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축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1887∼1965)는 생전에 “나의 건축에서 어떤 장점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매일 그림을 그리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노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내년 3월26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르코르뷔지에’전은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다. 피카소와 교류했던 르코르뷔지에의 드로잉과 그림, 조각 등을 볼 수 있다. 물론 건축모형들도 출품됐다.
지배와 권위의 건축에서 삶을 위한 건축으로 전환을 시도한 르코르뷔지에. |
르코르뷔지에는 자연스레 인간을 위한 편안한 공간으로 ‘모듈러’ 이론을 제창했다.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가장 편한 최적의 비례수치 기준이다. 몸이 기준이 되어 사람이 팔을 들어 올린 높이가 건축의 핵심이 되었다. 인간이 움직임에 불편함이 없는 최적의 비율이다. 세계 최초의 대규모 현대식 아파트인 프랑스 마르세유의 ‘유니테 다비타시옹’(1945년)에 적용된 모듈러는 183m의 신장을 가진 남성이 팔을 들어 올린 높이 2.26m가 층고가 됐다.
“프린스턴에서 나는 아인슈타인과 모듈러에 대해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행운을 가졌다. 사실 그동안 연구한 모듈러 이론에 대해 검증을 받고 싶어서 찾아간 것이다. 이 연구로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있었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그에게 “악을 어렵게 하고 선을 쉽게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비례라는 척도”라며 “어떤 사람은 당신의 모듈러가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것이 세상을 바꿀 만한 연구라고 생각한다”고 격찬했다.
20세기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프랑스 롱샹성당. |
전시장엔 롱샹의 내부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영상작품이 준비돼 있다. 다양한 크기의 벽체 창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은 환상적이다. 빛의 축제를 보는 것 같다.
화가로서의 면모도 엿볼 수 있는 작품 ‘튤립다발 앞에 앉은 여성’. |
르코르뷔지에가 인생 마지막을 보낸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4평짜리 오두막 ‘카바농’의 내부를 실제 크기로 재현한 공간도 볼 수 있다. ‘4평’이면 충분히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공간은 그가 설계한 수도원의 수도사 방과 똑 같은 크기다. 더할 것 없는 완전한 공간 4평에서 자신의 인생 본질과 마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건축이 인간 삶의 본질에 충실했듯이.
르코르뷔지에는 바닷속으로 들어가 죽음을 맞이했다. “슬퍼하지 말게, 언젠가는 또다시 만나게 되는 거니까. 죽음은 우리 각자에게 출구와도 같다네. 나는 왜 사람들이 죽음 앞에 불행해지는지 모르겠네. 그것은 수직에 대한 수평일세, 보완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지.” 삶과 죽음조차도 그는 스스로 ‘건축’을 한 셈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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