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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자신의 실수와 정부의 실책 또는 대외 정책의 실패 등으로 대통령이 국민이나 특정 국가에 사과해야 할 일이 늘 쌓여가기 마련이다. 미국의 대통령은 국정의 주요 고비마다 ‘사과’와 ‘유감 표명’ 등을 통해 특정 사안을 일단락짓는다. 퇴임을 앞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현재 지지율 50%가 넘는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지난 8년간의 재임 기간 동안 1년에 수차례 미국인과 특정 국가에 사과를 계속해왔다. 2013년에는 전국민 건강보험 제도인 오바마케어가 전면 시행되면 기존 보험 가입자가 보험회사에서 쫓겨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가 실제로 그러한 사례가 속출하자 국민에게 사과했다. 오바마는 올해 5월 베트남을 방문해 베트남전에 따른 민간인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과테말라, 아프가니스탄, 독일, 터키, UAE 등도 오바마의 사과를 받았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최근 ‘진실한 대통령은 잘못했다고 말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는 상처를 아물게 하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WP는 “대통령의 사과는 잃어버린 신뢰와 선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사과를 할 때에는 신뢰를 회복하거나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분명한 목표가 설정돼 있어야 한다고 WP가 강조했다.
미국에서 통상 대통령 사과에는 양심의 가책, 잘못 시인, 재발 방지 약속 등 3대 요소가 들어있다. 이 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잘못 인정’이다.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면 그에 따른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잘못을 시인하는 부분에는 백악관 법률고문이 개입해 모호한 표현으로 물타기를 한다. 미 대통령이 ‘사과’(apology) 대신 ‘유감’(regret)을 표명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법적 책임 때문이다. 유감 표명은 잘못을 했지만 책임을 지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조지 W 부시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로 대규모 이재민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자신의 측근에게 ‘엄청나게 일을 잘 처리했구나’라고 칭찬했다가 뒤늦게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사과했다. 빌 클린턴은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사건으로 탄핵의 위기에 몰리자 “제가 아내를 비롯해 국민을 오도했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미국 정치사에서 ‘거짓 사과’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미국 대통령의 예를 보더라도 박 대통령이 최순실 쓰나미를 헤쳐가려면 나라를 걱정하던 초심으로 돌아가 대국민 사과를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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