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버블붕괴 25년 "엔화 약세가 2차 버블 일으킨다"

입력 : 2017-02-23 11:40:38 수정 : 2017-02-25 02:55:5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주가와 부동산 등 자산 가치의 폭발적인 상승이 시작됐다. 당시 이들 자산의 가치는 비정상적인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른바 '버블 절정기'였다. 당시 일본인들은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에 빗대 "일본에서는 자산 가치가 중력에 이끌려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며 "뉴턴은 일본에 오지 않는다"고 자만했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은 깊은 법. 올 것은 오고야 만다. 1990년대 들어 한껏 부풀어 오른 거품은 순식간에 사그라져 일본 경제는 깊은 상처를 입고 무너졌다.

버블 경제에 취해 모두가 환호했을 당시 와세다대 금융종합연구소의 노구치 유키오 교수만이 이러한 기현상을 지적하며, 논문을 통해 위기라고 강조했지만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다. 마침내 1992년부터 소위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암흑기가 시작됐다

25년이 지난 지금 노구치 교수는 현 경제 상황을 두고도 "엔화 약세로 근근이 버티는 버블 경제"라며 "버블이 쓰나미처럼 일본을 휩쓸 것"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을 통해 또다시 경고했다.
버블 절정기 나이트클럽에서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일본 젊은이들의 모습.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 '부채춤'이 크게 유행했다. 사진=마이니치신문, 활활 타오르는 버블 시대
■ "주식과 부동산은 추락하지 않는다"…자만이 부른 비극
일본은 전후 부흥 시기와 고도 성장기를 거쳐 미국을 넘어선 경제 대국이 됐다. 당시 세계도 이를 인정했고, 실제로 1980년대만 해도 경제와 금융체제가 잘 맞물려 돌아갔다. 노구치 교수 역시 "일본 경제의 실체적인 성장이 세계를 제패했다"고 판단했었다.

1973년 석유파동이 발생해 세계 경제에 큰 혼란을 일으켰던 당시 일본에서도 여러 문제가 불거졌지만, 당시 그는 석유파동에서 비롯된 폐해 대신 실제 가치보다 수십 배 높게 평가된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주목했다.

자산가치 하락이 일본 경제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한 노구치 교수는 1987년 논문을 통해 그 타당성을 검증했고, 나아가 거품은 오래 갈 수 없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정부와 시장은 여전히 무시했다. 되레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며 투자를 부채질했다.

이후 3년이 지나서야 정부는 비정상적인 땅값 상승의 위험을 감지했다. 대장성(現 재무성)은 1990년 3월27일 부랴부랴 부동산 대출 총량규제를 발표했으나 오히려 거품이 폭발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정부 규제에 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1989년 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3만8915엔까지 치솟았던 닛케이 평균주가는 규제 발표와 함께 추락하기 시작했고, 위기를 감지한 기업과 투기꾼들이 매물을 시장에 쏟아내는 바람에 부동산 가격도 동반 추락했다.

일본들은 '잔뜩 낀 거품이 빠진다"며 환영했지만, 거품이 사라진 빈자리는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 토지를 담보로 회사에 거액을 빌려준 금융기관은 대량의 부실채권을 쏟아내 1년 만에 은행과 증권사 4곳이 연이어 파산했다.

노구치 교수는 "성실히 일해도 집을 살 수 없었던 비극적이고 암울한 시대였는데, 사람들은 되레 열광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폐해는 '투기 게임'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까지 악영향을 줬고, 가장 큰 피해는 열심히 일한 평범한 서민들이 입었다.
1987년 새해 첫날 일본에서 판매된 2500만엔(약 2억5200만원)짜리 복주머니. 금액에 상당하는 경품이 들어 있다. 사진=마이니치신문, 활활 타오르는 버블 시대
■ '엔화 약세 버블'…"버블 쓰나미가 일본을 휩쓴다"
노구치 교수는 일본 경제가 다시 '2차 버블'에 진입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 들어 기업들이 괜찮은 수익을 내고 있지만 엔화 약세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통화정책에도 ‘거품이 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일본은행은 2013년부터 금융완화를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본래 목적을 상실했고, 이러한 문제는 작년 가을 시행된 추가 금융완화 후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2012년 12월 정권을 잡은 아베 신조 정부는 양적 완화를 통해 엔화 가치를 낮추고 주가를 올리는 '아베노믹스'를 펼쳐왔다. 미국이 2015년 들어 금융완화를 중단하고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는데, 일본은 반대로 금리를 내리는 등 추가 완화를 선택했다.

아울러 일본은행은 시중에 돈을 풀기 위해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매우 높은 가격으로 대량 사들였고, 3년 6개월이 지난 2016년 10월 평가 손실이 6배 이상 늘어 무려 101조엔(약 1020조원)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시장에서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신인도까지 흔들릴 수 있어 더욱 큰 문제로 비화된다.

노구치 교수는 "앞으로 일본은행이 보유한 국채는 더 큰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며 "아베노믹스를 평가할 때 금융완화는 효과를 봤다는 주장도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의 정책이 역효과를 내 천문학적인 손실을 기록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게 노구치 교수의 우려이다. 또 향후 국채 금리가 오르면 이를 보유한 민간금융기관도 손실을 피할 수 없고, 엔화 약세가 끝나면 그 손실은 다시 애꿎게도 열심히 일한 평범한 서민들이 보게 된다.
1990년 10월 일본 도쿄 외곽의 지바현에는 고급 주택가가 앞다퉈 세워졌다. 현대 이들 주택의 가치는 버블 호황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마이니치신문, 활활 타오르는 버블 시대
■ "주식이 오를 이유가 없는데 주식은 계속 오르고 있다"
노구치 교수는 그간 일본 기업은 구글이나 애플처럼 세계를 제패한 혁신적인 기술과 경영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생산성을 높인 것도 아닌데 주가는 계속 올랐다고 우려했다.

여기에 일본인은 고도 성장기 때의 자신감도 잃어버렸으며, 최근에는 생산가능인구마저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런데도 닛케이 평균 주가는 2만엔대를 유지하고 있고, 도쿄 증권거래소 1부의 시가 총액은 버블 절정기에 육박하고 있어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그는 "일본 기업의 수익은 리먼쇼크 이전 수준에 못 미치고, 정부가 국채를 무리하게 발행하는 방식으로 엔화 약세를 인위적으로 유도해 기업의 수익을 지탱하고 있다"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일본 기업이 세계 최고라는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않는데 주가가 오르는 기현상은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구치 교수는 또 "버블 경제보다 지금 이러한 상황이 더 이상하고 우려스럽다"며 "버블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끔찍한 과거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어 "거품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와세다대 금융종합연구소의 노구치 유키오 교수가 아베노믹스로 발생한 엔화 약세로 버티는 기업의 성장 없이 주식이 오르는 일본 경제의 거품을 지적하고 있다. 노구치 교수는 대안으로 산업 전반에 걸쳐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과거 버블 경제에서 교훈을 얻고, 미국 등 해외 사례를 연구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사진=마이니치신문
노구치 교수는 선진국의 제조업 쇠퇴는 일본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중국과 개발도상국의 산업화로 발생한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엔화 약세로 이익을 얻고 여기에 안착한 기업이 산업구조 전환을 늦추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를 먼저 겪은 미국 등에서 교훈을 얻어 제조업 축소와 기술혁신을 꾀해야 위기를 탈출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이어 "엔화 약세에 따른 버블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균형을 만들 수 없다"며 "엔화 약세는 계속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지금이라도 깨달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7년 7월 빈센트 반 고흐의 거액을 자랑하는 작품 `해바라기`가 경매를 통해 일본 생보사에 낙찰돼 전 세계를 놀하게 했다. 사진= 마이니치신문, 활활 타오르는 버블 시대
한편 일본 국채의 발행 잔고는 약 1100조엔으로, 그 규모는 선진국 중 최악의 수준이다. 현재 일본은행의 전체 국채 대비 보유 비율은 40% 정도인데, 지금 속도로 매입하면 2018년에는 50%를 넘어선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22일 의회에서 유동성 문제를 일축하며 "국채 수익률의 통제 목표치를 달성한다는 전제 아래에도 채권을 사들이는 데 어려움은 없다"고 밝혔다. 
2008년 9월 어느 날 일본 '줄리아나 도쿄'에서 하루 동안 '버블 시대'가 재연됐다. 이날 버블의 부활과 함께 부채춤이 재등장했다. 사진=마이니치신문, 활활 타오르는 버블 시대
구로다 총재의 낙관이 과거 버블 시대를 지배한 그것과 다를지 지켜볼 일이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