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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머리를 염색을 하는 게 어떨까. 훨씬 젊어 보일 것 같은데.” 이제 반백을 넘어 머리 전체를 흰색으로 뒤덮기 시작한 나를 보고 친구가 우정 어린 조언을 한 것이다.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염색을 시작했다. 은퇴를 한 친구들은 그나마 신경을 덜 쓰는 눈치지만 아직 현직에 있는 친구들은 검은 머리를 유지하려고 열심이다. “그래 볼까” 하고 웃으며 화답했지만 나는 아직 염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얗게 센 흰머리가 나는 좋다. 뭔가 연륜이 쌓인 기분이 든다. 달리 생각해보면 나름 로맨스그레이를 얻기 위해 나는 육십이라는 세월을 보냈으니까.

나이가 들면 머리가 하얗게 세고 얼굴에 주름살이 생긴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도대체 언제부터이지. 아마도 TV의 영향이 클 것이다. 특히 디지털 TV가 보급된 이후로 우리는 TV 화면에 비친 사람들의 얼굴 잡티가 그렇게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것에 대해 놀랐고 점, 주름, 처진 살들이 너무나 두드러져 보이는데 놀랐다. 그래서 TV에 출연하는 것이 직업인 연예인들이 먼저 자신의 얼굴을 보정해 나가기 시작했으며, 뒤를 이어 일반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외모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서 우리는 젊음은 아름답고 나이 듦은 추하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어떻게 해서든지 좀 더 젊어 보일 수 있도록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윤철호 선문대 교수·산업경영공학
젊음은 아름답고 나이 듦은 추하다는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다. 사진작가 니컬러스 닉슨은 1975년 아내를 방문하러 간 길에 네 자매의 흑백사진을 찍었다. 그는 그 후 40년간 쉬지 않고 해마다 한 번씩 나이 들어가는 자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이후 사진을 모아 ‘브라운 자매’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그냥 꾸밈없이 옷을 걸치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선 네 자매의 모습에는 세월의 흐름이 가감 없이 담겼다. 젊은 시절 그녀들은 싱그러움이 가득했지만 시간과 더불어 그녀들의 모습도 서서히 변해갔다. 40년 후 그녀들의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했고, 하얗게 센 머리에 피부는 탄력을 잃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들의 얼굴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품이 있었다. 뭐랄까. 이 풍진 세상을 잘 살아온 것에 따른 이해심이랄지 온화함과 여유가 느껴졌다. 분명 젊은 시절의 그녀들은 아름다웠지만 나는 그녀들의 얼굴에서 풋풋함과 동시에 어설픔, 두려움의 분위기를 감지했다. 젊음에는 젊음만이 가지는 아름다움과 미숙함이 있었고, 나이 들어서 세월의 흐름은 또 다른 차원에서의 아름다움과 원숙미를 부여했다. 나이 든다는 것은 단지 일방적으로 쇠락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디지털 TV의 영향도 있고 조금은 사는 게 여유로워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이 들면서 젊어 보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데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도 좋지만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레 얼굴에 쌓여가는 생의 흔적 역시 좋다. 하얗게 센 머리와 깊게 팬 주름살은 세월을 견디어내고 굳건하게 잘 살아온 우리에게 어쩌면 훈장이다. 낡은 고택의 대청마루 기둥이나 대들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처럼 연륜으로 가득한 우리 얼굴에도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니 가끔은 어려운 세월 잘 살아왔노라고 주름 가득한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격려하고 자족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윤철호 선문대 교수·산업경영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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