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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손, 녹슨 쇠메 소리를 기억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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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23 08:00:00 수정 : 2017-02-27 23: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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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고 꺾여도 쉼없이 도구 낳은… 장인의 손은 어머니 / 아직 쇠메 놓지못하는 대장장이 설용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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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를 사용하는 손은 인류와 다른 종을 구분한다. 그런 도구를 만드는 주체 또한 손이다. 밥을 먹고 힘을 내는 ‘밥심’의 근원이 농부의 노력이라면 농기구의 효용은 대장장이의 완력과 수완에서 나온 것이다. 굽은 낫과 괭이, 날 선 칼, 갈라진 쇠스랑, 어디 하나 대장장이의 힘과 솜씨가 들어가지 않은 데가 없다. 그 솜씨는 손에서 손으로 전수된다. 도구의 탄생에서 손은 곧 어머니다.



지금 우리는 수공업이라는 말조차 어색한 시대에 살고 있다. 손은 더 이상 도구의 유일한 근원이 아니다. 대량생산 가능한 기계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기계의 효율성은 모두의 수고를 덜어주었지만, 불안감이 그 자리를 메웠다. 불안은 ‘어머니를 잊은 존재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이치에서 비롯됐으리라. 세월의 속절없음 앞에서도 한 가지에만 얽매이는 것은 모두 어머니를 닮았다. 척박한 현실과 상관없이 고집스레 ‘낳는 행위’를 이어온 장인의 손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자 보은군 남다리 대장간을 찾았다.












<<사진 = 온종일 내린 비가 땅을 적셨다.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 야장 설용술 옹이 운영하는 남다리 대장간은 보은군 죽전리, 보청천 합수부 둔치 아래 있다.>>

 










<<사진 = 부인 구광래(77)씨가 대장간 입구에 앉아 장인과 우유를 나눠 마시고 있다. 구씨도 20여년 전 청각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보청기가 없으면 둘은 대화가 어렵다.>>










<<사진 = 텅텅대는 단조기의 요란한 소리에 금세 귀가 먹먹해진다. 청력이 약한 장인은 수화기를 귀에 밀착하고 "여보시요"만 반복한다.>>

야장들 중 설용술(84) 옹에게 주목했던 이유는 하나다. ‘고집’이다. 상업성과 거리가 먼 그의 대장간에는 더 이상 드나드는 손님도 배우고자 찾아오는 후계자도 없다. “내 대에서 끊어질 것 같다”는 야장의 말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사진 = 기계가 사람의 노동을 대신한다 해도 결국 질 좋은 도구를 제작하는 것은 뛰어난 장인의 수공(手工)으로만 가능하다. 얼굴에 맺힌 주름은 수만 번 쇠메를 내리친 순간의 합이다.>>

지난 2년 사이 3차례 뇌졸중이 찾아왔다. 후유증으로 많은 기억의 조각을 잃어버렸다. 그런데도 매주 장날이면 그가 만든 도구들이 나란히 나와 데려갈 주인을 기다린다. 쇠메(쇠망치)를 쥔 손이 여전히 모든 것을 기억하고 보여주고 증명하는 셈이다.












<<사진 = 장인이 괭이를 만들고 있다. 산업화와 함께 기계주조로 대량생산된 값싼 농기구가 보급되었지만, 단조방식으로만 제작 가능한 도구가 있다.>>










<<사진 = 대장간에서 이루어지는 철기 제작 공정의 대부분이 고된 육체노동이다. 쇠메질 대여섯 번에 장인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그는 한참을 모루에 기대어 있었다.>>










<<사진 = 흙으로 빚은 화로에 풀무질이 더해진다. 붉은 무연탄 사이에서 철물이 달아오른다. 눈썹모양 낫 두 자루는 단단하게 제 모양을 갖추기 위해 잠시 동안 물러진다.>>










<<사진 = 설 장인이 도끼날을 벼리고 있다. 불똥이 얼굴로 튀었다. 그는 줄곧 도끼를 응시했다.>>










<<사진 = 날카로운 마찰음이 대장간을 메운다. 쇳조각이 도구로 거듭나는 소리다.>>

산업사회에서 철 생산은 국가적 산업으로 관리·육성된 반면 전통 장인들의 철기 제작 수공예 기술은 도태됐다. 농기구 제작이 중심인 이들의 작업은 농경사회에서 큰 몫을 담당해 왔으면서도 쉽게 외면당했다. 전통 대장간 장인들은 값싼 중국산 농기구의 범람과 현대사회의 무관심 속에서도 꾸준히 지역 농촌사회를 위해 일해 왔다. 주조된 중국산 농기구가 수입되지만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농기구 제작과 수선은 여전히 현지 대장간의 몫이다.









<<사진 = 이날 수선 주문이 두 건 있었을 뿐, 장인은 종일 어떤 연장도 새로 만들어내지 않았다.>>










<<사진 = 남다리 대장간은 장날(1일·6일장)에 문을 연다. 곧 농번기가 시작되지만 농기구를 다루는 대장간의 화덕은 써늘하다.>>










<<사진 = 도구를 다듬는 연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제각기 용도는 달라도 같은 손때가 묻었다.>>














<<사진 = 둑방 아래 자리한 남다리 대장간 앞으로는 좀처럼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다. 장인은 의자에 앉아 인기척이 있을 때마다 위를 올려다본다.>>










<<사진 = 종일 비가 내리던 날, 장인은 처마 밑으로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의자는 기울었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14살부터 쇠메를 잡은 소년의 손은 나무뿌리처럼 변했다. 60년 넘게 도구를 낳아온 산고의 흔적이다. 대장간에 걸린 시계는 멈춘 지 오래다. 망치와 집게는 녹슬었다. 장인의 손은 하루가 다르게 굳어간다. 









<<사진 = 설용술 장인의 손은 휘고 데이고 굳어 있다. 손은 삶의 궤적을 드러낸다. 식사시간을 제외하곤 목장갑을 벗지 않았다.>>














<<사진 = 팔순을 넘긴 장인은 평생 대장간을 벗어난 적이 없다. 이날도 문을 열었지만 아무도 찾지 않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대장간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사라지는 것에 대한 연민’이 비쳤다. “철이란 것은 녹이 나는(스는) 게 정상인 거지. 시간이 지나면 썩어 사라지는 것이 순리야. 나도 마찬가지야.” 늦은 오후 붉어진 해를 보며 장인이 말했다.  








보은=글·사진 하상윤 기자 jony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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