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윤정의 웰컴 투 뉴질랜드] 물감으로 흉내낼 수 없는 자연의 색

관련이슈 박윤정의 웰컴 투 뉴질랜드

입력 : 2016-12-02 14:00:00 수정 : 2016-11-30 21:04:5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밀퍼드 트레킹의 둘째 날, 폼폴로나 롯지까지
'
태고의 자연 속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이한다. 이른 아침 산장 밖으로 나와 깊게 숨을 들이킨다. 청정한 공기가 폐에 가득 찬다. 머리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다. 어제 버스와 페리 여행으로 무거웠던 몸도 맑은 공기만큼이나 가벼워졌다.
밀퍼드 트랙의 또 다른 볼거리인 습지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나무데크로 이뤄진 길이 습지 한가운데까지 이어져 있다. 트랙 주변이 붉은색 이끼들로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하다.

아침을 먹고 산장에서 마련해 준 재료로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를 만든다. 햄과 치즈가 들어간 가벼운 샌드위치와 과일들을 챙겨 길 위로 나섰다. 전체 53㎞의 밀퍼드 트랙 가운데 오늘 걸을 길은 폼폴로나 산장까지 16㎞ 구간이다. 클린턴 강을 따라 형성된 호수들과 너도밤나무 숲을 가로지르는 코스는 완만한 오르막이다. 등산로보다는 산책로에 가까울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가이드가 일행의 처음과 끝에 서고 일행은 그 사이에서 주변을 감상하며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 가이드는 길을 재촉하지 않는다. 밀퍼드 트랙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해 주면서 낙오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밀퍼드 트랙은 북쪽 방향으로만 여행이 허용되며 4일 만에 완주해야 한다. 일방통행과 기간 내 완주라는 규정 때문에 날씨가 좋지 않아도 트레킹은 계속된다. 다행히 첫날은 비가 많다는 속설과 달리 청명하고 많은 날씨를 보였다.
클린턴 강을 건너 너도밤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는 강물에서 잠시 여유를 즐긴다.

산장 옆을 흐르는 클린턴 강을 건너 너도밤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강을 가로지르는 작은 현수교에 올라서자 다리가 발걸음에 맞춰 출렁인다. 그 아래 강물은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인다. 너도밤나무 숲 사이로 터널처럼 이어진 길을 걷다 보니 밀퍼드 트랙을 상업적으로 개발한 퀸틴 매키넌이 1889년 지었다는 오두막 터가 나온다.
폭포는 맞은편에 절벽 위에서 실타래를 풀어 놓은 듯 흘러내린다. 그 아래는 거울 같은 호수가 펼쳐져 있다.

원래 이 길은 마오리 원주민들이 귀한 청옥을 수집하고 운반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이곳을 탐험한 최초의 유럽인들이 도널드 서덜랜드와 존 매케이였다. 그들은 1880년 이곳을 탐험하고 ‘매케이 폭포’와 ‘서덜랜드 폭포’ 등 밀퍼드 트랙의 비경을 세상에 알렸다. 그 뒤 매키넌이라는 기업가가 이곳을 상업적으로 개발해 트레킹을 도입한 것이다. 100년 전 깊고 험한 산속 길은 상업적으로 이용됐지만, 지금은 뉴질랜드 정부에 의해 접근이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나무숲을 벗어나 너른 습지에 들어서니 습지 가득 형형색색의 이끼들로 그림을 그려놓은 듯하다.

햇살을 가리는 나무 숲길을 걷다가 앞장섰던 가이드가 옆길로 안내한다. 밀퍼드 트랙의 또 다른 볼거리인 습지(웻랜드) 트레킹으로 이어지는 샛길이다. 나무데크로 만든 트랙을 따라 걸으니 길 주변이 붉은 색 이끼들로 가득해 마치 붉은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하다. 나무숲을 벗어나 너른 습지에 들어서니 형형색색 이끼들로 그림을 그려놓은 장관이 펼쳐진다. 작은 잡목과 바위를 뒤덮은 이끼는 마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처럼 파스텔 톤으로 가득하다. 습지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나무데크로 이뤄진 길이 습지 한가운데까지 이어져 있다. 마치 그림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걷는 느낌이다. 꽃처럼 흐드러진 이끼들 사이로 붉은 철쭉 같은 꽃들이 자리하고 있다. 선듀라는 작은 식물로 부족한 영양분을 곤충을 잡아먹으며 보충하는 식충식물이다. 눈에 띄는 붉은색으로 곤충을 유혹하는 셈이다. 실감나지 않는 식성과는 달리 습지는 그림처럼 평화롭다.
구름을 머금은 밀퍼드 트랙 전경. 밀퍼드 트랙은 북쪽 방향으로만 여행이 허용되며 4일 만에 완주해야 한다. 일방통행과 기간 내 완주라는 규정 때문에 날씨가 좋지 않아도 트레킹은 진행된다.

습지대를 벗어나 다시 본래의 길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고요한 호수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산사태로 호수가 생기면서 너도밤나무들이 물속으로 수장되었다고 해서 죽은 호수(데드 레이크)라고 불린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호수 아래로 밤나무들의 잔해가 어지러이 놓여 있다. 그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는 송어들과 물 위를 헤엄치는 푸른 오리를 보니 ‘죽은’ 호수라는 이름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높은 바위벽으로 둘러싸인 히레레폭포를 바라보며 첫날 코스의 점심을 먹는다. 준비해온 샌드위치와 과일을 가이드들이 준비해 준 차와 함께 즐긴다. 히레레폭포가 절벽 위에서 실타래를 풀어 놓은 듯 흘러내린다. 그 아래는 거울 같은 호수가 펼쳐져 있다. 개인 트레킹을 온 사람들 몇몇이 먼저 도착해 호수에 몸을 담근다. 푸른 하늘과 호수, 하얀 절벽, 그 위를 반짝이며 떨어지는 폭포까지. 간단한 점심이지만 성찬이 부럽지 않다. 지금도 충분히 비경을 자랑하지만 비가 오면 폭포의 수량이 더 늘어난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할 무렵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비를 걸치고 나뭇잎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강과 호수를 따라 걷는다.
트레킹 여정에서 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걷는 길목에 간간이 작은 나무상자 같은 덫이 눈에 띈다. 뉴질랜드 국조인 키위와 원주민 말로 피오라고 불리는 푸른 오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유럽인들이 이주해 오기 전까지 뉴질랜드는 포식 동물이 없는 새들의 천국이었다. 포식 동물이 없다 보니 키위와 같은 날지 못하는 새들이 많다. 그러나 이민 초기에 들어온 담비와 주머니쥐 같은 외래종들이 보호 종인 새들을 잡아먹으면서 주머니쥐와 담비를 잡기 위한 국가적인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데드 호수에서 만난 푸른 오리 역시 희생되고 있다고 하니 담비 박멸 프로젝트가 이해된다. 하지만 인간의 필요로 들여온 동물을 다시 생태계 보호를 위해 박멸해야 하는 역설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폼폴로나 산장 이정표. 나무와 어우러진 산장은 강을 바라보며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빗줄기가 조금 굵어질 즈음 다행히 오늘의 목적지인 폼폴로나 산장에 도착했다. 나무와 어우러진 산장이 강을 바라보며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한 후 로비로 나오니 가이드들이 넓은 창의 로비 한쪽으로 조용히 이끈다. 산장의 난간에 키아새가 앉아 있다. 앵무새과로 장난기 많고 지능이 높은 키아새는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어도 달아나지 않는다. 한참을 바라보자 키아새가 먼저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어디론가 날아간다.
산장 난간에 키아새들이 앉아 있다. 앵무새과로 장난기 많고 지능이 높은 키아새는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어도 잘 달아나지 않는다.

내일은 밀퍼드 트랙의 최고점인 매키넌 패스를 넘어가는 날이다. 가장 힘들지만 반면에 가장 아름다운 구간을 지나게 된다. 오늘 내리는 비가 더욱 아름다운 폭포를 만들어 줄 것이다. 비가 밤새 내리고 새벽에 그치길 기대하며 잠을 청한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