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의 집단행동은 국내 기초연구의 토대가 붕괴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왔다. 이들은 지금의 연구지원 방식이 계속되면 한국 기초과학의 미래는 없다고 우려한다. 올 3월 국내 이공계를 대표하는 5개 대학의 연구부총장이 단기 성과와 물량 위주에 치우친 정부 R&D 지원 평가 방식의 개선을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기초과학 연구는 연구자가 스스로 정한 창의적 과제에 오랫동안 매달려야 성과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정부가 정해준 분야에 지원해야 연구비가 나온다. 그러다 보니 연구자들이 지원을 받으려고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는 정부의 기획 연구에 매달리는 일이 허다한 실정이다. 창의적 연구는커녕 현실과 괴리된 연구과제가 판을 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카이스트의 변신은 신선한 충격이다. 지난 19일부터 학부생과 교수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트 공모에 나선 카이스트는 연구과제로 ‘현재의 핫이슈가 아니고, 10년 안에 상업화하기 어려운 주제’로 정했다고 한다. 돈이 안 돼도 좋으니 창의적인 과제에 마음껏 도전하라는 얘기다.
과학분야 노벨상에서 한국과 일본의 성적표는 0:21이다. 우리나라의 R&D 투자는 지난 10년간 2배나 늘어났지만 국가 R&D 경쟁력은 세계 11위에서 19위로 되레 후퇴했다. 노벨상과 같은 과학적 성취나 R&D 경쟁력은 정부가 시키는 과제를 묵묵히 수행하는 풍토에선 기대할 수 없다. 지금 같은 일방통행식 연구지원으로는 과학 발전이나 미래 성장 동력을 위한 원천기술 확보는 언감생심이다. 정부는 창조경제를 외치기에 앞서 연구지원 풍토부터 개혁하기 바란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