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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고 본 세상… 이젠 요리의 언어로 대접하고 싶다”

입력 : 2017-01-16 20:39:08 수정 : 2017-01-16 21: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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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스페인 요리 식당 연 소설가 천운영 “그동안 나는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소설가의 권위를 등에 업고 살았던 건 맞아요. 그거를 떨치려고 이 길로 들어서기도 한 건데, 결국은 그거를 다시 갖고 가고 있어요. 식당에 찾아오는 사람들 봐요. 그게 아니었으면 누가 이렇게 새로 오픈한 구석탱이를 찾아오겠어요?”

소설가 천운영(47)이 서울 마포구 연남동 골목에 스페인 요리를 파는 식당 ‘돈키호테의 식탁’을 연 건 지난해 12월 15일이었다. 이제 막 한 달이 지나는 시점인데, 그 사이 소문이 나 문인들은 물론 그녀의 팬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중이다. 그녀와 살가운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 식당을 찾는다면 그건 오산이다. 천운영은 내내 주방에서 직접 스페인 음식을 요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최근에는 몸살이 나서 식당 문을 이틀씩 닫기도 했다. 그녀를 만난 건 하오의 이른 시간이었다. 하루 중 유일하게 노트북 앞에 앉는 자신만의 시간인데 인터뷰로 뺏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스페인 요리를 배워 식당을 차린 소설가 천운영. 그는 “내가 먹고 마신 세상을 요리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남제현 기자
“식당을 하면서 확실히 느껴지는 게, 나는 갑이었어요. 떵떵거리면서 내 문장 고치지 마세요, 하면서 어쨌든 버텨왔거든요. 여기서 저는 완전히 을이에요. 을도 이런 을이 없어요. 너무 사소한 것들이어서 문학에서 배척하는 일상에 얼마나 많은 일과 고통이 있는지 벌써 한 달도 안 됐는데 준비 과정에서부터 느껴 왔어요. 이걸 하기 잘했다고 생각하는 두 번째 이유예요. 내가 또 한 번 제대로 세상을 배울 수 있는 계기를 나 스스로 선택했구나, 어떤 결과가 오든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런 생각인 거죠.”

천운영은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와 소설집 ‘바늘’ ‘명랑’ ‘그녀의 눈물사용법’ ‘엄마도 아시다시피’ 등 네 권과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생강’ 등 두 편을 펴내며 꾸준히 작품 활동에 매진해온 작가다. 그녀가 스페인과 인연을 맺은 건 2013년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으로 말라가에 6개월간 머무르며 집필할 수 있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택되면서부터였다. 그녀는 그곳에서 만난 스페인 사람들, 특히 그들의 어머니나 동네 아주머니들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친교를 터 스페인 요리를 배웠다. 레지던시에서 돌아와서는 세르반테스 문학기행을 세 차례에 걸쳐 다시 다녀오면서 돈키호테와 산초가 먹었던 음식들을 죄 섭렵했다. 작년에는 다시 마드리드 요리학교에 가서 6개월간 배우기도 했다. 사실 요리와 그녀의 인연은 스페인보다 훨씬 앞선다.

“저는 일곱 살 때부터 공순이였어요. 공장 일을 하지 않으면 아빠가 절대로 용돈을 주지 않았어요. 아줌마들과 똑같이 시급을 주어서 대학생 때도 금토일 일을 했어요. 용돈보다도 엄마가 힘든 게 너무 싫어서 일을 했어요. 내가 일을 조금 더 하면 엄마가 편할 거 같아서. 그냥 엄마랑 있는 게 좋았어요. 엄마가 제일 예뻤고, 커서 엄마가 되겠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냥 엄마가 예뻤어요. 어릴 때에는 엄마 옆에서 떨어지는 게 무서웠어요.”

아버지는 대한일보에서 쇠를 부식시켜 활자를 만드는 일을 하다가 신문사가 없어지는 바람에 가내수공업형 ‘부식(腐蝕)공장’을 차렸다. 이 공장에서 일했던 ‘언니 오빠’들의 밥을 해대는 게 엄마의 일이었다. 전라도 순천 출신 엄마 남명자(69)씨의 음식 솜씨는 탁월했다. 후일 이 공장 출신 성공한 남자가 엄마를 찾아와 그때 그 찌개를 잊지 못하겠다고 무릎 꿇고 절을 올렸다는 일화는 단적으로 그 자질을 증명한다. 그렇게 좋아하고 떨어지기 싫어한 엄마의 솜씨를 천운영이 몸에 새기지 않았을 리 없다. 그녀는 문단 동료와 선배들을 불러 음식을 만들어 파티를 즐기곤 했다. 오래 만났던 사람과 헤어지던 날도 꽃게 다섯 마리를 사다 삶아서 살을 발라 꽃게죽을 만들어 먹여 보냈다.

“게살죽을 한다는 건 일일이 살을 다 발라내야 하는데 그 오래 걸리는 시간 동안 지난 몇 년의 시간들을 곱씹어 봤을 테고, 정말 헤어져야 하나 등등에 대해서 생각했을 테고, 그런 시간을 벌고 지난 시간을 녹이는 일일 수 있을 거고… 잘 모르겠어요. 왜 먹이면 마음이 편해지는지.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아요. 근데 어쨌든 요리하는 일을 좋아해요. 소설이 잘 안 풀릴 때는 멸치똥을 바른다거나, 북어를 두들겨서 보풀이 일게 만든다거나 그런 일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누군가를 먹이는 일이야말로 기초적인 모성이 아닐까. 모성이라는 말에 천운영은 쉬 수긍하진 않았다. 여성의 원초적인 본성 때문이라기보다 세상을 곱씹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접하고 위로하는, 보다 크고 넓은 어느 경지에 대해 말하고 싶은 듯했다. 천운영은 근년 들어 두 번에 걸쳐 남극에 다녀왔다. 만화작가 윤태호, 영화감독 정지우 등과 다녀올 때는 다큐멘터리를 촬영 편집해 지난해 ‘남극의 여름’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내가 먹은 세상, 그것이 어떻게 소화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은 요리, 그것이 요리의 언어잖아요? 음식의 언어잖아요? 내가 먹고 보고 듣고 한 세상을 글로 표현한 건 소설이고, 그래서 내 몸 안에 들어 있던 그 소화된 어떤 세상을 영상언어로 보여주는 건 다큐인 거고, 근데 정말로, 남극 이야기는 소설로도 산문으로도 모자라더라구요. 가장 적절한 언어를 찾은 거 같아요.”

지금 어떤 기로에 서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늘 가던 길에 풍경만 바뀌었을 뿐 방향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바꾼 게 아니다”고 답했다. 다만 바뀐 풍경에 날씨도 다르고 바람 온도 습도도 다른 그 풍경에서 살짝 몸이 다른 방식으로 적응하면서 여전히 걷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길이 바뀌는 게 아니라 몸이 바뀔 수는 있다고 했다. 그것은 생을 표현하는 도구의 변화에 대한 언급이었다.

인터뷰 시작 무렵 장을 본 식재료들이 가득 든 가방을 끌고 들어왔던 남명자씨는 “다른 거 다해도 식당은 안 한다고 작심했는데 이걸 본다”면서 “지가 한다는데 어떡해, 할 수 없는 거”라고 말하며 웃었다. 엄마는 남도 삭힌 홍어야말로 최고라고 했고 딸은 그 홍어 소스를 빵에다 얹은 요리를 선보이고 싶다고 거들었다. 딸은 늙은 엄마가 심야에 골목길로 다시 가방을 끌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눈물 짓는다고 했다.

그녀는 언제 다시 소설을 쓸까. 안 그래도 “문장에 대한 그리움이 넘쳐나서 죽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비워 둔 우물이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고 그래야 콸콸 넘칠 것”이라고 했다. 지금 읽어도 모든 인물의 전형이 놀랍게 다 살아 있는 ‘돈키호테’의 작자 세르반테스도 감옥생활 끝에 늙어서 결국 두 편을 써낸 건데, 죽을 때까지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몸으로 써 나갈 그녀의 소설이 옹골차다.

“문장을 수백 개 썼다가 퇴고와 지난한 과정을 거쳐 몇 개 남기는 게 소설이잖아요? 어떤 건 틀린 문장이고 어떤 건 나쁜 문장이지요. 그 문장들을 체에 걸러서 나오는 게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삶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제가 잘못하는 일들이 많겠지요. 여기에서도 난 문장을 시간마다 쓰고 있는 거예요,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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