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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슬픔은 내 오랜 친구… 하지만 난 그를 통해 따뜻한 봄날 그린다”

입력 : 2017-02-27 20:50:23 수정 : 2017-02-27 20: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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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시집 낸 박상순 시인
“제 오랜 친구인 슬픔을 감자와 물질적으로 결합한 건데 슬픔조차도 이렇게 이리로 옮겼다가 저리로 옮겼다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치환시킨 것이죠. 이 발상이 어디서 왔는지 설명할 순 없겠지만 아마 새로운 범주를 제시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가운데 어느 순간 잡혔을 겁니다. 논리적인 실험으로 생겨났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박상순(55) 시인이 13년 만에 펴낸 네 번째 시집 ‘슬픈 감자 200그램’(난다·사진)의 표제시에 대한 시인의 변이다. 전위적인 시를 써 온 박상순의 시치고는 상대적으로 덜 난해한 편이다. 슬픔을 감자 200그램으로 바꾸어 옆으로 옮기고 신발장 앞으로도 옮긴다. 다음날엔 침대 밑에 넣어두기도 하고 오늘밤엔 의자 밑에 숨긴다. 슬픈 감자 200그램은 딱딱하게 슬프고, 알알이 슬프다. 1990년대 벽두에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라는 파격적인 시로 문단에 충격을 주며 시단에 나왔던 그이도 이제 유연해진 걸까. 


“기차가 지나갔다/ 그들은 피 묻은 내 반바지를 갈아입혔다/ 기차가 지나갔다/ 그들은 나를 다락으로 옮겨놓았고/ 기차가 지나갔다/ 첫 번째 기차가 아버지의 머리를 깨고 지나갔다/ 두 번째 기차가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지나갔다/ 세 번째 기차가 내 눈동자 속에서 덜컹거렸고/ 할머니의 피묻은 손가락들이 내 반바지 위에/ 둑둑 떨어지고 있었다/ 기차가 지나갔다/ 나는 뒤집힌 벌레처럼 발버둥쳤다/ 기차가 지나갔다/ 달리는 기차에 앉아/ 흰 구름 한 점 웃고 있었다/ 기차가 지나갔다”(‘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


13년 만에 새 시집을 펴낸 박상순 시인. 그는 “삶과 죽음에 근접한 인물들의 실제 상처와 갈등에서 소재는 가져왔지만 그걸 통해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보고 싶었다”면서 “내 삶을 드러내 이해받기보다는 시를 통해 그것을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논리적으로 연결되거나 설명할 수 있는 시가 아니다. 막연히 처절한 느낌인 건 분명히 알겠다. 기차가 아버지와 어머니와 할머니를 깨거나 가르거나 잘라내 피를 부른다. 내 반바지에조차 피가 묻어난다. 나는 뒤집힌 벌레처럼 통곡을 하며 악을 쓰지만 기차는 지나가고 그 기차 지붕 위로 흰 구름은 무심히 웃는다. 1980년대의 강파른 시대적 환경은 문학조차 내버려두지 않았다. 아니, 문학도 자발적으로 그 시대를 위해 복무했다. 자연스레 공동체를 우선하며 투쟁의 도구로 활용됐고 그러한 문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1990년대 접어들어 광장에서 밀실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관심이 바뀌기 시작했고 이 흐름의 선두가 시 쪽에서는 박상순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1년 ‘작가세계’ 등단작인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는 파격 그 자체였다. 첫 시집을 내기도 전에 소문이 나서 그가 근무하던 민음사 구석방에 대체 박상순이 누구냐며 시인들이 일부러 들러 얼굴을 보고 가기도 했다.

“지나치게 편파적일 만큼 개인적 언어를 사용한 것 때문에 난해하게 읽히는 부분이 확실히 있을 거예요. 제가 등단하던 시점을 기준으로 한국 현대시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부분은 아마 저의 작업을 포함한 어떤 흐름이었을 겁니다. 저는 슬픔이나 고독 같은 것을 개별자의 관점으로 다루기 때문에 보편적인 공감대 형성에 어려움이 있었을지 몰라요. 박상순이 나오고 난 뒤 얘들이 난해해졌다, 니가 망쳐놓았다는 식으로 농담을 하는 어른들도 있었어요.”


집단보다는 개인을 클로즈업시키고, 살을 다 발라내 뼈만 남긴 뒤 재구성하는 방법으로 추상화를 그려내는 시. 박상순의 이러한 시작(詩作) 태도는 여느 시인들의 출발점과는 확연히 다른 뿌리에서 기인한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뒤 군대에 다녀와 시를 쓰기 시작했다. 미대에서 배운 서양미술이론은 물론 회화 판화 설치미술에 이르는 다양한 표현기법까지 모두 시의 자양분으로 작동했으니, 그가 그려내는 시의 질감과 기법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현대문학상(2006년)을 수상했을 때 심사위원 유종호는 “대담한 환상, 현재와 과거의 혼성, 이미지의 빠른 회전을 통해서 자명한 세계의 전복을 이루어내고 있다”면서 “이미지의 빠른 회전은 흡사 환등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평가했다. 자명한 것처럼 보이는 세계를 전복하는 환등기 속 판타지 같다고 본 것이다.

“시적 대상은 리얼리티 속에 있겠지만 개인을 클로즈업시키다보니 저도 은연중 환영적인 장치들을 넣은 게 확실합니다. 현실을 환등기 속 장면으로 뽀얗게 처리하고, 그렇게 처리된 요소들이 제멋대로 저희들끼리 무대를 꾸미게 하는, 또 한 번 변형의 길을 가게 한 거지요. 언어놀이 같은 초현실적 세계와 현실에 밀접한 듯하지만 말장난인, 두 경향이 교차 반복되어온 셈이지요.”

난해한 작법에도 불구하고 박상순의 시를 공통으로 관류하는 정서는 슬픔과 고독이었던 것 같다. 최승호 시인은 “나는 그의 외로움이 그동안 단절의 문법, 독해가 불편한 문법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슬픔은 자신의 오랜 친구라고 시인 자신이 고백했다. 슬픔이라는 도구를 동원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봄날을 그리고 싶다고 그는 이번 시집 후기에 썼다. 그의 시에서 슬픔과 고독은 눅진하거나 질척거리는 범상한 감정이 아니라 벼리고 깎아낸 미니멀한 상징으로 내재한다.

“고독을 견디고 나아가기 위해 선택한 것이 언어를 가지고 노는 새로운 방식의 놀이지요.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달라지기보다는 오히려 훨씬 고독의 문법에 저를 더 정교하게 가두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태도를 두고 독자의 이해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다른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지난해 한국문학번역원 지원으로 프랑스에서 열린 ‘한불공동번역아틀리에’에 참석해 불어로 그의 시가 번역되고 낭독회도 열렸을 때 한 프랑스 여성 시인이 “앞으로 내가 쓸 시가 당신 때문에 바뀌게 될 것 같다”고 했다는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상순은 설명하지 않는 장르라는 매력 때문에 미술을 선택했고, 회화의 언어는 글로벌 언어여서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에 매료됐다고 한다. 소수 언어인 한글로, 그것도 대중과 쉽게 소통하지 못하는 태도로 시를 쓰는 그의 소출은 오히려 해외에서 더 잘 통할 수 있다. 명사와 동사가 주류인, 형용사는 극히 배제된 채 이미지로 완성하는 편인 그의 시들은 외국어로 번역했을 때 손실이 적은 스타일인 셈이다.

“빵공장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안의 극한 슬픔은 실체가 있습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구체적인 지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과거의 보따리를 풀어놓기보다는 이제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이야기를 해부하고 나면 구체적인 사건과 행위만 남는데 저는 그걸 통해서 세상을 조금 더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었습니다.”

여느 인터뷰에서처럼 그가 문학으로 가게 된 성장기의 환경을 물었지만 그는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설명하는 걸 싫어하는 그의 문학적 태도와 일치한다. 시인이 발명한 슬픈 감자 한 알이 모니터에서 굴러나온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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