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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 희망을!] "비싼 돈 내고 왜 '지잡대' 다녀"…'주홍글씨' 된 출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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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25 06:00:00 수정 : 2017-05-25 20: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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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지상주의에 우는 지방대생들
#1. “왜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그런 학교에 다녀?” 서울 송파구에 사는 이주혁(25·가명)씨가 스무 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고교 시절 성적이 반에서 중하위권이었던 이씨는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한다’는 생각에 대전의 한 사립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가 밀려왔다. 고교 친구들은 물론 대학 선배와 동기들까지 이씨의 학교를 ‘지잡대(지방에 있는 잡 대학)’라며 비아냥거렸다. 그는 “한동안 친구들이나 친척들을 만날 땐 편입 준비 중이라고 둘러댔다”며 “창피한 것보단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힘들다”고 털어놨다.

#2. 전북지역 한 국립대에 다니는 신혜빈(22·여)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제협력기구 입사를 꿈꾸며 동아리와 해외봉사, 어학연수 등으로 학창생활을 알차게 꾸려온 신씨는 4학년이 되면서 학교 소재지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고 느꼈다. 그는 한 면접장에서 “수도권 대학원이라도 다녀 학벌을 세탁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은 뒤 꿈을 포기했다.

지방 소재 대학을 졸업했거나 다니고 있는 청년들에게 출신학교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주홍글씨’다. 이들은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취업준비 과정과 그 이후까지 학벌 때문에 놀림거리가 되거나 차별 대우를 받기 일쑤다. 그러나 정부가 지방대생들의 고충을 덜어주려고 내놓는 정책은 약발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 전국 대학생 10명 중 6명이 지방대생


과거엔 이른바 ‘지거국’(지역 거점 국립대)들이 서울·수도권의 대학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는 평을 받았지만, 최근 들어선 이들 대학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대입에서 비슷한 점수라면 지거국보다 서울에서 가까운 수도권 사립대를 택하는 게 요즘 추세다. 이 때문에 아예 캠퍼스를 수도권으로 옮기는 지방대까지 생기고 있다.

24일 교육부에 따르면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4년제대와 전문대에 재적 중인 학생 수는 지난해 기준 173만7201명으로, 전체 대학생의 61.36%를 차지한다. 포스텍(포항공대)이나 카이스트 등 일부 특수한 대학을 제외해도 전국 대학생의 60% 정도가 지방대생이다.

수도권대와 지방대 간 격차는 각종 통계지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지방대의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 평균은 25.3명으로 수도권 대학의 23.8명보다 많고, 교수 1인당 평균 연구비와 논문 수는 6600만원과 0.85편으로 수도권의 8100만원, 1.04편에 못 미친다.

대학의 기술이전수익 평균은 지방대가 2억4300만원으로 수도권대 5억1600만원의 절반도 안 된다. 대학평가의 주요 지표인 취업률은 수도권대와 지방대 사이에 별반 차이가 없다. 취업의 질이 취업률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실력의 차이가 분명하다면 차별이 아니지만 대학 간판만으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라면 시정을 해야 한다”며 “대학들이 서열로 줄 세워지는 건 결코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공고한 학벌 차별에 자신감 잃은 청년들


지방대생들은 대기업 등 주요기업 취업정보가 수도권대에 쏠리고, 정보 격차가 채용 결과로까지 이어지는 구조 아래 점차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악의 청년실업난 속에 지방대생들의 대기업 진입문은 더욱 좁아졌다. 희망을 잃은 지방대생들은 자퇴 후 전문대 등에 재입학하거나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다.

정원희 건양대 창의인재개발원장은 “대기업 취업 결과를 보면 입사자 대부분은 수도권 학생들이고, 영어시험 점수나 학점 등에 큰 차이가 없는 지방대생을 구색 맞추기 식으로 끼워넣는 경우가 많다”며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학생들도 지레 겁을 먹고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

전남의 한 기초자치단체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이진아(26·여·가명)씨가 한 예다. 이씨는 고향에서 명문으로 꼽히는 한 국립대에 입학했지만, 대기업에 취업할 자신이 없어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결국 시험에 합격했지만 그는 “공무원 시험에선 차별을 겪지 않기 위해 일부러 서울 노량진까지 가서 공부했다”며 씁쓸해했다.

대부분 국민도 지방대생들이 겪는 차별이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전국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출신대학에 따른 차별의 심각성’이 ‘심각할 정도로 존재’한다는 응답이 65.3%로 가장 많았다. ‘대학 서열화에 대한 전망’으로는 ‘큰 변화 없을 것이다’가 55.8%, ‘심화할 것이다’가 23.8%로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지방에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수도권 대학으로 몰리면서 지방대생은 ‘나머지 학생’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며 “이 같은 사회적 인식과 함께 모든 분야의 수도권 집중화가 심화하면서 차별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중견기업 100만+ 일자리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 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하상윤 기자
◆ “결국 일자리 문제… 고용협약 등 시도해야”


정부는 2014년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고 지방대생들의 취업난을 해소하고자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지방대학 육성법)’을 제정했다. 이 법 시행령은 ‘공공기관은 신규채용 인원의 35% 이상을 지역인재로 채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역인재란 각 지역 소재 대학의 졸업(예정)자를 뜻한다.

그러나 민간연구기관인 대학교육연구소가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로 지난해 공공기관 311곳의 신규채용 현황을 분석해 보니 신규 채용의 35% 이상을 지역인재로 충원한 기관은 전체의 55%인 171곳에 그쳤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전체 공공기관이 뽑는 인원의 절반 이상이 지역인재다. 현실적으로 지역인재를 뽑기 힘든 연구기관들을 제외하면 시행령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셈”이라고 반박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대학 서열화와 학벌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제정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김은종 사교육걱정 연구원은 “지방대생들의 차별 부분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지만 일단은 차별 금지법을 제정해 채용 과정이나 로스쿨 진학 등에서 학벌로 차별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방대생들이 겪는 차별은 결국 일자리의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설동훈 교수는 “지방대생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며 “일자리가 전국에 골고루 분포해 있으면 장기적으론 대학 서열화까지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설 교수는 이어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 중에 16개 지방 국립대를 서울대 정도로 키우겠다고 한 게 있는데 이 역시 수도권 집중 현상과 대학 서열화를 해소하기 위해 좋은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신광영 교수는 “지역의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기업에서도 지역인재를 많이 뽑는 관행이 필요하다”며 “나아가 지역의 대학과 기업, 공공기관이 고용협약을 맺도록 이어주는 등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김주영 기자, 전주=김동욱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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