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피스토리우스, 메건 로이드 데이비스 지음/이유진 옮김/ 푸른숲/1만5000원 |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10대 소년인 마틴 피스토리우스는 어느 날 엄마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마틴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엄마는 천천히 말했다. “네가 죽어야 해.” 마틴은 엄마가 바라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말을 듣고 나니, 삶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러나 마틴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신간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9년이라는 시간 동안 ‘갇힌 몸’으로 살아야 했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이다.
9년간 ‘갇힌 몸’ 속에서 살아야 했던 마틴 피스토리우스는 “누군가 내가 끔찍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나서야 타인이 내게 베푼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은 투병 중인 마틴 피스토리우스의 모습. 푸른숲 제공 |
마틴은 여러 방면에서 치료를 시도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이윽고 의사들마저도 그의 치료를 포기했다. 마틴은 낮에는 돌봄 시설에서, 밤에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의식은 4년이 지난 어느 날 다시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식만 돌아왔을 뿐, 몸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고 의사표현도 하지 못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의식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무려 9년이었다.
살아 있지만,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지 못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마틴은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바니의 친구들’과 ‘라이언 킹’을 봐야 했다. 그는 ‘세상에 이보다 더 심한 것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그의 생각을 읽지 못했다. 그렇게 그가 지쳐갈 때쯤 ‘텔레토비’가 등장했다.
마틴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빈 껍데기’로 생각했다. 그가 의식이 없다고 여긴 사람들은 그의 면전에서 말을 함부로 내뱉었다. 가족 파티가 열린 날 구석에 앉아 있는 그를 발견한 친척은 “저 애를 좀 봐. 가엾은 녀석. 무슨 인생이 저러니”라고 말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마틴에게 음식을 먹여주던 요양사는 “쓰레기 같은 자식”이라고 욕했다. 또 다른 요양사는 움직이지 못하는 그에게 성폭력을 자행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절망했던 순간은 부모와 가족들이 자신 때문에 싸우거나 힘들어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마틴이 9년 동안 자신의 몸속에 갇히면서 느낀 감정은 절망과 공포, 외로움뿐이었다. 아주 작은 일조차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할 때 절망이 밀려왔고, 가족들이 죽거나 자신 곁을 떠나고 홀로 남겨질 미래를 생각하면 공포가 찾아왔다.
그러나 슬픈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 미소 지어주는 낯선 사람,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줬던 간병인, 그리고 수많은 고비를 넘기면서도 늘 곁에 있어 줬던 가족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는 버텨야 할 이유를 찾았다.
마틴에게 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도 평소 사려 깊었던 간병인 버나였다. 버나는 마틴을 환자가 아닌 친구로 대하며, 늘 자신의 얘기를 들려줬다. 그러던 어느 날 버나는 여느 때처럼 마틴의 눈을 바라보고 얘기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마틴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확신이 들었고, 마틴의 부모에게 검사를 권했다. 버나는 검사를 받는 마틴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선을 다해 마틴.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야. 난 널 믿어.”
마틴은 비로소 존재를 인정받고 재활을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반려자도 만나 보통의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이 9년간 갇힌 몸에서 지내야 했던 시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 망가지고, 뒤틀리고, 쓸모 없어진 몸을 만져주며 내가 그저 끔찍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나서야 타인이 내게 베푼 것들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타인도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음을.”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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