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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근로시간, OECD국가 중 최장] 툭하면 연장근무… 규모·업종 구분 없이 '묻지마 노동'

입력 : 2017-05-24 19:16:33 수정 : 2017-05-25 14: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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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개발업계 야근 사회문제 대두/“밤새 사무실 불 켜져 ‘등대’라 불려/ 다들 비슷해 문제의식조차 사라져”
사업체 10곳 중 4곳 평일 연장근로/ 소규모 회사선 가산임금 안 주기도/ 전기가스업체 74%, 휴일마저 반납
다양한 정부 정책, 현장선 ‘헛바퀴’/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 6.4% 불과/ 전문가 “민간기업 적극적 참여 필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서 일하는 A(33)씨는 말 그대로 ‘살인적인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개발 중인 프로그램 발표 시한이 임박하면서 밤샘 근무를 밥 먹듯 하고 있다. A씨에게 ‘주 40시간 근무’는 딴 나라 얘기다. A씨는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워낙 야근이 많아 사무실에 밤새 불이 켜져 있기 때문에 인근에서 ‘등대’라고 부를 정도”라며 “모든 업체들이 열악한 근로 환경에 처해 있다 보니 이제는 문제의식조차 없어졌다”고 푸념했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근로시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게임개발 업계를 중심으로 과도한 근로시간이 사회문제로 대두하기도 했다. 근로시간 문제는 비단 게임업계뿐 아니라 사업체 규모·업종 구분 없이 고착화한 상태다. 정부는 근로기준법을 바탕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노동현장에서는 이 정책들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종·사업체 구분 없이 2000시간 이상 근무


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근로시간 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2016년에 업종이나 기업체 규모, 지역 구분 없이 연간 2000시간 넘게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년 통계가 한국노동연구원의 이번 실태 조사대로 집계된다면 우리나라는 멕시코를 제치고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근로시간이 긴 나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우리나라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2300.4시간에 달했다. 2015년 기준 최장 근로시간 국가인 멕시코(2246시간)와 비교했을 때 54시간가량 많다. 멕시코에 이어 그리스(2042시간), 칠레(1988시간), 러시아(1978시간) 등과 비교해도 월등히 많은 시간이다.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국가는 독일로, 1371시간에 불과했다.


이번 조사에서 사업체별 근로시간은 30∼99인 규모의 기업이 2344.8시간으로 가장 길었다. 이어 △300인 이상 2331.6시간 △100∼299인 이상 2293.2시간으로 조사됐다. 권역별로는 영남권 소재 사업체의 평균 근로시간이 2371.2시간으로, 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었다. 사업체 규모와 업종을 고려했을 때 근로시간이 가장 긴 유형은 300인 이상 운수사업체 종사자로, 연간 2580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300인 이상 도소매업 종사자의 경우에도 2568시간을, 30∼99인 이상 개인서비스업은 2548.8시간을 일했다.

근로시간이 늘어난 주된 이유는 연장근무다. 평일은 물론 휴일에도 연장근로를 실시하는 기업이 태반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평일 연장근로를 실시하고 있는 사업체는 1570개 조사 대상 중 683곳(43.5%)에 달했다. 평일 연장근로를 하는 사업체 10곳 중 2곳 이상은 가산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었다. 5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법정 기준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에 대해서는 시급의 50%를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이런 가산임금은 사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지급률이 낮았다. 5∼29인 사업체의 경우에는 65.3%만이 가산임금을 지급했다.

휴일에도 연장근로를 실시하고 있는 사업체는 32.9%로 나타났다. 휴일 연장근로 실시 비중이 가장 높은 직종은 전기가스업으로 73.8%에 달했다. 휴일 연장근로를 시키는 업체 가운데 23.6%는 가산임금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연장근로 사유에 대해서는 ‘업무특성상 연장근로가 불가피하다’는 응답이 41.5%로 가장 많았고 ‘일시적 수요 급증’(29.9%), ‘관계사 사정’(9.6%), ‘업무과다’(7.4%) 순이었다.

서울 시내 한 빌딩에서 직원들이 야간 근무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 6% 수준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지만 근로시간은 2000시간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근로기준법을 통해 초과근로를 막고 있지만 여러 예외조항 등이 더해져 실제 일하는 시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근로시간 문제는 단순히 복지 수준을 넘어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도입한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사업체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근로 현장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대한 인지율은 73.2%로 비교적 높았지만, 실제 적용 비율은 6.4%에 불과했다. 300인 이상 기업에서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운영하는 비율은 13.9%에 그쳤다. 5∼29인 사업체는 3.9%, 30∼99인 5.5%였다. 근로시간의 시작과 종료를 근로자에게 맡기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실시하는 비중도 8.8%에 머물렀다.

새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정책 방향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법정 근로시간 외에 연장근로, 주말 추가 근로가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근로시간 단축은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법정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볼 것인지, 52시간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근로시간 단축 논의는 너무 먼 얘기”라며 “그렇지만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근로시간이 OECD 국가 수준으로 줄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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