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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살아도 산이 그립다] (22) 세 시간을 되돌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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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26 09:00:00 수정 : 2017-06-12 1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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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영경의 마르디 히말 트레킹
피탐 데우랄리에서 시작한 오늘이었다.

포타나를 지나 담푸스에 다 이르러 프랑스 할아버지를 대동한 가이드를 만났다.

“혹시...”

세상에! 맞다! 그도 동시에 기억을 불러왔다.

“(우리) 힐레에서 만났지? 나도 긴가민가 하며 물어보려 했네.”

2014년 11월의 힐레, 내게는 안나푸르나의 첫 밤이었고 그들에겐 마지막 밤이었다. 장년의 프랑스인들 열댓을 그와 포터들 예닐곱이 동행하였고, 무사 귀환 잔치로 흥건했던 밤이었다. 일행이었던 산꾼 사내들이 모두 한 방에서 여담을 풀고 있을 적 방을 따로 홀로 썼던 나는 밖을 나와 왁자하던 건너편 로지의 식당에서 그들과 어울렸더랬다. 그 끝에 모두가 숙소로 돌아간 식당에서 ‘렛산 피리리리’를 가르쳐준 것도 그였다. 네팔 트레킹을 또 할 생각이다, 소식 전하자, 그쯤의 대화를 뒤로 이메일주소를 주고받으며 헤어졌는데.

그는 살이 좀 불어서,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그리고 시간이 또 흘러서 우리 그렇게 주춤거리고 난 뒤에야 서로를 알아보았다.

“내가 메일 보냈는데...”

내 산골 삶이 전화와 인터넷이 썩 원활치도 않거니와 게으름까지 한몫 하여 한참 뒤에야 열어본 메일에 언제 답장해야지 미루다 여기까지 이르렀네.

“미안... ”

그찮아도 이번 트레킹에 안내를 부탁할까 고민이 없지도 않아 메일을 다시 찾아 연락을 하려다 그만두기도. 고작 떠나오기 사나흘 전에야 서둘러 짐을 싸던 여행길이었으니까. 산에서 그 많은 식구들을 통솔하던 탁월한 가이드력(?)이 그 하룻밤에도 충분히 짐작되던 그였고, 가끔 생각이 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신뢰가 갔다.

마음에 남아있으면 그리 보는 날도 오더라. 숙제 하나 끝낸 기분이었다. 그참... 사는 일이 맨날 숙제일세.

돌아가면 연락하겠다, 이번에는 꼭 하겠다고 했다. 담엔, 아니면 다다음에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갈 생각이고, 가이드를 찾을 양이면 그를 앞세우지 싶다.

 
<<사진 = 담푸스의 체크포스트>>
<<사진 = 담푸스의 한 호텔과 그곳에서 본 안나푸르나 산군>>
<<사진 = 여행객이 지나면 노래하며 사탕이나 돈을 달라는 아이들>>
<<사진 = 담푸스의 한 호텔 마당에서 산을 내려온 이들에게 마사지를 해주는 상카 구릉>>
담푸스 체크포스트를 지난다.

꼬마 녀석 셋, 길 위 언덕에서 놀다가 여행객이 나타나면 책을 펴고 영어 노래를 부르며 사탕을 달라고 했다. 손 뻗는 아이들에게 주는 사탕이 정말 바람직한가 번번이 번민하게 되는데, 작은 지폐 하나 건넸다. 구걸에 대한 답이 아니라 노래 값. 대신 나는 학교에 기부하는 방법을 택했고, 이번 트레킹에서도 그리했다. 

앞서의 ABC 트레킹 때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서 이곳으로 내려오는 길을 헤매 담푸스 마을 중간으로 툭 떨어졌더랬다. 길을 잃었던 거라고만 알았는데, 이번에 보니 지름길이었던 것. 2년이 넘은 시간 그 길은 아주 반질해져 있었다. 산을 나올 땐 서둘러지는 마음이 흔할테니 단거리들을 택했으리라.

그곳을 중심으로 길을 되올라 지난 기억을 더듬어 그때 묵었던 호텔을 찾았다. 그리 어려운 풍경도 아닌데, 언덕배기 제일 마당 넓은 집이 쉬 뵈질 않았네. 모퉁이를 돌다가도 밥숟가락을 들다가도 기침을 하다가도 우듬지 사이 하늘 한번 올려다볼 때도, 그렇게 작은 틈만 생겨도 비집고 드는 그가 집을 찾는 걸음마다도 따라와 정작 내가 찾는 게 집이 아니라 그였기 때문인 건 아니었을까. 반복해서 오가고서야 찾아들어 점심을 먹고 마당에 몸을 널었다. 안나푸르나 산군이 그가 되어 아스랗다. 

“ABC 다녀오신 길인가요? 다리 괜찮아요?”

잔디마당에 앉았던 중년 아저씨가 말을 건네 왔다.

몸이 아프면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다, 모든 곳이다. 아픈데 다른 무엇을 할 수가 있고, 아픈데 어떻게 다른 것이 보일 수 있겠는가. 작고 여리고 힘든 이웃을 살펴야 하는 것도 매한가지라. 특수교사이기 때문에 가진 생각만은 아니다. 이 세상의 중심 역시 바로 아픈 그들이니까. 아플 때 아픈 그곳에 귀 기울여야 한다!

멀쩡하다 아프냐 하니 아픈 듯하다. 그렇다고 선뜻 몸을 맡기기는 주저하는데, 어깨 한쪽을 받아보란다. 구릉은 한국 등반대원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한 때 전속으로 그런 일을 했다고도 했고, 그간 그를 스쳐갔던 이들이 남겨준 글이 적힌 공책도 내밀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곁에 같이 얘기 나누던, 일본인들을 안내하던 네팔 여자 가이드에게 슬쩍 의견을 물었다. 낯선 곳에선 돌다리를 더욱 두드리게 되니까.  그런데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가 혈을 잡아가는 걸 보자 맡겨도 되겠다 싶었다.

“얼마를 드려야 하나요?”

“친구인데 어떻게 돈을 받아. 당신이 알아서 줘.”

인도에 머물러본 이들다운 대화였네. 군인으로 인도를 갔다가 아쉬람에 머물며 마사지도 배우게 됐다던가. 두어 그룹 와 있던 일본 여행객들도 봄볕 아래 주욱 늘어서서 구경을 했고, 그걸 배우려는 친구 하나도 설명을 듣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 두엇이 다음 타자로 앉아도 있고. 나 역시 그의 노트에 후기를 남겨주었고, 그에게 값이 아닌 선물을 주었네.

“가르촉으로 트레킹을 더 할 생각인데, 아스탐은 어디로 가야하나요?”

언덕(네팔에선 큰 산도 동산이라) 세 개만 넘어가면 된다며 이 길 따라 쭈욱 가기만 하면 된단다.

“한 시간 반이면 될 거에요.”

휘파람 소리 절로 나는 수월한 길일지라. 아스탐으로 향한다. 널찍한 도로에 차도 다니니 길을 잃을 두려움 따위가 다 무어람.

포카라로 이어지는 하이웨이로 내려가는 패디 쪽과 아스탐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 패디 쪽은 아닌 걸 확인했으니 이쪽이 아스탐. 표지판은 없다. 졸래졸래 아는 길인 양 주욱 걷다가 그래도 혹시나 하여 한 쪽에 건물을 새로 짓는 이들에게 말을 걸었으나 영어에 지레 멀찍이 떨어진다. 두어 차례 두멧길을 돌았나, 틀림없을 길이겠다만 그래도 확인을 하자. 새로 닦이는 먼지 풀풀거리는 길을 한참을 내려오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있는 현지인 가족을 만났다.

“여기로 내려가야 해요.”

잘못 가고 있단다. 하지만 길 아래 마을로 가는 길을 따라 가면 된다지. 딱 거기 그들이 있었던 거다. 여행지의 즐거움 하나가 그렇다. 필요한 어떤 것이 거기 꼭 있어주는. 이번 여행만 해도 얼마나 자주 나를 구했던가. 삶에서도 얼마나 자주 우리는 그런 우연 앞에서 사는 일이 고마웠던가. 오가는 차와 오토바이는 있지만 걷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그곳에 있어준 그네.

그들이 아니었으면 이 여행은 또 다른 각도로 바뀌었을 테지. 하기야 그곳에 더한 꿀이 있었을 지도. 하지만 지금은 아스탐으로! 

 
<<사진 = 2014년 11월 담푸스의 아이들은 2017년 어디로 갔을까...>>
<<사진 = 담푸스 끝에서 내려다 본 포카라 방향 전경>>
큰 도로에서 벗어난 바로 아래 식당과 숙소를 겸하는 집 앞에서 다시 길을 물었다.

“잘못 왔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게 더 빠를 걸. 아스탐까지 3시간은 잡아야 해. 여기로 내려가면 패디야. 사실 이 일대가 다 패디인데, 주로 패디라고 여행객들이 말하는 곳은 요 아래 마을이지. 이리 가더라도 그만큼의 시간은 걸려. 그래도 돌아가는 게 조금 더 빠를 거야. 그런데, 벌써 4시가 훌쩍 넘어가는데 여기서 묵고 아침에 되짚어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들어와요, 들어와."

자기 집에 묵게 하려는 건 아닐까, 낯선 땅에서는 그런 의심이 쉬 자라난다.

그나저나 으악, 세 시간이나 돌아가라고?

(계속)

옥영경(자유학교 물꼬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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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푸스의 한 호텔, 2014년과 2017년
담푸스의 한 호텔, 2014년과 2017년
<<사진 = 담푸스의 한 호텔과 그곳에서 본 안나푸르나 산군>>
 
<<사진 = 2014년 11월 담푸스의 아이들은 2017년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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