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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주·염혜선이 말하는 '내려놓음의 미학', 현대건설 상승세의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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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9 06:00:00 수정 : 2016-12-09 02: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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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어떤 일을 잘하기 위해선 오히려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무조건 강하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마음처럼 쉽지가 않은 게 바로 힘을 빼는 것이다. 경험이 부족한 20대 초반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내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혹은 ‘내가 해결하리라’ 등의 마음가짐을 내려놓게 되면 더 일이 잘 풀릴 때가 있다. 바로 ‘내려놓음의 미학’이다. 이를 위해선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으며 경험이 풍부해져야 한다.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구별하게 이들을 우리는 ‘베테랑’이라 부른다.

여자 프로배구 현대건설과 IBK기업은행의 2016~17 V-리그 3라운드 맞대결이 펼쳐진 8일 수원체육관. 이날 경기 전까지 현대건설은 올 시즌 IBK기업은행과의 1,2라운드 맞대결에서 모두 세트 스코어 1-3으로 패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달랐다. 세터 염혜선의 노련한 조율 아래 모든 팀원들이 하나가 되어 움직였다. IBK기업은행만 만나면 사이드 블로킹이 좋은 레프트 박정아, 리쉘과 상대하느라 1~2라운드 모두 공격 성공률 30%대, 블로킹 셧아웃을 각각 4개씩 당했던 라이트 황연주는 팀내에서 가장 높은 53.33%의 공격성공률을 기록하며 18점을 몰아쳤다. 장염으로 고생했던 외국인 선수 에밀리는 팀내에서 가장 많은 리시브(13/34, 2개 실패)를 받아내면서도 팀내 최다인 24점을 올렸다. 어깨가 좋지 않아 강한 공격이 힘든 양효진은 공격 성공률이 29.63%에 그치며 공격 득점은 단 8개에 불과했지만, 블로킹만 9개를 잡아내며 IBK기업은행의 공격진을 완벽히 봉쇄해냈다. 정미선의 부상 공백 속에 주전으로 도약한 ‘맏언니’ 한유미도 리시브(13/31, 2개 실패) 부담 속에서도 알토란 같은 13점(공격 성공률 26.83%)을 올렸다. 리베로 김연견도 여러 차례 믿을 수 없는 디그(21/29)를 연출해내며 코트 후방을 든든히 지켰다.

그 결과 현대건설은 1세트 중반 5점차 이상 나던 점수차를 뒤집어냈고, 2세트도 듀스 접전 끝에 잡아냈다. 비록 3세트를 23-19로 앞서다 듀스 끝에 내주며 3-0 셧아웃 승리를 내주긴 했지만, 기어코 4세트를 잡아내며 세트 스코어 3-1(25-23 27-25 24-26 25-21)로 승리를 거두었다. 올 시즌 IBK기업은행전 첫 승이었다. 이날 승리로 승점 3을 추가한 현대건설은 승점 20(7승5패)을 채우며 선두 IBK기업은행(승점 25, 8승4패)과 2위 흥국생명(승점 23, 8승3패) 추격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양철호 감독도 “수비적인 부분이 정말 잘 됐고, 지난 GS칼텍스전에서 3-0 승리에도 불구하고 정신력이 해이해진 모습이 나왔는데, 오늘은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보이더라.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럼에도 양 감독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는데 이유는 2세트 도중 상대 외국인 선수 리쉘의 공격을 블로킹하다 왼쪽 엄지손가락 부상을 입은 센터 김세영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수훈선수로 나란히 인터뷰실을 찾은 황연주와 염혜선은 ‘내려놓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간 다소 약했던 IBK기업은행을 상대로 빼어난 공격력을 선보인 황연주는 “(염)혜선이가 제 공격을 원 블로킹으로 잘 빼줬다. 공격 비중이 적은 (정)미선이와 제가 함께 전위에 있을 땐 제게 더 견제가 많은 데 공격력이 좋은 (한)유미 언니와 제가 함께 전위에 있게되면 아무래도 블로킹 견제가 더 헐거워진다. 혜선이가 그틈을 잘 포착해 잘 올려줘서 공격이 수월했다”고 공을 옆에 있던 염혜선에게 돌렸다.

지난달 20일 흥국생명전에서 황연주는 단 2득점에 그쳤고, 자신이 확고부동하게 지켜왔던 라이트 공격수 자리에서 본업이 세터인 이다영이 뛰는 것을 오랜 시간 웜업존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 경기 이후 황연주는 공격력이 다시 되살아나는 모습이다. 당시의 경험이 충격으로 다가와 심기일전하는 데 도움이 됐냐는 질문에 황연주는 “사실 별로 충격적이진 않다. 제 자리를 공격수가 아닌 세터인 후배와 교체되었기에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비시즌 동안 다영이가 라이트 공격수로서의 훈련도 소화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최근 기복이 많이 줄어든 모습에 대해서는 “좀 더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 한다. 잘하려고 해서 잘 되는 것도 아니기에 ‘도와주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코트 위에 오르려 한다. 물론 예전엔 ‘내가 해야해’라는 마음이 컸지만, 이제는 좀 내려놨다”고 답했다.

염혜선도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올 시즌 초반 염혜선은 컨디션 난조로 후배인 이다영에게 주전 세터 자리를 내주고 웜업존을 지키는 시간이 지난 시즌에 비해 다소 길었다. 2016 리우 올림픽에 다녀오느라 팀원들과의 훈련 시간이 적었기에 손발이 다소 맞지 않는 모습도 왕왕 나왔다. 양철호 감독도 염혜선을 두고 “(염)혜선이가 (이)다영이를 이길 수 있는 것은 토스 하나인데, 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 안타깝다”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3연승을 달리는 과정에서 염혜선은 데뷔 이후 쭈욱 현대건설의 야전사령관을 지켜온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마음가짐을 좀 편하게 먹은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내가 아니어도 된다’라는 마음이랄까. 내가 좀 못 해도 팀원들이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것인데, 잘만 하려고 하다보니 시즌 초반 흔들렸던 것 같다. 다행히 다영이 덕분에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면서 팀 후배에 대한 감사함과 한층 성숙해진 마음가짐을 드러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을 보니 이제 베테랑이라고 불러도 되겠느냐고 묻자 “아직은...연차가 두 자릿수 되면 그렇게 불러주세요”라고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시즌 초반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며 ‘디펜딩 챔피언’의 면모를 좀처럼 드러내지 못했던 현대건설. 본인의 두드러짐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하며 ‘내려놓음의 미학’을 깨달은 황연주와 염혜선이 현대건설의 선두권 도약을 이끌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수원=남정훈 기자 che@segye.com
<사진 제공: 연합뉴스, 발리볼코리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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