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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내 팔자야.” 매사 일이 꼬이는 사람은 자신의 팔자타령을 한다. 잘못된 운명(運命)을 타고나서 이 모양 이 꼴로 산다고 푸념한다. 그것은 오산이다. 운명에는 죄가 없다. 운명의 ‘운(運)’자를 보라. ‘움직이다’, ‘운용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타고난 운명도 자기 노력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명나라의 학자 원요범은 운명의 바른 이치를 깨닫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했다. 그도 처음에는 세상만사가 미리 정해진 운명에 따라 일어난다고 믿었다. 어렸을 때 만난 도인의 영향이 컸다. 도인은 어린 원요범에게 몇 살에 과거에 합격하고 자식도 없이 53세에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실제로 도인의 예언대로 착착 들어맞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무의미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당대의 유명한 운곡선사를 만나면서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다.

원요범은 “운명은 자기 스스로 만드는 것이고 복은 자기 자신에게 구하는 것”이라는 운곡선사의 가르침에 따라 선한 공덕을 쌓아갔다. 그 덕택에 예전 도인이 예언한 수명보다 20년 이상 더 살고 자손까지 번성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고쳐 운명을 바꾼 것이다. 그는 훗날 운명에 굴복하지 말고 주인공으로 살라는 내용의 ‘요범사훈’까지 펴냈다.

요범사훈의 가르침을 거꾸로 읽은 사람이 있다. 어제 운명의 날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는 일국의 대통령에 오르는 대운을 타고났다. 하지만 그 운은 탄핵과 하야 촛불시위에 내몰리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원요범처럼 선업을 행하지 않고 재임 중에 악업을 쌓은 응보이다. 타고난 운명도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삶의 이치를 간과한 탓이다.

아직도 손금으로 자신의 운명을 점치는 사람이 있는가. 잠시 주먹을 쥐어보라. 손금이 어디에 있나. 손안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운명은 내 손안에 있다. 나의 운명을 좌우할 사람은 나 자신이다.

운명은 양날의 칼이다. 선업을 쌓으면 자기를 지키는 명검이 되지만 악업을 행하면 칼날이 자기를 찌른다. 요행은 절대 없다. 만약 못 믿겠다면? ‘운명의 칼날’ 위에 선 대통령을 보라.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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