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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닭울음 소리 형상화… 시대의 어둠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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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19 21:20:34 수정 : 2016-12-19 21: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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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정유년 맞이 전시회 갖는 이상원 화백 이상원(81) 화백은 2000년 서울 생활을 접고 홀로 산에 들어왔다. 올해로 산골생활 16년째다. 행정구역상으론 춘천시 북산면 오항리이지만, 지금도 눈이 오면 꼼짝도 못하는 오지다. 타성적 삶을 벗고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다. 인도인들이 자식을 다 키운 후 ‘참나’를 찾기 위해 출가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해준다.

“사람들은 종종 왜 산속으로 들어갔느냐고 물어요. 사람 만나기 힘들고 들리는 건 산짐승이나 새 소리 정도이니 다른 잡다한 일들에 신경을 안 뺏기죠. 무엇보다도 집중이 잘돼서 좋아요. 산골의 단조로움이 오히려 잡념을 없애주는 약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오전 6시면 눈을 떠 바로 옆 작업실로 향한다. 잠시 명상에 잠겼다가 붓을 들면 일과의 시작이다. 10시나 11시쯤 시장기가 돌면 그제야 아침을 먹고 뒷산을 산책한다. 정오쯤에 다시 작업실로 들어가 작업구상과 작업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다시 시장기가 돌면 저녁식사를 한다.

닭 그림 앞에 선 이상원 화백. 1990년대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러시아미술관과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졌던 그는 한지와 먹, 유화물감의 믹스매치 기법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일궈가고 있다. 닭 그림에서조차도 여백을 통해 기운생동을 극대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하루 두 끼만 먹어요. 대략 저녁은 오후 5∼6시 정도에 하게 되는데, 식사를 하고 나면 곧 졸음이 와서 8시가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듭니다.”

그는 자신의 생활이 아주 단순하다고 말했다. 산에 들어오니 거의 산짐승과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아내가 서울에서 와 반찬거리를 해놓고 가면 꺼내서 식사를 해결합니다. 식단은 밥, 된장국, 김치, 장아찌, 젓갈 등이 전부이지만 제겐 진수성찬이지요.

그에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답만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그림 그리는 일은 그에겐 무엇일까 재차 물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떠한지 몰라도 제게는 생활 그 자체입니다. 만약 어떤 의무감으로 작업을 했다면 벌써 붓을 놓았을 겁니다.”

생략과 과장이라는 적절한 운용의 묘를 살린 닭 그림.
그림은 그에겐 어떤 의미 이전에 삶 자체였다는 얘기다. 그가 2017년 정유년(丁酉年) 닭 해 맞이 대형 닭 그림을 그렸다. 건강하고 활기찬 기운을 뿜어내는 닭 그림이다. 위풍당당한 100호 크기의 대작들이다.

“깊은 밤을 열어 만물이 깨어날 것을 요청하는 소리. 사악한 것을 물리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여전히 잔존하는 시대의 어둠을 걷어내는 신새벽 닭울음 소리의 형상화다. 시계가 귀한 시절 닭울음 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밤을 새우며 놀다가도 새벽닭이 울면 귀가를 서둘렀다. 모든 것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소리다.

닭은 그동안 많은 화가들이 그림 소재로 삼아왔다. 조선후기 변상벽의 어미닭 그림을 보고 정약용이 시를 짓기도 했다.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남긴 장승업도 닭을 그렸다. ‘파격’과 ‘일탈’로 한국화의 새 지평을 열었던 황창배(1947∼2001)도 유머러스한 닭 그림을 남겼다. 하지만 작가들은 닭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을 어느 시대에나 어렵게 생각했다.

“움직임이 워낙 빠른 데다가, 깃털 표현에 집중하면 그림이 엉망이 되고, 특히 눈을 잘못 그려서 버린 그림이 많아요. 한동안은 눈동자 표현만 집중적으로 연습하기도 했지요. 눈동자가 단순한 점 하나인 것 같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거 하나로 닭의 생명이 있고 없고가 판가름나더라고요. 또 한 가지 어려웠던 점은 닭의 발톱이었어요. 그게 날카롭게 표현이 안 되면 그림에 힘이 없어져요. 그렇다고 크게 강조하면 안 되고… 날갯짓하는 닭의 발은 포착하기 어렵고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자연스럽지가 못했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형태로 발과 발톱을 그려서 몸통과 조합을 했지요. 붉은 닭 볏을 제외하면 모두 수묵으로만 그린 그림도 많아요. 발과 발톱도 마찬가지죠. 은근하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이 나지 않으면 모두 실패한 그림이 되었죠.”

그는 닭의 수동적 모습이 아닌 능동적 자세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작업실 인근의 닭 사육장을 즐겨 찾았다. 여러 모습을 관찰하고 날려보기까지 했다.

“닭이 공격적인 성격도 있고 의외로 겁도 없어요. 그런 모습이 있는데 너무 얌전하게만 표현되는 게 싫었지요. 그래서 최대한 움직임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어요. 처음엔 그냥 관찰만 하다가 나중에는 좀 높은 데서 떨어뜨려 보기도 하고 바닥에서 날려보기도 하고… 닭에게는 미안하긴 했지만 날개가 있으니 나는 모습 비슷한 것도 포착해 보고 싶고 그랬지요.”

그는 닭을 그리면서 비슷해 보이기만 했던 닭들이 하나하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성격이 고약한 깡패 같은 녀석도, 검은 털에 유난히 붉은 볏을 가진 공격적인 닭도 있었다. 그의 닭 그림은 그런 성격을 표정이나 포즈로 표현하고 있다.

“어떤 닭은 참 늠름하고 듬직해요. 그 닭으로 여러 포즈를 그렸는데, 그중에 하나는 사람들에게 크게 절하며 인사하듯이 그린 것도 있어요. 인위적으로 의인화해서 그리면 그림이 많이 어색해지게 마련이라 실패도 많이 했지요. 하지만 있는 그대로 그리기보다 조금씩 변형하고 생략하면서 조금씩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려나갔지요.”

사실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생략과 과장이다. 많은 세월을 붓과 씨름해온 고수들의 단계라 할 수 있다.

“4년 전 처음 그린 닭들은 형태에 집중했다면 이번 그림은 생략도 많이 하고 과장도 많이 해서 역동적인 느낌이 강해요.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어려워서 애를 많이 먹었지요.”

이 화백은 영화간판과 상업초상화를 그리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1970년 안중근 의사 기념관 설립시 안중근 의사 공인 영정을 그리게 되면서 상업초상화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1970년대 후반부터 모든 상업미술 활동을 접고 순수미술 작업에 전념했다. 사실주의 기법에 기초해 먹과 유화물감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전통 수묵화의 표현방식에 가까워지면서도 여전히 유화물감으로 그려내는 부분의 강렬함은 지속되고 있다. 한지 위에 수묵의 사용과 여백의 운용으로 거창하지 않은 평범한 대상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기질인 날카롭고 공격적인 야생의 정서가 있다. 독학으로 순수미술을 시작하는 시기에 사사하기 위해 유일하게 찾아간 곳이 근대 전통화단의 6대가 중의 한 사람인 소정 변관식(1899∼1976) 화실이라는 점도 이러한 경향과 맥락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2년 전 이 화백은 춘천 화악산 계곡에 자신의 이름을 딴 이상원미술관을 개관했다. 지역민에게 다양한 현대미술을 소개하고 싶어서다. 그의 닭 그림도 내년 4월 16일까지 이상원미술관에 전시된다.

눈발이 날리자 그가 서둘러 미술관을 떠났다. 작업실 가는 길이 눈으로 막히기 전에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눈발 속으로 그가 저 멀리 사라졌다. “산중의 늙은이가 이제 더 바랄 게 뭐 있겠습니까. 그저 정안수 떠놓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어 감사할 뿐이지요. 다만 제 정성이 자그마한 나비효과라도 되어 새해엔 국가가 평안했으면 합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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