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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독도 지키려면 미 교과서 동해 표기 바로잡는 게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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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6 19:24:46 수정 : 2016-12-06 22: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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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송 미 버지니아주 전 한인회장 “독도는 지키는 것이지만 동해는 찾아와야 합니다. (미국에서)일본 사람들에게 독도가 왜 일본 땅인지 물으면 ‘독도가 일본해에 있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단순하지만 분명합니다. 반면 우리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복잡합니다. 미국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설득력이 약해 보일 여지가 있지요. 그래서 동해를 어떻게 표기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홍일송(53) 미국 버지니아주 전 한인회장의 말은 명료하다. ‘동해’로 표기되어야 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6일 서울 여의도에서 홍 전 회장을 만났다. 중학교를 마치고 부모를 따라 미국에 건너간 그는 미국에서의 시민운동에 나서게 된 경위를 차분히 풀어냈다.

-독도 등 역사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매년 미국에서는 독립기념일에 퍼레이드를 한다. 1년 중 가장 큰 행사다. 1985년 독립기념일에 거북선 모형을 만들어 참여한 적이 있다. 이때 우리의 퍼레이드를 눈여겨본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반핵 퍼포먼스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다. 일본은 핵무기로 인한 희생을 경험한 유일한 국가다. 당시 그것을 계기로 그들과 소통하고 차이를 알아가면서 역사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미국 한인사회에서도 세대 간 격차가 있다고 들었다.

“미국 한인사회는 크게 1세와 2세, 1.5세로 구분된다. 나는 1.5세에 해당된다. 1세는 오래전부터 미국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이들이다. 1세의 자녀 세대인 2세는 어린 나이부터 미국생활을 시작한 이들이다. 1세와 2세는 한국인이지만, 미국적 가치관이 깊게 자리해 있다. 일부는 한국어로 소통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반면 1.5세는 한국적 가치관과 미국적 가치관이 혼재하는 경우다. 내가 그렇다. 중학교까지 한국에서 다니다 미국으로 갔다. 두 나라 가치관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런 격차를 가진 곳에서 역사와 관련한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1985년 메릴랜드대에 재학하던 시절 워싱턴 지역 대학 총학생회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내가 출마하기 전까지는 1세들이 회장직을 주로 맡았다. 대학 졸업 이후 버지니아주에 정착하면서 버지니아주 한인회장을 맡았다. 총학생회장과 한인회장을 맡으면서 한인회의 개혁을 추진했다. 1세가 주류였던 한인사회에 1.5세가 등장하면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미국 사회를 잘 알면서 한인사회에 대한 애정을 가진 1.5세들이 세대 간 분열된 한인사회를 통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동해 표기 추진 운동도 세대 간 차이가 있는가.

“그렇다. 한인사회만 보더라도 1세와 2세, 1.5세의 차이가 극명하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는지에 따라 지향점을 달리한다. 동해 표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미국 내 각급 학교)교과서에 기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 교과서에는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돼 있다. 동해 표기 운동을 추진한 이유다.”

-미국 교과서의 표기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국제수로기구(IHO)와 접촉해 동해 표기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표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국가의 입장을 바꾸는 것이 핵심이었다. 미국의 입장에는 변함없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합의한 내용에 따라 단독 표기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IHO는 분쟁 지역에 표기 문제가 생기면, 두 국가의 표기를 병기해도 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 공립교과서에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것을 시작점으로 했다. 한인사회 풀뿌리운동이 여기서 시작됐다. 미국 정부에 대한 공식 요구보다는 주의회와 연방 의회 등을 대상으로 한 여론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의원 개개인에게 팩스를 보냈고, 우리의 견해에 찬동하는 의원들이 늘면서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진행 과정을 좀더 설명해달라.

“독도 문제에 시큰둥한 버지니아주 의원들을 직접 설득했다. 동포 사회 청년들과 함께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동해와 일본해 병기를 설득했다. 4년간 노력 끝에 동해 병기가 버지니아주 의회에서 통과됐다. 주지사 승인을 얻기도 간단치 않았다. 250년 역사의 버지니아주는 미국 연방정부보다 역사가 길다. 버지니아주에서 교과서 표기를 바꾼 것은 동해 병기가 처음이다.”

-당시 교포사회의 호응은 있었는가.

“당시 한국 내에서는 크게 기뻐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개주에서 통과하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미국의 50개주에서 동해 표기 안건이 모두 통과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도 미국의 각 주 한인회가 중심이 되어 동해표기추진위원회를 조직해나가고 있다.” 

6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홍일송 미국 버지니아주 전 한인회장은 “독도는 지키는 것이지만, 동해는 찾아와야 하는 것”이라며 “외국인들에게 독도가 우리땅이라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동해 표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문 기자
-‘일본군위안부 결의안’ 채택 운동에도 참여했다고 들었다.


“일본군위안부 결의안 채택 운동은 동해 표기를 해결하기 위한 시작이었다. 독도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에서 시작한다. 일본은 식민지배 시절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며 역사를 왜곡했다. 그런 일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른 역사적 문제들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일부 재미 일본인들도 일본군위안부 결의안 채택 운동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양심적인 미국 내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의 도움이 매우 큰 힘이 되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계획 중이다. 독도와 군대위안부, 문화재반환 문제다. 독도와 군대위안부와 관련한 활동은 이미 진행 중이다. 문화재반환 문제는 문화재찾기한민족네트워크를 발족해 활동 중이다. 동해를 찾아오는 일은 앞으로 1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고 본다. 이스라엘은 역사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했다. 그렇기에 2000여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도 나라를 찾을 수 있었다. 역사를 잊어버리는 순간 가지고 있던 것마저 잃게 된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서도 지금 우리가 한 일들이 이어질 수 있다.”

-미국 한인사회에서 우리 국내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여러 가지 분열된 양상은)분단국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해방 이후 이념과 관련한 정립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차이’와 ‘다름’에 대해 이해가 필요하다. 양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양상이다. 차이나 다름에 대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시민 사회의 밑거름이다.”

-최근 이어지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에 참석했는가.

“지난 3일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아마 기네스북에 오르지 않을까 싶다. 숫자가 많으면 군중심리에 의해 폭도로 변하기 쉬운데도 질서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한국적 DNA를 뚜렷이 보는 것 같다. 평화적인 시위와 질서 인식이 매우 인상적이다. 다만 쉽게 끓고, 쉽게 식는 경향이 있다.”

-미래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지금까지 활동해 오면서 늘 느끼는 것은 시작이 반이라는 점이다. 시작이 중요하다. 특히 99%에 도달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그때 분열이 일어나기 쉽다. 나머지 1%가 절반이라고 본다. 마지막까지 집중해야 비로소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

대담=정승욱 선임기자, 정리=권구성 기자 ks@segye.com

◆ 홍일송 미국 버지니아주 전 한인회장은…

●1963년 강원도 춘천 ●미국 메릴랜드대 경제학 ●미국 워싱턴 지역 한인 총학생회장 ●재미 민주인권협의회 회장 ●미국 버지니아주 한인회장 ●동해 표기 추진위원장 ●문화재찾기 한민족네트워크 미주본부장 ●코러스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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