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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웰컴 투 뉴질랜드] 보세요, 인적에 놀란 요정들이 숨었잖아요

관련이슈 박윤정의 웰컴 투 뉴질랜드

입력 : 2016-12-08 10:30:00 수정 : 2016-12-07 20: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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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퍼드 트랙의 셋째 날, 퀸튼 산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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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내린 비는 이른 아침 옅은 물안개만을 남겨 놓은 채 물러갔다. 방문을 열고 나서니 산장 전체를 감싸는 하얀 안개가 얼굴에 부딪힌다. 습기를 머금은 맑은 공기를 가득 들여 마시니 아직 잠에 잠겨 있던 몸이 세상 밖으로 이끌어 나오는 듯하다.

오늘은 전체 트레킹 일정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폼폴로나 산장에서 맥키넌 패스 정상을 넘어 퀸튼 산장까지 14㎞의 산길을 걸어야 한다. 퀸튼 산장에 도착한 후 서덜랜드 폭포에 다녀오기 위해서는 왕복 5㎞를 더 가야 한다. 더구나 오후 4시 전에 퀸튼 산장에 도착해야 서덜랜드 폭포를 다녀올 수 있기 때문에 트레킹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맥키넌 기념비 앞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는 여행객들.

아침식사를 하고 도시락을 싸는 동안 가이드들이 오늘 트레킹은 환상적일 것이라고 귀띔해 준다. 어제 저녁 내린 비로 협곡 사이로 늘어선 폭포들이 장관을 이룰 것이다. 반면 비가 그치면서 걷기에 좋은 날씨가 된다.
둥근 맥키넌 기념비 주변에 짐을 내려놓고 지친 몸과 마음을 쉰다.

1년 중 200일 이상을 비가 내리는 밀퍼드 트랙에서 비를 맞지 않고 맥키넌 정상에 오르는 것도 행운이지만 전날 내린 비로 폭포의 수량이 늘어났으니 트레킹에는 더 없이 좋은 날인 것이다. 일정을 지키며 무조건 전진해야 하는 밀퍼드 사운드 트레킹에서는 비가 온다고 해도 쉬지 않는다. 폭포가 많은 이곳에서 폭우를 만나게 되면 체력적으로 힘들 뿐만 아니라 계곡을 건너는 데도 위험이 따른다.
이끼로 잔뜩 뒤덮인 나무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형광의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기대와 흥분 속에 첫발을 내딛는다. 온 숲이 습기를 머금어 더욱 싱그럽게 자연의 색깔을 뽐내는 듯하다. 이끼로 잔뜩 뒤덮은 나무들은 아침 햇살을 받아 형광의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길옆으로 고사리들이 어우러져 원시의 밀림 속을 걷는 듯하다. ‘거울’이라 불리는 작은 호수를 지나면 탁 트인 민타로 호수가 나타난다. 그 너머로 거대한 성벽처럼 맥키넌 패스가 솟아 있고 길옆으로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그 앞에 서니 계곡을 둘러싼 절벽 위에서 실타래를 풀어 놓은 듯 폭포 줄기들이 쏟아진다. 지난 밤 내린 비로 바위에 떨어진 물방울이 하얗게 부서진다.
1154m 맥키넌 패스 최고점을 지나 쉼터인 패스 오두막으로 향한다.

길은 오르막으로 접어든다. 초록의 터널을 빠져나오니 성벽 같은 맥키넌 패스를 지그재그로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경사는 고되지만 길옆으로 야생화들이 지친 발걸음을 위로해 준다. 커다랗고 하얀 꽃망울이 돋보이는 ‘퀵 아일랜드 백합’이 길의 주인인 듯 고운 자태를 뽐낸다. 거친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보면 클린턴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병풍처럼 계곡을 감싸고 있는 절벽 위로 쏟아지는 폭포는 돌아볼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오르막은 어느새 초원으로 변하면서 끝이 난다. 그 정점에 맥키넌 기념비가 지친 트레커를 굽어보고 있다.
맥키넌 패스 정상을 넘어 퀸튼 산장까지 산길에서 만나는 이정표.

맥키넌 기념비는 이곳을 처음 개발한 퀸튼 맥키넌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밀퍼드 트레킹 루트를 개척해 최초로 상업적 트레킹을 시작한 사업가이자 최초의 가이드였던 맥키넌은 테아나우 호수를 건너다 익사했다. 100년 전 가이드를 기리는 둥근 돌탑 기념비에 기대 클린턴 계곡을 바라본다. 현실의 가이드가 건네주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바라보는 클린턴 계곡이 지친 몸과 마음을 모두 정화해 준다.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정신을 차리고 1154m 맥키넌 패스 정상을 지나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쉼터인 패스 오두막으로 향한다. 패스 오두막으로 향하는 길 주위로 작은 물웅덩이들이 풀들과 어우러져 푸른 숲과는 또 다른 운치를 선사한다. 실타래를 풀어 놓은 클린턴 계곡을 내려다보며 점심을 먹는다. 모든 사물이 발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아침 일찍 출발한 탓인지 가벼운 샌드위치이지만 정상에서 먹는 점심이 꿀맛이다.
맥키넌 패스 너머 패스 오두막에서 내려오는 길은 밀퍼드 트랙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다. 깊은 아더 계곡으로 녹색의 숲이 융단처럼 펼쳐져 있고 그 깊숙이 오늘의 목적지인 퀸튼 산장이 자리하고 있다.

맥키넌 패스 너머의 패스 오두막에서 내려오는 길은 밀퍼드 트랙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 중 하나로 꼽힌다. 비까지 내렸던 터라 습기를 머금은 길은 미끄럽고 중간중간 폭포로 인해 길이 끊겨 있다. 깊은 아더 계곡으로 녹색의 숲이 융단처럼 펼쳐져 있고 그 깊숙이 오늘의 목적지인 퀸튼 산장이 자리하고 있다. 녹색의 융단 사이로 아더 계곡이 은빛 실처럼 흘러간다. 아더 계곡을 둘러싼 봉우리들은 하얀 빙하를 머리에 이고 빛줄기 같은 폭포수들을 계곡으로 쏟아내고 있다. 반지의 제왕 촬영이 이뤄진 이곳은 세상과는 단절된 태고의 세상인 듯하다.
에메랄드빛의 계곡물이 폭포가 돼 하얀 물거품을 쏟아내고 있다. 반지의 제왕 촬영이 이뤄진 이곳은 세상과는 단절된 태고의 세상인 듯하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디디며 불어난 폭포로 끊어진 길을 넘어 다시 숲속으로 들어간다. 작은 폭포들과 격류로 이뤄진 계곡을 따라 발걸음을 서두른다. 케스케이드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부지런히 걸은 덕에 오후 4시 전에 퀸튼 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서덜랜드 폭포까지 왕복 트레킹에 나선다. 숲속을 40여분 걸으니 엄청난 폭포소리가 들려온다. 발걸음이 가빠진다. 숲속을 벗어나자 하늘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서덜랜드 폭포다. 폭포는 248m, 229m, 103m를 삼단에 걸쳐 있다. 전날의 강수량을 머금고 580m의 높이에서 쏟아지는 폭포는 마치 용이 하늘에 오르듯 절벽을 굽이친다.
마오리족 사람들은 서덜랜드 폭포를 ‘하얀 실’이라는 뜻의 ‘테타우테나’라고 부른다. 물줄기 뒤로 공간으로 들어서니 세상은 천둥 같은 폭포소리로 가득하다. 온몸이 바위에 부딪혀 흩어지는 폭포수로 흠뻑 젖는다.

폭포의 이름은 1880년 이곳을 개발한 도널드 서덜랜드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가 죽은 후 그의 희망에 따라 폭포 아래에서 묻혔으며 그의 아내 역시 함께 묻혔다. 하지만 큰 홍수로 무덤이 쓸려나가면서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마오리족 사람들은 서덜랜드 폭포를 ‘하얀 실’이라는 뜻의 ‘테타우테나’라고 부른다고 한다.

조금 용기를 내 미끄러운 바위 사이로 폭포의 바로 아래까지 접근한다. 물줄기 뒤로 공간으로 들어서니 세상은 천둥 같은 폭포소리로 가득하다. 온몸이 바위에 부딪혀 흩어지는 폭포수로 흠뻑 젖는다.

퀸튼 산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폭포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자리에 누우니 맥키넌 패스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계곡과 푸른 하늘, 실타래 같던 폭포들, 하늘에 맞닿아 있던 서덜랜드의 물줄기들이 그림처럼 흘러간다. 쏟아지는 폭포소리가 이명처럼 잦아들면서 밀퍼드 사운드(해협)에서의 세 번째 밤이 깊어간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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