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얼굴 격인 삼성에 질문이 쏟아졌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모른다. 기억 나지 않는다”면서 성의 없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거액 승마훈련 지원과 관련해 “창피하고 후회스럽다”고 했지만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추진 때 홍완선 전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장을 만났다면서도 “저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 없다”고 주장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청와대의 75억원 출연금 요청과 관련해 “모른다”고 말했다. 검찰의 공소장도 본 적 없다고 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도 플레이그라운드에 대한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광고지원 요청과 관련해 “기억 안 난다”고 했다. 대부분 대기업 총수들이 대가성을 따지는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한 것이다.
한국의 이런 상황을 외국 언론들은 한심하게 평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은 정부 주도로 기업이 자금을 지원하고 그에 따른 긍정적 대가를 바라는 관행이 수십년 동안 깊숙이 침투해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사설 로비단체라고 했다. 블룸버그도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대 족벌기업을 육성해 경제기적을 일궈낸 이후 대통령과 기업들은 수십년간 부패했다”고 보도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정부의 요청이 있으면 기업이 거절하기 어려운 게 한국 현실”이라면서 정경유착을 실토했다.
대기업 총수들은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정경유착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전경련에서 탈퇴하겠다고 했다. 권력실세들이 기업의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기부금 할당액을 정하는 통로인 전경련 존립 문제를 재검토해야 한다. 공정한 경쟁을 하면서 일자리를 만들고 돈벌이를 할 수 있는 토대 마련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드러난 정경유착 비리로 인해 한국이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에 책임감을 갖고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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