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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 같은 한국적 발레 펼쳐… 기회 왔을 때 잡아야죠”

입력 : 2017-04-23 21:10:18 수정 : 2017-04-23 2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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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수월경화’ 직접 창작한 발레리나 강효형
국립발레단 발레리나 겸 안무가 강효형씨가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 연습실에서 발레단원들에게 '허난설헌' 안무를 지도 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강효형(29)이 배포 큰 도전에 나섰다. 55분짜리 전막 발레를 직접 안무했다. 작품 제목은 ‘허난설헌 - 수월경화(水月鏡花)’. 내달 5∼7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첫선을 보인다.

입단 8년차 무용가인 그는 안무가로서는 신인이다. 공식 발표한 작품은 짧은 소품 두 편에 불과하다. 갓 걸음마를 뗀 안무가에게 약 1시간 분량, 1000석 규모의 예술의전당 무대가 주어진 건 이례적이다. 그의 과감한 도전은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 겸 예술감독이 있어 가능했다. 강 단장은 지난해 5월 그에게 전막 창작을 권유했다. 20일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강효형은 “단장님의 추진력과 열린 마음에 놀랐다”고 말했다.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겸 안무가 강효형(흰 상의)이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 연습실에서 국립발레단 단원들과 ‘허난설헌 - 수월경화’ 안무를 연습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기회가 선뜻 찾아와 놀랐어요. 하지만 부담을 느끼거나 ‘생각해 보겠다’고 하진 않았어요. 제 꿈이 안무가라서, 어차피 거쳐야 하는 단계예요.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지만, 그조차 안무가로 성장하는 데 공부가 된다고 봐요. 두렵다고 스스로 차단해버리면 저희는 계속 외국에서 작품을 사다 쓰겠죠.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죠.”

발레리나로 먼저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오랫동안 안무가의 꿈을 키웠다. 대학 때는 발레·한국·현대 무용 외에도 힙합, 재즈댄스까지 두루 배웠다. 꿈에 한발 다가선 이번 작품에서 그는 조선 천재 시인 허난설헌의 시와 슬픈 삶을 무용화했다. 

허난설헌의 시 ‘감우’와 ‘몽유광상산’을 그림 그리듯 펼쳐낸다. 일례로 작품의 마지막 ‘몽유광상산’ 중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라는 대목에서 발레리나들이 하나둘 스러진다. 허난설헌도 비애에 잠긴 표정으로 이들 속을 거닐다 끝내 생명력이 쇠한 듯 무너져 내린다. 발레이지만 처연한 감성과 여백이 한국적이다. 음악도 가야금 산조를 위주로 한 국악이다. 황병기, 한진, 김준영, 심영섭의 곡을 섞어 썼다. 

‘허난설헌 - 수월경화(水月鏡花)’ 포스터 이미지.
그는 “5년 전쯤 우연히 허난설헌의 시를 읽었는데 시상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혔다”며 “색감, 어휘가 탁월한 데다 알고 보니 시인이 자신의 죽음을 얘기한 작품이었다”고 전했다. 이후부터 그는 허난설헌을 안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구를 무대 위에서 무용으로 표현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창가에 하늘거리는 난초’라는 구절에서 관객이 수묵화를 떠올리게끔 하고 싶었어요. 허난설헌이 화선지에 붓으로 시를 쓰는 모습을 형상화하기도 했어요. 저 나름의 미장센을 깔아놨는데 보는 분들이 잘 느꼈으면 좋겠어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박슬기는 강효형의 춤에 대해 “동작이 굉장히 많고 한국적 호흡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강효형 역시 “제 춤이 무브먼트가 많기에 계속 변화를 주지 않으면 한 10분 지나면 똑같아보일 수 있다”며 “이를 막으려 치밀하게 짰는데 관객이 영화 한 편 본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제 철학이자 목표는 한순간도 보는 사람이 딴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예요. 이게 첫 번째고, 가장 큰 목표는 소름이 돋든 눈물이 일든 관객의 감정을 건드리는 거예요.”

이번 작업을 하면서 그는 발레단 동료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처음 그는 ‘동료의 안무를 받아 추는 데 거부감을 느끼면 어쩌나’ 살짝 우려했다.

기우였다. “다들 마음을 활짝 열고 해줘 감동 받았다”는 그는 “제가 첫 번째로 기회를 받았지만, 다른 단원이 창작하게 되면 저도 온 마음을 다해 도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번에 그는 안무가로서 온전히 존중 받았다. 동료들은 물론 강 단장조차 ‘효형씨, 동작 이렇게 하면 어때’라는 말이 전혀 없었다. 그는 “그만큼 믿어주니 책임감이 무겁다”고 했다.

“그런데 또 주변에서 조금씩 안무를 도와주면 작품이 산으로 가는 것 같아요. 길을 잃는다고 해야 하나. 제가 실수하거나 놓치는 부분이 있어도 혼자 가는 게 맞다고 봐요. 안무가는 자기 신념이 강할수록 좋은 거 같아요. 그래야 무용수들이 혼란을 겪지 않아요.”

춤과 안무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당차고 분명했다. 주저하거나 한발 빼는 버릇도 없었다. 그는 몸을 사리지 않는 데 대해 “성공하리라는 자신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실패할 줄 알아도 무조건 부딪쳐야 답이 나오고 발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왜 두려움이 없겠어요. 관객이 제가 원하는 만큼 이 작품을 못 느끼면 어쩌나 하는 책임감, 부담감이 있어요. 안무가의 숙명 같아요. 아직 하고 싶은 게 무궁무진 많아요. 기회를 차근차근 만들어 갈 생각이에요. 안무에 있어서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국적인 걸 시도했어요. 저만의 독특함이 어느 정도 구축되면 어떤 음악이든 끌리는 대로 다 해보고 싶어요. 더 나이가 들면 감정을 건드리는 안무가가 됐으면 해요. 관객을 웃겨도, 울려도 보고 싶어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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