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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 만큼 채울 수 있어… 사소한 욕심 버리세요”

입력 : 2016-12-06 21:18:54 수정 : 2016-12-06 21: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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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 7년 만의 수필집 ‘질그릇의 노래’ “무릇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 자기 의지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지요. 옹기장이는 진흙으로 다양한 질그릇을 만듭니다. 만들어진 질그릇이 자기의 용도에 대하여 옹기장이에게 불평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출생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일은 각자에게 달려 있지요.”

한국 천주교 원로이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니콜라오·84·사진) 추기경이 수필집 ‘질그릇의 노래’(가톨릭출판사)를 펴냈다. 55번째 책이자 사제 수품 55주년 기념판이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맞춰 가톨릭 신도들에게 선물로 전할 예정이다. 세례명 니콜라오는 산타클로스의 기원이 된 성인 이름이다. 지난 2009년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수필집이다. 정 추기경 나름의 ‘행복한 삶’에 대한 차분한 관조가 엿보인다.

정진석 추기경이 7년 만에 펴낸 수필집 ‘질그릇의 노래’에는 신앙적 고백과 성찰이 담겨있다.
정 추기경은 언론 인터뷰를 즐겨하지 않는다. 대신 1년에 책 한 권씩을 꼭 낸다. 책으로 대화하고 신자들과 의사 소통하기를 즐긴다. 이유가 감동적이다. 부제시절 룸메이트였던 고 박도식 신부(전 대구가톨릭대 총장)와 “신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1년에 책 한 권씩을 내자”고 했던 약속을 지금껏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는 인생의 황혼에서 지난날을 돌이켜보는 정 추기경의 신앙적 고백과 성찰이 여실히 드러난다.

“걱정을 줄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욕심을 줄이는 것입니다. 평소에 부질없는 집착이 많습니다. 종종 작은 일에 욕심을 부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러나 때로는 해로운 것마저 원하기도 합니다. 철이 없는 어린이가 혹시 해로운 것을 원하면, 어른이 타일러 줍니다. 그러나 어른은 스스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해야 합니다. 옳지 않은 것을 원하면서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요.”

정 추기경은 사랑과 행복, 진리, 정의, 평화의 가치로 마음의 그릇을 채울 것을 권한다. 우리는 통상 마음의 그릇은 재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망각한다. 추기경의 지적은 이런 일상에 경종을 울린다.

물욕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채울 수 있고 버린 만큼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추기경은 “마음의 그릇이 사랑과 자비로 가득 차면 모든 것이 그득하고 그 무엇이든 만족으로 다가온다”고 조언한다.

“80세를 넘으면 육체의 여러 기관이 하나둘씩 기능이 퇴화되는 것을 체험합니다. 이를 통해 육체와 연관된 길은 덧없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직 생명의 주님이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축복을 받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이 주신 삶의 의미를 올바로 깨닫고 이를 받들며 살수록 이 세상의 어느 누구에게도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을 온 마음으로 찬미하면서 세상을 떠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서 정 추기경은 희생하고 봉사하는 의인의 삶을 강조한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의 생명을 구하는 의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립니다. 의인들은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는 이들도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자기 본분을 알면 다른 사람에게 신이 된다’는 격언은, 사람이 본연의 인격자로서 선행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 같은 존재가 된다는 뜻이지요.”

정 추기경의 책에는 우리 사회가 잊고 있었던 기본 가치들을 돌아보게끔 하는 지혜와 성찰이 담겼다.

“과거가 후회되면 지금 바로 바른 길로 새 출발해야 합니다. 현재는 화살처럼 빨리 지나갑니다. 지금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가장 소중하고 긴급한 일이지요.”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에서 퇴임한 2012년 이후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신학대학 주교관에서 집필과 강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31년 12월 서울 출생으로 1954년 가톨릭대학 신학부에 입학하고 1961년 사제품을 받았다. 1970년 최연소로 주교품을 받은 후 28년 동안 청주교구장,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등을 지냈다. 1998∼2012년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직했으며, 2006년 3월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됐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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