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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조차도 ‘건축’하다

입력 : 2016-12-13 21:38:47 수정 : 2016-12-13 21: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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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르코르뷔지에’전시회 “사람들은 건축가로서의 나밖에 모른다. 화가로서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건축이라는 것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내 그림이라는 운하를 통해서다. 나는 매일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림 그리기를 통해 형태의 비밀들, 영혼을 발전시키는 발명들을 얻었다.”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1887∼1965)는 생전에 “나의 건축에서 어떤 장점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매일 그림을 그리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노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내년 3월26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르코르뷔지에’전은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다. 피카소와 교류했던 르코르뷔지에의 드로잉과 그림, 조각 등을 볼 수 있다. 물론 건축모형들도 출품됐다.

지배와 권위의 건축에서 삶을 위한 건축으로 전환을 시도한 르코르뷔지에.
스위스에서 태어나 프랑스 건축가로 생을 마감한 르코르뷔지에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선언을 통해 당시 ‘권위와 지배를 위한 건축’에 맞섰다. 당연히 반대와 모욕이 뒤따랐다. 오죽했으면 앙드레 말로가 그의 장례식 추도사에서 “그만큼 모욕당한 이가 없다”고 했을 정도다.

르코르뷔지에는 자연스레 인간을 위한 편안한 공간으로 ‘모듈러’ 이론을 제창했다.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가장 편한 최적의 비례수치 기준이다. 몸이 기준이 되어 사람이 팔을 들어 올린 높이가 건축의 핵심이 되었다. 인간이 움직임에 불편함이 없는 최적의 비율이다. 세계 최초의 대규모 현대식 아파트인 프랑스 마르세유의 ‘유니테 다비타시옹’(1945년)에 적용된 모듈러는 183m의 신장을 가진 남성이 팔을 들어 올린 높이 2.26m가 층고가 됐다.

“프린스턴에서 나는 아인슈타인과 모듈러에 대해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행운을 가졌다. 사실 그동안 연구한 모듈러 이론에 대해 검증을 받고 싶어서 찾아간 것이다. 이 연구로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있었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그에게 “악을 어렵게 하고 선을 쉽게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비례라는 척도”라며 “어떤 사람은 당신의 모듈러가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것이 세상을 바꿀 만한 연구라고 생각한다”고 격찬했다.

20세기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프랑스 롱샹성당.
건축학도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 보고 싶어 하는 롱샹성당은 20세기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건축물이다.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는 디자인은 르코르뷔지에의 트레이드마트인 표준성과 합리성마저 초월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고인이 된 건축가 김석철도 “롱샹은 눈이 부셨다. 감동이 내 전신을 물결치듯 휩싸고 돌았다. 그것은 건축적 감동을 넘어 창조에 대한 환희 같은 것이었다”고 평했다.

전시장엔 롱샹의 내부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영상작품이 준비돼 있다. 다양한 크기의 벽체 창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은 환상적이다. 빛의 축제를 보는 것 같다.

화가로서의 면모도 엿볼 수 있는 작품 ‘튤립다발 앞에 앉은 여성’.
르코르뷔지에는 자연물을 시적 영감의 오브제로 삼았다. 조가비나 견과류 등의 껍데기를 아이디어 구조실험에 사용했다. 실제로 게의 껍데기는 롱샹성당 지붕의 모티브가 되었다. 솔방울은 공간의 이상적인 기하학으로서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영감이 되었다. 프랑스와 일본 등 7개국에 위치한 르코르뷔지에의 17개 건축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17개 건물의 모형을 제작해 전시장에 내놨다.

르코르뷔지에가 인생 마지막을 보낸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4평짜리 오두막 ‘카바농’의 내부를 실제 크기로 재현한 공간도 볼 수 있다. ‘4평’이면 충분히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공간은 그가 설계한 수도원의 수도사 방과 똑 같은 크기다. 더할 것 없는 완전한 공간 4평에서 자신의 인생 본질과 마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건축이 인간 삶의 본질에 충실했듯이.

르코르뷔지에는 바닷속으로 들어가 죽음을 맞이했다. “슬퍼하지 말게, 언젠가는 또다시 만나게 되는 거니까. 죽음은 우리 각자에게 출구와도 같다네. 나는 왜 사람들이 죽음 앞에 불행해지는지 모르겠네. 그것은 수직에 대한 수평일세, 보완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지.” 삶과 죽음조차도 그는 스스로 ‘건축’을 한 셈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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