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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순결·선악… 인류 가치관도 진화의 산물

입력 : 2016-10-01 03:00:00 수정 : 2016-09-30 20: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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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채집시대·농경시대·화석연료시대 / 에너지 획득 방식 따라 사회시스템 변화 /‘물질의 힘’이 어떻게 가치관 조정했는지 해부
이언 모리스 지음/이재경 옮김/반니/2만2000원
가치관의 탄생/이언 모리스 지음/이재경 옮김/반니/2만2000원


진화는 생물학적 차원으로 이해된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신체를 변화시킨 개체가 종을 영속시켜 번성해 간다는 개념이다. 진화를 문화적인 차원에 대입하는 것도 가능할까.

“내 이론은 명백한 진화론이다. 인간 본성은 수렵채집인과 농경민, 화석연료 이용자가 내키는 대로 아무 도덕체계나 그릴 수 있는 백지가 아니다. 내가 차례로 상술할 세 가지 가치체계는 환경변화에 적응한 진화의 산물이다.”

인류는 당대의 환경에 적합한 에너지 획득 방식을 개발하며 발전해 왔다. 그것은 수렵채집시대, 농경시대, 화석연료시대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인류가 공유하는 수많은 가치관들은 에너지 획득 방식에 적합한 것을 찾아낸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니 제공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시스템이 변하면 자체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치관을 조정한다는 의미다. 가치관의 조정을 좌우하는 것은 ‘사회의 가용 에너지원’이다. 에너지 획득 방식에 따라 인류의 역사를 ‘수렵채집시대’, ‘농경시대’, ‘화석연료시대’로 구분하며 이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 핵심 관심사인 공평, 공정, 사랑과 증오, 위해방지, 신성(神聖)에 대한 합의 등을 결정하거나 최소한 한정했다고 주장한다.

수렵채집인들은 공유에 철저했다. 한 학자는 아프리카의 바카족 소년이 활을 쏘아 잡은 식용 거미를 친구들과 신중하게 나누는 모습을 보고했다. 다리는 한 명이 3개를, 다른 두 명은 2.5개를 가졌다. 적게 가진 두 명은 다른 부위를 차지해 공평을 기했다. 이들에게 공유하지 않음은 죄악이었다. 수렵채집인들이 공유에 민감한 것은 소규모 단위로 잦은 이동을 해야 했던 생활방식에서 비롯됐다. 사냥에서 동물을 잔뜩 잡아와도 본인, 가족의 미래를 위해 식량을 비축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오늘의 풍요를 남과 나누고, 오늘 내 호의에 덕을 본 사람이 다른 날 내게 보답할 것을 기대하는 편이 낫다”고 설명한다.

혼전순결, 정조에 대한 인식변화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수렵채집인들은 배우자의 순결에 상당히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물질적 성공은 재산의 상속보다는 사냥하고, 채집하고, 연합하는 능력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생물적인 친자 여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상속할 재산이 생긴 농경인들의 태도는 달랐다. 그들에게 경작지, 가축, 농사 장비 등 상속 재산의 유무는 말 그대로 생과 사의 문제였다. 따라서 경제적 주도권을 쥔 남자는 재산을 물려받을 아이가 자기 자식이 맞다는 점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남자의 결혼연령이 30세 정도인 것에 비해 여성은 성경험 기회가 적은 15세 무렵에 결혼을 했던 이유다. 농경시대에 접어들면서 조상을 초자연적인 존재로 숭배하는 관념이 발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의 노동분화도 시대에 맞게 변화됐다. 수렵채집시대에는 집단의 규모가 매우 작았기 때문에 노동 분화는 나이, 성별에 따라 간단한 가사분담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시간이 흘러 농경이 시작되면서 복잡한 분화가 발생했다. 인구가 늘고, 노동인력 대비 가용 토지가 귀해지면서 생산성은 중요한 관건이 됐다. “남성의 강한 신체 근력이 농사일에 중요해졌고, 사람들은 점차 바깥일을 남자의 일로 인식하게” 되었다. 또 출산이 늘면서 여성이 육아와 농사를 병행하기가 어려워지지 남녀의 영역은 바깥일과 집안일로 분리됐다.

화석연료시대에는 또 한 번 극적인 변화가 생겼다. 유아생존율이 높아지면서 화석연료시대의 여성은 이전처럼 많은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어졌다. 출산, 양육에 필요한 시간은 줄면서 여유가 생긴 여성의 사회진출은 늘었다. 각종 가전 기구의 발달은 여성의 무보수 가사노동을 대신하기 위해 시장이 발빠르게 대응한 결과였다.

흥미롭게도 책은 저자의 이론에 대해 학자 세 명, 문학가 한 명의 논평을 함께 싣고 있다. 이들의 글은 저자의 이론에 동의하거나 보충하지만, 날카로운 비판으로 독자들이 균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시도한다. 영국 엑서터대 명예교수인 리처드 시퍼드는 “저자의 견해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생각보다는 지배층의 이념에 가깝다”고 꼬집는다. 특히 진화론적인 접근법이 자본주의 경제 질서의 중심 이념을 지나치게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은 네 명의 논평에 대한 저자는 폭넓은 반론을 담고 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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