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릭스비가 돌아가기 열흘 전쯤, 국내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충북 제천 한 카페 마당에서 생활하던 고양이가 숨진 채 발견됐다. 아띠로 불리던 이 길냥이가 쓰러진 자리에는 주먹만 한 돌멩이가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 고의로 해친 것으로 보고 경찰이 수사 중이다. 분노한 네티즌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범인 잡기에 나섰다. 안양에서는 돈을 걸고 개싸움을 붙인 일당이 입건됐다. 현장에서 발견된 투견은 초주검이 돼 동물병원으로 이송됐다. 투견꾼은 “투견은 싸우려고 태어난 개 아니냐”며 오히려 단속에 항의했다고 한다.
근자에는 동물학대로 국제 망신을 사는 일까지 벌어진다.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독일 현지에서 동물학대로 도마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그가 도피 중에 기르던 개와 고양이 20여 마리가 마르고 겁에 질려 있다는 것이다. 이 중 몇 마리는 압수돼 독일에서 다른 사람에게 입양됐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 소식은 현지 언론에 보도되면서 독일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됐다.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동료에 대한 공감이나 슬픔은 인간만의 고유한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은 밝혀진 지 오래다. 반려견을 키우는 이들은 안다. ‘종’만 다를 뿐 ‘사람’과 똑같다는 것을. 극단적인 비교일 수 있으나 미국의 견공 그릭스비에 비해 토종 고양이 아띠와 투견의 팔자가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반려견 인구 1000만 시대라 말만 하지 말고 동물복지 ‘글로벌 스탠더드’도 챙겨할 때다.
박태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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