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가 순절한 것은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 1917년 북간도 용정에서 출생한 그는 시 ‘참회록’을 쓰고 일본으로 갔으며, 일제에 의해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됐다. 밤이면 밤마다 거울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보자며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고 싶다고 했던 그는 자신의 몸을 던져 옥사했으며, 이를 통해 암흑기 밤하늘의 별과 같이 조국의 어둠을 밝혀 주었다. 언제나 국가를 위하고 민족을 위해 살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렇게 결단한 지도자가 누구였느냐고 할 때 떠오르는 이름은 많지 않다. 윤동주는 말로 하는 애국자가 아니다. 연약하고 작은 목소리로 여린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노래하면서 자신의 소명을 지켜 사즉생(死卽生)의 길을 택했다.
최동호 경남대 석좌교수·시인 |
최근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국가적 시련은 이런 괴로움과 닿아 있다. 연약하고 작은 힘들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기를 소망하며 촛불을 켠 것이다. 국가 권력에 비해 개개인의 힘은 연약하고 작고 초라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힘이 모여 거대한 바다를 이루고 하늘과 땅을 흔들어 역사를 전환시키는 역동성을 갖는다. 윤동주가 보았던 것과 같은 짙은 어둠 속에 오늘의 우리가 서 있다. 지금 한국인의 고민은 역사의 방향성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윤동주가 토로한 그대로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 어둠 속에서 희망의 길을 찾기 위해 박두진의 시 ‘해’를 읊조려 볼 필요가 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여기서 식민지시대의 절망은 희망의 앳된 얼굴로 승화되는 것을 본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해를 맞아 겸허한 마음으로 남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남들이 모르는 부끄러움을 한 줄이라도 줄이기 위해 살아야 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싶다. 밤새 짙은 어둠을 살라 먹고 말갛게 씻은 해가 솟기를 소망한다. 한국의 미래가 온갖 거짓을 타파하고 앳된 얼굴로 태어나 희망의 역사를 꿋꿋하게 펼쳐나가기를 기원한다.
최동호 경남대 석좌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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