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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초원·탄광촌 길 위에서 만난 창… 그 속에 숨겨진 삶들

입력 : 2016-12-03 03:00:00 수정 : 2016-12-02 19: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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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일 글·사진/문학판/3만8000원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민병일 글·사진/문학판/3만8000원


박완서 선생은 즐겨 찾던 카페의 안쪽 끄트머리 창가에 앉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저자는 그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카페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이는 원경은 와온 바다이고, 중경은 이 카페의 소박하고 단아한 정원이며, 근경은 카페 창에 비치는 또 다른 바다이다. 바다가 보이는 이 집 창가에 앉아 커피를 즐겨 마시던 선생님은 창 속의 바다로 긴 여행을 떠났다.”

박완서의 죽음을 창 속 바다로의 긴 여행이라고 애통해했으니 저자에게 창은 특별한 경계인 듯 보인다.

바이칼 호숫가 비스트뱐카 마을의 창을 묘사한 문장에서 창의 이미지 조금 더 구체적이다.

“유리창 위쪽 구석에 작은 창이 하나 더 나 있다. 창 속의 창은 인간의 영혼을 비치는 은유의 창이다. 창은 시간의 끝도 깊이도 모른 채 영원을 향해 가는 바람이 잠시 머무는 공간이며 가족의 추억들이 모자이크된 자리였다.”

인간의 영혼을 비추는 창 안에서 이리의 모습을 보았노라고 고백한다. 창의 성곽 같은 빈의 골목길 벤치에서 책을 읽는 여자의 눈빛에서 저자는 “이리의 눈망울”을 본다.

“노루를 찾아 토끼를 찾아 들판을 달리는 이리처럼, 여자는 활자 냄새를 맡으며 무엇인가 찾고 있다.”

황야의 이리는 헤르만 헤세의 시에서 차용했다.

저자는 탄광촌, 일본의 설국, 몽골 초원, 잘츠부르크 등 세상 곳곳을 순례하며 마주한 창들의 고유한 색과 질감, 그리고 이야기를 전한다. 글과 함께 여행 중 찍은 200여 컷의 사진을 실어 여행지의 정취를 날것으로 느끼게 한다. 10여 년간의 방랑을 통해 저자는 창을 소재로 예술과 인간에 대한 사랑한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중세와 현대의 서양화로부터 일본 우키요에까지 풍부하게 다룬 미술 작품은 책읽기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이런 시각적 즐거움에 더해 장르를 넘나들며 음악을 소개하고 있는 독자들은 공감각적 체험을 하게 된다.

문학평론가인 임홍배 서울대 교수는 이를 “한 편의 종합예술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사진에 담긴 창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창에 비친 사물의 내면과 나의 내면이 하나의 풍경 속으로 녹아드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울러 창의 영상을 통해 자유연상처럼 펼쳐지는 심미적 사유를 접하면서 우리는 고흐에서 요제프 보이스에 이르는 현대미술의 이정표를 따라 저자와 함께 산책하게 된다”고 추천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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