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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아도 마음은 큰 ‘해방의 몸짓’… 생명력 느껴보라

입력 : 2017-04-30 21:35:53 수정 : 2017-05-02 13: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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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신장장애인과 ‘대심(大心)땐쓰’ 공연하는 안은미 “섹시해요. 얼마나 섹시한지 몰라. 만화를 보는 것 같아요. (비장애인과) 전혀 다른 운동성을 보게 될 거예요. 에너지도 미어터지려 해. 매일 아침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니까요.”

안무가 안은미(55)가 저신장장애인 두 명과 신작 무용을 올린다. 저신장장애는 키 147.5㎝ 이하인 성인을 말한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만난 안은미는 이들의 춤에 대해 “너무 이뻐요”라고 감탄했다. 눈을 지긋이 감은 채였다. 무용이라 하면 가느다랗고 탄탄한 몸이 당연시되지 않는가. 그는 “보기 좋은 떡은 1분 뒤에 지겹다”며 “맛있는 떡은 계속 먹게 된다”고 잘라 말했다. “몸에서 오는 몸맛이 있어요. 생명체가 가진 운동력이 있잖아요. 안에서 생명을 유지하려 운동을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김치가 하루, 한 달, 1년 숙성될수록 맛이 다 달라요. 몸도 숙성돼요. 한 끗발 차이로 맛이 기가 막힐 때가 있어요. 그 맛을 내는 게 좋은 무용수예요. 인간이 가진 향내 같기도 해요. 그래서 생각을 잘못하면 같은 동작인데 죽어 보여요.”

그는 “춤을 잘 추려면 어떤 사고를 하고 얼마나 성숙한지가 중요하다”며 “인간이 자기 한계를 극복할 때의 아름다움은 어마어마하다”고 설명했다. ‘보기 좋은 춤’이 주류인 한국에서 그는 끊임없이 선입견을 깨왔다. 할머니(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아저씨(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스)를 무대에 올리며 국내는 물론 유럽에서도 숱하게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미 2018년까지 공연 일정이 찬 상태다. 12∼14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신작 제목은 ‘대심(大心)땐스’. 안은미는 “‘대심’은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살면 조금 괜찮지 않겠어요’라고 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연에는 저신장장애인 김범진(26), 김유남(24)씨와 안은미컴퍼니 소속 무용수들이 나온다. 그는 이들을 “마음이 긍정적인 친구들”이라며 “유남이는 많이 뛰면 몸이 아파 체력적으로 쉽지 않을 텐데 뭐든 ‘노(No)’하는 적이 없다”고 소개했다. 연습실에서 지켜본 작품은 속도와 길이를 다양한 관점에서 풀었다. 안은미의 말대로 두 무용수가 잘랑잘랑 추는 몸짓에는 신명과 기쁨이 넘쳤다.

“두 사람을 보면서 관객에게도 큰마음이 생길 거예요. 장애인을 바라보는 편견도 없어졌으면 좋겠고, 마음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대범해졌으면 좋겠어요.”

20대 때 빨강에 매료된 후로 과감한 옷차림을 하기 시작했다는 안무가 안은미. 그는 “내가 이 옷을 왜 입는지 아니까 남의 눈이 중요하지 않다”며 “남이 쳐다보면 나도 반갑게 ‘하이’ 한다. 당연히 이상하지만 이상한 사람도 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남제현 기자
이날 안은미는 분홍색 ‘땡땡이’ 상의에 꽃무늬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민머리도 그대로였다. 이런 외양과 작품세계 때문에 그를 보면 ‘파격’ ‘거침없음’이 연상된다. 나잇값, 눈치 같은 말이 서로를 옥죄는 한국사회에서 그는 고정관념을 훌쩍 넘어왔다. 그는 이 당당함의 비결로 ‘치열함’을 들었다. “치열하니까 즐겁고, 이겨내니 기쁘죠. 저의 기쁨은 치열한 삶을 이겨내는 데서 오는 거예요. 그러니 어디 가서 당당하죠. 치열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고통 없이 태어날 때부터 ‘하하하’ 했으면, 당당할 게 뭐가 있어요. 자기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저는 30년 동안 치열하게 작품을 짰어요. 거의 잠자는 시간 빼고 짠 것 같아요.”

그의 무용단원들도 마찬가지다. 안은미컴퍼니는 내년이면 창단 30년을 맞는다. 한국에서 민간 무용단이 수십년간 생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는 “배가 너무 고파서 못 참을 때면 단원들과 어떻게 할지 의논하고 같이 잘 견딘다”고 했다. 정답에 집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실험하고 ‘잘’ 틀리기를 반복하는 것도 활력과 즐거움의 원천이다. “나 역시 계속 변하기 때문에 서로 토론을 많이 해요. 우리가 같이 진화하지 못하고 팔다리만 흔드는 사람이 되면 감동을 못 줘요.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매일 산을 넘어야 하는 거죠. 춤을 잘 추고 감동을 주는 사람을 보면 겉모습을 넘어선 뭔가가 있어요.”

그는 한국사회에도 ‘춤추기’를 제안했다.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스트레스를 해소할 데가 없어서 점점 더 나약해지고 고립되는 것 같다”고 바라본 그는 “그러니 춤을 많이 추라”고 권했다. “춤이란 피부의 접촉이고 땀이고 노동이에요. 화는 당장 풀어줘야 하는데, 기계한테 풀면 때려부수는 것밖에 더해요. 인간이 답이에요” 멋있는 춤일 필요도 없다. 그는 “스포츠댄스 챔피언, 비보이, 발레리나를 보고 ‘우와’하는 건 거기에서 끝내라”며 “자신을 위해 추라”고 조언했다. 아마추어들을 무대에 올릴 때도 그는 ‘여러분은 안은미가 되지 마라. 될 수 없다. 여러분 자신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사회가 어릴 때부터 가하는 ‘찌질함’이 있어요. 일등만 쳐다보니 이등부터 ‘루저’가 돼요. 자기가 올가미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 갇히는 거죠. 저는 ‘너를 위해 투자하라, 본인을 사랑해야 한다’고 해요. 제 춤 역시 서로 메우고 사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예요. ‘같이 사는 건 이런 거다. 나보다 남을 내세웠을 때 훨씬 평화롭고 아름답다’는 이상한 국가론을 얘기하는 거죠.”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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