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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 숨겨진 ‘보이지않는 건축’의 힘

입력 : 2016-10-14 19:49:42 수정 : 2016-10-14 19: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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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민 삶 생생한 오래된 건물·낡은 창살…
네온사인 뒤편의 삶터가 지닌 아름다움 전해
다른 땅 다른 삶에 획일적 ‘마스터플랜’ 개발
“지역의 고유함이나 정체성 앗아갔다” 개탄
승효상 지음/돌베개/1만4000원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승효상 지음/돌베개/1만4000원


건축가 승효상은 “타성과 관습의 도구를 꺼내어 종래의 삶을 재현하는” 것은 건축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냥 관성적 제품이며, 그래서 새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의 소망을 배반하는 일이 되며, 어쩌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 땅을 범하는 일이 되고 만다.”

광야로 나서 메시아가 되기 이전 예수의 직업은 건축가였을 것이라고 파악한 그는 ‘건축가로서의 예수의 삶’이란 상상에 이르러 건축가의 바른 태도를 묵상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건축과 그것을 품은 도시의 의미는 보다 명확해진다.

“건축은 우리의 삶을 이루게 하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수단이니 건축 설계는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책에서 승효상은 건축, 도시와 삶의 연결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삶의 “애환과 열정을 담아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면서” 존속하지 못하는 건축과 그런 건축으로 이뤄진 도시는 부지기수다. 


미국의 건축가 루트비히 힐버자이머가 1924년 제안한 고층 건물의 도시(사진①), 1958년 세워진 프랑스 무렝의 신도시(사진 ②), 1955년 지어 17년 만에 폭파된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프루이트아이고 주거단지(사진③). 건축가 승효상은 ‘마스터플랜’에 따라 세워졌다 실패한 외국의 건축사례를 언급하며 천편일률의 풍경으로 조성된 한국의 신도시를 떠올린다.
돌베개 제공
1972년 7월 15일 오후 3시 32분, 미국 세인트루이스시 정부는 ‘프루이트아이고’라는 2870가구의 주거단지를 폭파시켰다. 1955년 세워지기 이전부터 여러 건축 매체가 최고의 아파트라고 칭송했던 곳이었다. 당시 세계 건축계를 이끈 르코르뷔지에와 근대건축국제회의가 주창한 신도시에 대한 마스터플랜 강령을 충실히 추종해 ‘미래도시의 모범’으로까지 불렸다. 23만여㎡의 땅 위에 11층 33개동의 아파트를 균일하게 배치했고, 흑인과 백인 가구의 지역을 나눴다. 공간을 기능과 효율로 재단해 분류했음을 물론이다.

그러나 프루이트아이고는 얼마 되지 않아 마약, 강간, 살인 등의 범죄 소굴이 되었고, 계급적으로 분류된 구조로 인해 계층별 갈등을 촉발했다. 그 결과가 1972년의 폭파였다. 모더니즘 건축의 종말을 구하는 순간이자 마스터플랜에 의한 도시 조성의 방식이 서구에서 폐기되는 계기였다.

폐기된 마스터플랜은 한국 땅에서는 활개를 쳤다. 1970년대 경제개발의 광풍과 함께 도시 내부에 등급과 위계를 나눈 도시가 등장했다. 5년 만에 만들어진 경기도 분당은 ‘마스터플랜의 기적’이었다. 분당은 ‘도시의 성공’이 아니라 ‘부동산의 성공’이었고, 이어서 마스터플랜의 도시들이 전국으로 퍼졌다. 승효상은 이런 도시와 건축을 두고 “모두가 다른 땅이며 다른 삶이었는데 표준적 모형, 표준적 지침을 강제하여 천편일률의 풍경으로 만든 까닭이니 장소가 가진 고유함이 사라지고 지역의 정체성은 소명된 것”이라고 개탄한다.

흥미로운 점은 주거민의 생생한 삶을 반영한 도시, 건축을 다른 곳도 아닌 서울에서 발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확히 말해 서울을 장악한 첨단 건축, 저급한 현대적 건물은 아니다. 승효상은 강북의 골목길 풍경을 이야기한다. “지형과 경사를 따라 불규칙하게 조직된 서울의 골목길에서 건축의 지혜와 영감을 얻는” 외국 건축가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은 종묘, 창덕궁의 건축과 후원의 조경은 외국 건축가들을 망연자실하게 하며, 그들에게 너무나 비현실적인 사건이라고 전한다. 홍대는 또 “삶을 즐기는 방법을 알고 있는” 건축가들에게 대단히 자극적인 서울의 문화를 대표하는 곳이다. 서울의 정체성을 만드는 결정적인 조건의 서울을 둘러싼 산이라며 승효상은 이렇게 적었다.

“그(산) 사이를 흘러가는 물줄기들이 이루는 풍경이 서울의 고유한 지리여서, 산은 말 그대로 랜드마크이며 도시는 그 속에 작은 건축들이 모인 집합체다.”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지금의 입장’에서 다시 정리해 묶은 책이다. 승효상은 나쁜 건축으로 구축한 도시에 사는 시민은 나쁜 삶을 살게 된다고 주장한다. 나쁜 도시란 계급적인 도시다. 거주지를 계층별로 분류하고, 명령을 전하고 통제하기 쉬운 거리를 구성하며, 권력자의 구미에 맞는 건축과 상징물을 랜드마크로 삼는 곳이다. 좋은 도시는 어떤 모습인가. 오래된 건물, 낡은 창살, 정형화되지 않은 골목길, 시민이 자유롭게 오가는 빈터와 마당 등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높은 빌딩과 호화로운 네온사인 뒤편에 숨은 시간의 때가 묻은 삶터가 진정 아름답고 정직한 도시의 풍경인 것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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