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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죽음이 있으니 삶이 아름다워… 이 세상은 연옥과 가장 흡사”

입력 : 2016-11-28 20:54:12 수정 : 2016-11-28 20: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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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연옥의 봄’ 펴낸 황동규 시인 “나는 죽은 다음의 세상을 믿지 않아요. 하지만 있는 것처럼 생각해도 나쁘지는 않아요. 연옥이 가장 인간다운 옥(獄)일 겁니다. 천국은 지루하지 않겠어요? 연옥답게 사는 거죠, 지옥답게 사는 게 아니고. 우리 삶에 주어진 조건 속에서 열심히, 최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게 제일 가치 있는 거죠.”

황동규(78) 시인이 최근 펴낸 열여섯번째 시집 ‘연옥의 봄’(문학과지성사)을 들고 그를 만나러 수원에 갔다. 그는 수원에서 개최된 전국시인대회에 참가해 기조강연을 하고 하룻밤 그곳에서 유숙한 터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얼굴은 맑고 여전히 강건한 인상이었다. 그는 “연옥은 단테가 지옥에서 쓰다 쓰다/ 채 못다 쓴 기억들을 털어버린 곳”이라고 썼거니와 가장 이 세상과 닮은 옥이 연옥이라고 했다. 천국은 “기대해도 좋고 기대하지 않아도 좋은 곳이어야 진짜 천국”이며 열반도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아야 열반이지 열반을 위한 열반은 아니다”고 했다. 그는 기독교 가톨릭 불교를 두루 존중하지만 어느 한 종교를 믿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누군가 이러한 태도를 두고 “선생님은 보험을 여러 군데 들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는데 그는 정작 “어느 한 종교가 나를 재판한다면 나야말로 아주 불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시집 표제작은 이렇게 흘러간다.

마지막 시집일지도 모른다는 ‘연옥의 봄’을 펴낸 황동규 시인. 그는 “이 세상이야말로 가장 연옥과 흡사하다”면서 “죽음이 인간들에게 가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이 가던 사람을 꿈결에 놓쳤다,/ 언덕에선 억새들 저희끼리/ 흰 머리칼 바람에 날리기 바쁘고/ 샛강에선 물새들이 알은체 않고/ 얼음을 지치고 있었다./ 쓸쓸할 때 마음 매만져주던 동네의 사라진 옛집들도/ 아직 남아 있었구나! 눈인사해도 받아주지 않았다.// 기억엔 없어도 약속은 살아 있는지/ 아무리 가도 닿지 않는 찻집으로 가고 있다./ 왕십린가 청량린가? 마을버스 종점인가?/ 반쯤 깨어보니 언제 스며들었는지/ 방 안에 라일락 향이 그윽하다./ 그대, 혹시 못 만나게 되더라도/ 적어도 이 봄밤은 이 세상 안에서 서성이게.”(‘연옥의 봄 1’)

이승인지 저승인지 모를 어느 봄날 시인이 산책길에서 돌아온 감상이다. 같이 가던 이를 꿈결에서 놓쳤는지 이승에서 영영 놓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네의 사라진 옛집들이 다시 나타나고 눈인사를 해도 받지 않는 것을 보면 예삿일은 아니다. 약속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아무리 가도 닿지 않는 찻집을 향해가는 심정이란 허망하고 참담하다. 다행히 꿈이었다. 반쯤 깨어보니 라일락 향이 올라와 이승을 증거한다. 적어도 봄밤만큼은 이승에 더 머물고 싶다는 시인의 바람이 애틋하다. 일찍이 ‘풍장(風葬)’ 연작시리즈로 죽음을 가지고 놀았던 그이지만 정작 노경의 황혼에 이르러 생각하는 죽음은 어떠할까.

“그때나 지금이나 죽음에 관한 기본적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죽음에 대해서는 해방된 셈이랄까, 죽음이 있으니 삶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렇지만 인간 일반에 대해서 죽음이 가혹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들 얼마나 살아가면서 고생하고 고통받습니까?”

죽음이 인간 일반에게 덜 가혹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은 이승이야말로 연옥에 가깝다는 그의 생각과 맥이 닿아 있다. 도덕을 위반하면 그 대가로 참혹한 죽음이란 형벌이 따라온다는 맥락이 아니라, 윤리를 좇아 열심히 살았지만 실패해도 봐줘야지 죽음이 형벌로 귀결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에게 연옥은 하자 많은 인간들이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가여운 연민의 공간인 셈이다.

“옆에서 누군가 우산 쓰고 신발에 흙 묻히며/ 같이 걷고 있는 기척,/ 감각에 돋는 소름, 치수구나!/ 어디부터 다시 함께 걸었지?/ 가만, 간 지 얼마 안 되는 저세상 소식 같은 거/ 꺼내지 않아도 된다./ 너 가고 얼마 동안 나는 생각이 아팠다. 그저 말없이 같이 빗속을 걷자./ 봄 길에 막 들어서는 이 세상의 정다운 웅성웅성 속에/ 둘이 함께 들어 있는 것만으로 그저 흡족타.”(‘봄비-김치수에게’) 

지난해 저세상으로 먼저 떠난 벗 김치수를 생각하며 시인은 ‘생각이 아팠다’고 썼다. 없어도 곁에서 봄비를 맞으며 함께 걷는 듯하다. 세상의 정다운 ‘웅성웅성’ 속에 여전히 그가 있다. 그는 아끼던 제자의 부음을 듣고는 “걸음을 멈추고 아는 별들이 제대로 있나/ 잊혀진 별자리까지 찾아보았다./ 더 내려오는 별은 없었다./ 땅으로 숨을 돌리자 풀벌레 하나가/ 마음 쏟아질까 가늘게 울고 있었다”고 ‘그믐밤’에 썼다. 그는 사랑하던 제자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이 시를 썼다고 했다. 모든 좋은 문학작품은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설가 황순원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대 영문과를 나와 이 학교 같은 과에서 교수로 정년퇴직했고,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호암상 등을 두루 받았으며 술과 음악과 벗들과 더불어 한 세상 건너온 그이다. 그이에게도 좌절과 울음의 순간들이 있었을까 싶다.

“상대적으로 내가 그런 생활을 가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좌절도 많이 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음악을 하려다 발성음치여서 포기했고 학문을 하면서는 땅에 뺨을 비비며 운 적도 많았습니다. 어디를 가나 늘 아버지의 그림자가 나를 가리곤 했는데 예순을 넘어서니 해방시켜주더군요. 지난 시절에는 술 말고는 의존할 데가 없었어요. 예전에는 1년에 350일 정도 마셨는데 지금은 조금 줄어서 300일 정도 청탁을 가리지 않습니다.”

술을 마셔도 그가 쓰는 시의 긴장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시에 대한 염결성이 추동하는 힘일 것이다. 그는 종교는 삶의 일부이지만, 시는 그 삶을 다루기 때문에 종교보다 외연이 더 넓다고 했다. 종교보다 넓은 시는 그의 삶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었고 그 시 때문에 미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시적 자아가 나아졌다고 본다. 자신이 생각하는 시가 자기가 쓰는 시보다 높기 때문에 시와 대화하게 되면 자신도 조금 높아진다고 했다. 그가 고3 때 쓴,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로 이어지는 ‘즐거운 편지’를 그의 대표작으로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그의 많은 시의 배경은 겨울이고 눈이 내리는 경우가 많다.

전쟁 직후 서울은 오줌과 똥이 흐르는 폐허였는데 어느 날 눈이 내려 그곳을 하얗게 덮었을 때 감격했다고 했다. 그에게 눈과 겨울은 맑고 명징하게 세상을 감싸는 휘장이었다. 젊은 시절은 갔고, 이제 장년을 넘어서 노년의 깊은 골목까지 당도한 생이다. 이번 시집이 마지막 시집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등단 58년차(1958년 ‘현대문학’) 시인은 시적 긴장이 사라지면 그만 써야 한다고 했다.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고 했다. 자신이 죽으면 가루로 만들어 맑은 동해에 뿌려달라고 가족에게 부탁했다는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들이 소원을 이루어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하며 웃었다. 후배들에게 당부할 말을 묻자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소한 이익 따지지 않고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했다. 돌아와서 다시 시집을 들춰보니 그는 이미 시로 말하고 있었다.

“선배랍시고 한마디 한다면/ 시에도 시독(詩毒)이 있네./ …목에 두른 시구(詩句) 같은 것 모두 풀어버리고/ 시원하게 ‘나’도 풀어버리고/ 시가 아니어도 좋은 시의 세상에/ 길 트시게.”(‘젊은 시인에게’)

글·사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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