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역사의 진실 회피하지 말고 잘못 반복 않는 게 가장 중요”

입력 : 2016-09-26 20:38:58 수정 : 2016-09-26 20:38:5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위안부 첫 보도’ 우에무라 전 아사히신문 기자
한국어판 저서 출간 간담회
1991년 피해 할머니 증언 보도
국제 관심 촉발… 우익 타깃 돼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게 가장 중요하죠.”

우에무라 다카시 가톨릭대 초빙교수는 ‘기억의 계승’을 강조했다. 그는 역사를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지만 일본 사회에서 기억의 계승이 적어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의 우려는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로 일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보도한 뒤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의 출간을 기념해 26일 한국 언론과 만났다. 

우에무라 다카시 가톨릭대 초빙교수가 26일 서울 종로구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91년 8월 11시, 아사히신문 사회부 기자로 일하던 우에무라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처음으로 자신의 체험을 증언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 언론보다 먼저 보도한 것이다. 보도 3일 뒤, 김학순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 경험을 증언했다. 보도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지만 일본 우익이 그를 공격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2014년 1월,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은 우에무라의 기사가 ‘정신대’라는 용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고, 강제연행이 있었던 것처럼 쓰고 있어 “날조기사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슈칸분슌의 보도 이후 신문사를 퇴직해 대학으로 전직하려던 계획은 “우에무라를 그만두게 하라”는 집요한 항의로 무산됐고, 가족까지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그는 “기사를 날조하지 않았다. 나를 공격하는 목적은 언론 자유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기자들은 우에무라처럼 될까 무섭다고 말합니다.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셈이지요.”

일본이 10억엔을 내고 ‘위안부재단’을 설립키로 하는 등의 한국·일본 정부의 합의에 대해 우에무라 교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일방적인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돈만 내면 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꼬집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