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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지줄대는 실개천의 속삭임…시인 옆에서 들어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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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18 14:03:22 수정 : 2016-11-18 14: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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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으로 ‘향수 여행’
대청호의 청풍정은 조선시대 개혁파 정치인 김옥균과 기녀 명월이의 사랑이야기를 품은 곳으로 갈대들이 바람에 날리며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갑신정변으로 쫓기는 몸이 된 김옥균은 명월과 함께 이곳으로 숨는데 명월은 자신 때문에 김옥균이 대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곳에서 몸을 던졌다고 한다.
너른 들판에서 풀 뜯는 황소 한 마리가 생각날 수도 있고, 골목이나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던 장면이 떠오를 수도 있다.

고향이란 말을 들었을 때 각자 떠오르는 모습은 다르다. 하지만 푸근함, 정겨움, 따스함 등이 근저에 깔려 있다. 가능하다면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다시 어린 시절로 갈 수는 없지만, 당시를 마음껏 회상할 수 있는 곳이 충북 옥천이다. 거기에 더해 대청호 주변을 거닐며 고즈넉한 가을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시인은 14살인 1915년부터 옥천을 떠나 객지생활을 시작했다. 서울 휘문고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돌아온 후에도 서울에서 생활을 했다. 이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했고, 서울에 있던 1923년 ‘향수’를 쓰게 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그가 어린 시절 생활했던 고향 옥천의 모습을 그린 시다. 시보다는 노래 가락이 절로 생각날 정도로 유명하다. 옥천읍 하계리 정지용 생가 앞으로 작은 시내가 흐른다. 지금은 정비돼 옛 모습을 알기 어렵지만, 아마도 이 시내가 정지용 시인이 시를 쓰며 머릿속에 그렸던 실개천이었을 것이다.
옥천시내 음식점 등의 벽, 간판 등에는 정지용 시인의 시들이 적혀 있다.

정지용 생가는 1974년에 허물어지고 다른 집이 들어섰지만, 1996년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생가 곳곳엔 정지용 시인의 시들이 걸려 있다. 11월 말까지 정비공사를 해 지금은 제대로 살피기가 힘들다.

그의 삶에 대해서 자세히 보려면 생가 옆에 있는 문학관을 찾으면 된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정지용 시인의 밀랍인형이 의자에 앉아 방문객을 맞이한다. 누구나 시인과 같이 할 수 있도록 옆자리가 비어 있다. 전시관에는 삶과 문학을 엿볼 수 있는 자료와 시집, 산문집이 진열돼 있다.
정지용 문학관의 정지용 시인 밀랍인형.

정지용 생가에서 북쪽으로 조금 가면 시문학공원이 나오고, 그 뒤편으로 교동저수지다. 저수지엔 빨래하는 아낙네와 밭을 가는 농부, 얼룩빼기 황소 등 ‘향수’를 내용으로 하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옥천을 돌아다니면 어디에서든 그의 시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정지용 생가 근처 집들의 벽에는 그의 시와 함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생가 근처뿐 아니라 음식점 등의 벽, 간판 등에도 시 문구들이 적혀 있어 향수를 자극한다.
장령산자연휴양림 산책로 곳곳에는 정지용 시인의 시들이 여행객을 맞는다. 몇 걸음 걸으며 읽는 아름다운 시 한 편에 마음마저 치유를 받는다.
가을을 즐기며 정지용 시인을 만나려면 장령산자연휴양림을 찾아도 좋다. 생가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장령산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금천계곡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만 걸어도 충분하다.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로 40분 정도면 충분히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더구나 산책로 곳곳에 ‘꽃과 벗’, ‘고향’, ‘진달래’, ‘바람’, ‘유리창’ 등 정지용 시인의 시들이 여행객을 맞는다. 몇 걸음 걸으며 읽는 아름다운 시 한 편에 마음마저 치유를 받는 곳이다.
장령산자연휴양림 소원바위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조헌 선생과 6·25 전쟁 당시 피란을 가던 주민들이 소원을 빌었던 곳이다.

돌아오는 길에 소원바위 앞에서 돌을 하나 쌓고, 소원을 비는 것도 잊지 말자.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조헌 선생과 6·25전쟁 당시 피란을 가던 주민들이 이곳에서 소원을 빌었던 곳이다.

◆금강이 만든 옥천의 풍광들

옥천은 ‘비옥한 물줄기’라는 뜻이다. 금강 줄기가 흐르는 곳으로 1980년 대청댐이 생겨 대청호가 중심에 있다.

옛 금강 줄기이자 지금의 대청호 풍광은 선인들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부소담악이다. 이름이 어렵다. 이 지역이 부소머리 마을인데, 이 마을 앞 물 위에 떠 있는 바위산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기암절벽이 물 위로 700m나 이어져 있다. 일명 12폭 병풍바위라고도 한다. 율곡 이이와 우암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칭한 절경이다. 금강 줄기에 있는 바위산들이 절경을 이루었지만, 대청댐이 생겨 수위가 높아지자 바위병풍을 둘러놓은 듯한 풍경이 됐다.
부소담악은 부소머리 마을 앞 물 위에 떠 있는 바위산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기암절벽이 물 위로 700m나 이어져 있어 12폭 병풍바위라고도 한다. 율곡 이이와 우암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칭한 절경이다.

부소담악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추소정이다. 황룡사 앞에 공영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부터 나무데크를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추소정이다. 가는 길에 장승들이 여행객을 맞는다. 추소정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S’자로 굴곡을 이룬 검은 바위절벽과 맞닿은 호수 풍경이 다른 곳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풍광을 만들어낸다. 추소정에서 이어진 능선길이 있는데 이곳을 걸으면 좀더 자세히 바위들을 볼 수 있다. 능선길은 협소하고, 양 옆으로 낭떠러지가 이어져 있어 아찔하지만 호수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추소정에 나와 차를 몰고 옥천 시내 쪽으로 3분 정도 가다 보면 공터가 나온다. 이곳에선 추소정과 부소담악을 함께 조망할 수 있다. 공터 아래로 길이 나있는데, 이 길을 따라 가면 호수 앞까지 갈 수 있다. 부소담악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청풍정도 대청호의 풍경을 보기엔 제격이다. 주변으로 갈대들이 바람에 날리며 가을 분위기를 풍긴다. 
청풍정 근처 바위엔 ‘명월암(明月岩)’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 개혁파 정치인 김옥균과 기녀 명월이의 사랑이야기를 품은 곳이다. 갑신정변(1884년)으로 쫓기는 몸이 된 김옥균은 명월과 함께 이곳으로 숨는다. 명월은 김옥균이 자신 때문에 대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곳에서 몸을 던진다. 이후 김옥균은 청풍정 옆에 있는 바위에 ‘명월암’이라는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김옥균이 새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청풍정 근처 바위엔 ‘명월암(明月岩)’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둔주봉에 오르면 한반도 좌우가 바뀌어 있는 지형을 볼 수 있다.
금강 줄기가 만든 또 하나의 명소를 보려면 둔주봉으로 가야 한다. 둔주봉 정상에서 금강을 내려다보면 한반도 좌우가 바뀌어 있는 지형을 볼 수 있다. 해발 270m의 산봉우리인 둔주봉을 오르는 길은 수월하다. 근처에 차를 대면 15분 정도면 충분히 오른다. 정상엔 정자가 있고, 거울이 하나 달려 있다. 거울 속에 비친 한반도는 제 모습을 띠고 있다.

옥천=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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