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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상만 500명 인터뷰… 국위선양 큰 보람, 노벨상 버금 ‘디플로머시 어워드’ 창설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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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23 21:43:08 수정 : 2016-09-23 21: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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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길] 40여년간 민간외교 첨병 역할 월간 디플로머시 임덕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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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학생의 장래 희망은 국회의원이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법대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언론사 논설위원으로 활약하고, 대학에서 국제법을 강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영문 월간지를 만들어 세계 정상들과 인터뷰를 하며 반평생을 보냈다. 영문 월간 Diplomacy(디플로머시·외교) 임덕규(80)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만나 삶의 여정을 들어봤다.

독립운동가이며 집안 어른인 임병직 전 외무부 장관이 1972년 어느 날 “영어 잡지를 만들어 외국 지도자를 설득하면 나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권유’한 것이 인생을 바꿔 놓았다. 임 회장은 3년간 준비 끝에 1975년 8월 디플로머시 창간호를 낼 수 있었다. 당시 주요 재산목록인 전화를 잡혀 마련한 300만원으로 사무실을 장만하고 집을 담보로 창간자금을 댈 정도로 적지 않은 고충이 뒤따랐다는 게 그의 소회다.

1971년 8월 중국 작가 린위탕(林語堂)과 포즈를 취한 임 회장.
임 회장은 그동안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후쿠다 다케오 일본 총리 등 인터뷰를 한 세계 정상만 해도 무려 500여명이나 된다. 그의 사무실 벽에는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인도의 인디라 간디와 싱 총리,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등과 인터뷰하며 찍은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다.

압둘라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레흐 바웬사 폴란드 대통령,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세계의 석학 아널드 토인비 교수 등과의 인터뷰 장면도 보였다. 그의 캘린더에는 주한 대사관 초청 행사와 경축일 일정으로 꽉 차 있다. 

1973년 세계적인 석학 아널드 토인비 교수와 자리를 함께한 임 회장.
디플로머시는 각국 정상들을 만나 인터뷰를 통해 그 나라의 좋은 점을 전 세계로 알린다. 표지에는 대통령과 국왕, 총리 등의 사진을 싣는다. 뉴스 가치뿐 아니라 영구 작품을 제작한다는 편집 방향에 따라 세계 정상의 연설문과 성명서 전문 등을 게재했다. 국가 주요 정책결정권자와 대학, 금융계, 기업인,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그동안 인터뷰를 하며 애로점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인생이란 힘드는 재미로 사는 것 아니냐”는 유머 담긴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창간 초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지금은 잘 결심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흐뭇해했다. 이어 임 회장은 “특집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지만 최고 3만부까지 발행했다”며 “언론을 통해 민간외교를 한다는 게 큰 보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버킹엄궁에서 추규호 전 주영대사(현 한국외교협회 부회장)에게 신임장 제정 후 따로 만나 자신이 표지에 실린 디플로머시를 보여 주며 호의를 보였다는 일화도 있다.

인터뷰를 한 정상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인사는 누구냐는 물음에 그는 “꽃 중에 어느 꽃이 제일 고운가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웃으며 즉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 뜸을 들인 후 1995년 11월 방한한 장 주석과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했다. 임 회장은 ‘제 밥 먹고 제 일만 하면 존경을 못 받고 제 밥 먹고 남의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 뒤 “장쩌민 주석이 북한의 김정일을 설득해 남북한에 평화를 정착하면 노벨 평화상을 받지 않겠느냐”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그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에 장쩌민 주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하며 “한번 해보겠다”고 응수했다고 한다. 

1975년 영문월간 Diplomacy(디플로머시)를 창간한 임덕규 회장은 “41년간 대통령, 총리, 국왕 등 세계 정상 500여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민간외교를 한 것이 큰 보람”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2004년 1월 임명된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 출마를 선언할 것을 제안한 데 이어 주한 외국 대사 중심으로 ‘반사모’(반기문을 사랑하는 모임)를 조직해 반 총장 선출에 노력한 것은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원 기자
그의 소년 시절 꿈은 1981년 11대 국회에서 이뤄졌다. 고향인 충남 논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것이다. 지금 정치와 비교하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정(政)은 정야(正也)라고 하지 않던가”라고 반문했다. 모름지기 정치는 정직하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임 회장은 거짓말과 욕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국회의원은 상상할 수 없는 언행을 함부로 하는데 지도자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최근 금배지를 달지 않은 의원을 보고 “배지를 달지 않으려면 의원 안하는 게 낫다”고 면전에서 조용히 타일렀다고 한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의원은 당연히 배지를 달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국회의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금배지를 달면 말과 행동을 조심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임 회장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넥타이를 맨다. 1년 365일 정장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의관을 단정히 하면 자연히 몸가짐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는 1992년부터 충청권 출신 주요 인사들이 참여하는 ‘백소회(백제의 미소 줄임말)’ 총무를 맡아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그의 원만한 성품과 성실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임 회장의 삶에서 한·인도협회를 빼 놓을 수 없다. 임병직 전 장관이 1964년 대사급 주뉴델리 총영사에 부임한 후 그는 당시 중립국인 인도와의 교류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양국 우호 증진을 위한 단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1966년에 한·인도협회를 창립했다. 간사로서 협회를 만드는 데 산파역을 한 그는 1982년부터 현재까지 회장을 맡고 있다.

한·인도협회를 이끌면서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만났다. 임 회장은 “반 총장과는 고향, 학교, 직장이 달라 한동안 인연이 없었다”며 “1972년 주뉴델리 3등서기관으로 일 할 때 알게 됐다”고 기억했다. 그 후 반 총장이 한·인도협회 모임에 자주 나와 친하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반 총장과 맺은 인연은 44년간 이어지고 있다.

2004년 1월 외교통상부 장관에 임명된 반 총장은 이틀 후 임 회장과 오찬을 함께했다. 임 회장은 이 자리에서 반 장관에게 유엔 사무총장 출마 선언을 강력히 권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카드가 처음으로 나온 것이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이 아시아권에서 선출되는 순서이므로 반 장관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날부터 임 회장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만들기에 총대를 멨다. 주한 외국 대사 중심으로 ‘반사모’(반기문을 사랑하는 모임)를 조직해 반 총장 선출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는 “한국에 노사모가 있는데 반기문 러브 클럽을 만들자”는 논리로 상대를 설득했고, 대사들을 만나면 손을 번쩍 들어 반사모라고 외쳤다. 그의 세계적인 인적 네트워크는 반 총장을 배출하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 총장을 향한 그의 열정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영원한 ‘반기문 맨’이다.

그는 이날 기자와 인터뷰를 하며 반 총장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고, 옹호했다. 반 총장이 외교관 출신으로 국내 정치에 약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한국의 중소기업 사장이 세계적인 대기업 회장에게 ‘내 회사를 경영할 수 있겠나’라고 물으면 ‘내가 맡으면 당신 회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말하지 않겠느냐”는 말로 대신했다. 한국이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 총장의 글로벌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반 총장을 겨냥한 ‘기름 장어’ 비판에 대해 그는 “절대 공감하지 못한다”고 못을 박았다. 국제사회에서는 오히려 반 총장이 용기 있는 지도자로 각인돼 있다고 반박했다. 임 회장은 “반 총장이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으론 목숨을 걸고 다닌다”며 “국제 분쟁과 갈등을 협상, 타협, 설득을 통해 세계평화를 창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예까지 들었다. 2010년 5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엔학교를 폭파하자, 반 총장은 폭파 현장을 방문해 엄청 화난 모습으로 이스라엘을 공개적으로 강력히 규탄했다. 그날 반 총장은 이스라엘 대통령과 총리를 만나 만찬을 같이했는데, 이는 국제 협상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회장은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을 대선 결과 불복에 따른 내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넘겨 평화파괴범으로 재판을 받도록 하고, 남수단의 독립, 미국과 중국을 설득해 2015년 12월 파리에서 기후변화협약을 채택한 것 등을 반 총장의 업적이라고 열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최근 반 총장을 위한 포럼이나 팬클럽 등이 생기는 데 대해 “올 연말까지 조용히 있는 것이 반 총장을 돕는 일”이라며 자중할 것을 당부했다.

세계지도자 대상 재단을 설립해 ‘디플로머시 어워드’를 수여하는 것이 임 회장의 남은 소망이다.

그는 “몇해 전 아프리카 어느 나라 현직 대통령이 ‘디플로머시 어워드’를 줄 수 없겠느냐고 여러 차례 문의해 온 적이 있었다”며 “그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상을 받겠다는 의사까지 표시했으나 당시엔 준비가 되지 않아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노벨평화상 같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의욕을 보였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

◆ 임덕규 월간 디플로머시 회장 약력

△1936년 충남 논산 출생 △논산 대건중, 동성고, 미국 메릴랜드대 수료, 동국대 법정대학 졸, 동국대 대학원 졸, 명예 법학박사(대만 문화대) △신아일보 논설위원 △동화통신 출판부국장, 논설위원 △동국대 법대(국제법) 겸임교수 △서강대·경상대 강사 △영문월간 Diplomacy 창간·발행인 △제11대 국회의원 △한국 국민당 부대변인· 충남도당 위원장 △신민주공화당 충남도당 위원장 △세계국제법협회(ILA) 세계회장 △세계외교연구원 이사장 △한·인도협회 회장 △백소회(충청 명사모임) 총무 △반사모(반기문사랑모임) 조직 △현 Diplomacy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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