 내 발은 곧 씨앗처럼 어디에서나 곧잘 뿌리를 내렸다. 지금은 너무나 신중해진 나머지 꿈의 씨앗을 좀처럼 뿌리지 못한다. 여기가 과연 내가 뿌리내릴 수 있는 곳인지 너무 깊이 생각하다가 꿈의 파종 시기를 놓쳐버리곤 한다. 어디서나 민들레 홀씨처럼 자유로이 꿈의 씨앗을 뿌리던 시절에는 참 쉽게 누군가를 좋아해버렸고 참 순순히 무언가를 향해 열정을 쏟아부어도 결코 지치지 않았다. 사랑했던 이들에게 버림받아도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내가 나를 들 수 없는/무거운 발/가슴에서 떨어져 나간 별똥별이죠/발도 고향에 가고 싶죠” 지금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지기도 전에, 혹시 상처받지나 않을까 걱정부터 한다. 꿈의 씨앗을 뿌리기도 전에 걱정의 구름부터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그런 내게 이 시를 소리내어 읽어준다. 진짜 내 발의 고향을 알기 위해서는 맨발로 걸어봐야 한다. 외출용, 운동용, 멋내기용 신발이 아닌, 내 울퉁불퉁한 맨발의 감촉으로 세상과 교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맨발로 철벅철벅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피가 나면 좀 어떤가. 상처 난 맨발에서는 다시금 분홍빛 새살이 돋아날 터인데. 이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 문득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진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로운 땅에 내 꿈의 씨앗을 뿌리내리고 싶어서. 그 흙냄새 그윽한 자유의 땅을 맨발로 자근자근 밟고 싶어서.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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