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과로사 부르는 야근…"피해는 근로자 몫"

입력 : 2017-03-29 14:12:24 수정 : 2017-03-29 15:55:3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일본에서는 '과로사 라인'이라는 섬뜩한 말이 유행한다.

이 말은 한 달에 80시간을 초과 근무하면 '과로사할 위험이 대폭 커진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회자된다. 그만큼 장시간 근로 관행이 만연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베 신조 총리는 그간 이런 근로문화를 뿌리 뽑겠다고 강조하며 '일하는 방식 개혁'을 부르짖었는데,  기업과 게이단렌(경제인연합)에도 정책 협조와 동참을 적극 요구했다.

이에 대기업을 중심으로 주4일 근무제를 세계 최초로 시행 중인 곳이 등장하는가 하면 야근하지 않으면 오히려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업체도 나타났다. 이처럼 정부 정책에 동참해 장시간 근로를 줄이고, 근로자에게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해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상장기업 중 40%는 여전히 '과로사 라인'을 크게 초과하는 살인적인 근무 관행을 이어오는 것으로 드러났다.
얼마나 피곤했을까. 애처로워 보인다. 캐리어넷 캡처
28일 리서치기업 N저팬이 상장기업 408곳을 대상으로 상용 근로자의 야근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40%에 해당하는 163곳이 월 80시간 초과 근무를 시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서 '시간 외 근무를 포함해 매월 80시간 이상 근무했다'고 응답한 근로자들이 재직 중인 업종을 보면 언론사와 광고·출판이 64%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정보기술(IT)·통신 48%, 제조업 45%, 서비스업 38% 순으로 나타났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초과 근무에 시달리는 근로자가 많았다. 종업원 501명 이상인 대기업 근로자 가운데 68%가 '과로사 라인을 초과해 근무한다'고 답했으며, 이 중에는 월 100시간 넘게 근무한 이도 무려 33%나 됐다.

조사 대상 기업의 74%가 '과도한 시간 외 근무를 방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응답했지만, 실제 근무환경은 상반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기업은 과로사 이번 설문조사에서 라인을 초과하는 시간 외 근무 관행 탈피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고 주장한다. 복수응답 기준으로 58%는 '업무분담 및 효율 재검토'를 진행했다고 제시했으며, 이어 '관리자급 경영진의 인식재고·교육' 52%, '시간 외 근무 시 사전신청으로 제한적 허용' 51% 등 순으로 거론했다.

기업의 이 같은 노력에도 근로자들이  과로사 위험을 무릅쓴 채 관행적으로 시간 외 근무를 하고 있는 조사됐다.
 
현지 매체 캐리어넷이 시간 외 근무를 하게 된 원인을 조사한 결과 '상사가 늦게까지 남아 있어서'라고 이유를 댄 근로자가 61%에 달했다. '야근이 일상화된 분위기에서 일찍 퇴근하기 어렵다' 28%, '수당 받을 목적' 10% 등으로 실제 일이 남아서 야근하는 사례는 적은 것으로 지적됐다.
2015년 기준 주 49시간 이상 장시 근무하는 근로자의 국가별 비율. 한국이 41%로 가장 높고, 일본은 33%다. 이어 미국, 독일, 프랑스 순. 아사히신문 캡처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과로사 제로 긴급대책'을 발표하는 등 근로관행 개선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 대책은 장시간 노동 관행을 없애고, 상사의 일방적인 야근 지시를 근절하기 위한 내용을 담았다.

정부 의지와 장기간 근무를 성토하는 근로자들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사 결과 기업의 84%는 이 정책과 관련해 '명칭은 들어봤다' 또는 '모른다'고 답했다. 

이처럼 기업들의 실행 의지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아베 정부는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려고 과로사 라인을 초과한 기업명을 공개하고, 시정조치 등을 강행하고 있다. 이에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변화의 바람이 몰려온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정부의 강경한 태도가 기업의 신용도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사용자(관리자)들도 간과할 수 없어 정책에 동참하고 있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이에 반해 대중의 관심 밖에 있는 중소기업에는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20대 신입사원의 자살로 여론의 뭇매를 맞자 공식 사과하며 재발 방지에 힘쓰겠다고 다짐하며 고개 숙이는 일본 광고 대기업의 경영진. 죽은 후 사과받아봐야 무슨 소용인가. NHK 방송화면 캡처
일본은 과거부터 과로사가 큰 이슈로 등장했다. 이를 증명하는 후생노동성의 과로사 관련 통계도 발표됐다. 장시간 노동이 근로자 건강에 악영향을 주며, 최악의 경우에는 극단적인 선택이나 사망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은 일본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

이에 정부는 다양한 강수를 동원해 기업을 견제하고 있지만  장시간 근로 관행은 아직 건재하다. 지난해에도 광고 대기업에 다니는 20대 신입 여직원이 과로를 이유로 자살하는 등 좀체 개선될 줄 모른다. 


일본 광고 대기업에서 시간 외 근무를 포함해 매월 100시간 넘게 근무한 끝에 지난해 자살한 20대 신입사원의 모습. 당시 과로 자살로 큰 파문을 낳았다. TBS 방송화면 캡처)
매월 141시간 초과 근무를 강요해 직원을 과로사로 몰아넣은 이자카야 체인점 창업자(맨 왼쪽)가 지난 2013년 유가족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이 창업자는 장시간 노동을 찬양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블로그 캡처
과로사로 가족을 떠나보낸 유가족이 지난 2009년 후생노동성 기자회견장에서 과로사 방지와 대책 마련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캡처
근로자라면 누구나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잘한다' 또는 '성실하다', '수고했다'는 평가를 받길 원한다.
그러나 과로로 사망한다면 이러한 말과 격려가 무슨 소용일까. 기업은 조의금 봉투를 건네며 위로할 뿐이다.

과로사로 인한 피해는 결국 근로자와 유가족이 지게 된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