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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의 문자로 보는 세상] 결혼은 사랑의 완성 아닌 시작… 허례허식 벗고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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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27 16:44:24 수정 : 2017-05-30 14: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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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작은 결혼 큰 의미 / 혼주의 위상·인맥 과시하는 자리로 전락 / 최근 ‘스몰 웨딩’ 인기… 결혼 풍속 변화 / 획일적인 예식서 벗어나 개성·의미 담아 / 결혼의 ‘맺을 결’자 길하게 맺으라 의미 / 일제강점기 전까지는 가취·성혼 등 사용 / 소박의 ‘소’자 물들이지 않은 명주실 뜻해
한 국가의 인구가 줄어들면 생산과 소비도 감소하게 되어 국가 경제는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정부는 늦은 결혼과 늦은 출산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대부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늦은 결혼의 원인으로는 늘어나는 청년 실업에 따른 보금자리 마련의 어려움과 과다한 양육비 부담 등의 경제적 이유를 들고 있다. 여기에다 막상 결혼하려 들면 한국 특유의 체면치레로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보여줘야 하는 부담이 있고, 그 비용 또한 경제적 압박으로 다가와 이른 결혼을 가로막고 있다.

결혼이란 남녀가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고, 생활 전체를 공동으로 영위하는 인륜적 관계이다. 개인주의가 강한 서양에서의 결혼식은 절대적으로 당사자 2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의 웨딩파티이지만 집단주의와 인사치레가 강한 한국에서의 결혼식은 결혼 당사자보다 혼주의 사회적 위상과 관계 지도를 보여주는 허례 의식으로 비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어렵사리 성사시킨 결혼식이 진정한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축하의 자리라기보다 체면과 의무에 따른 축의금을 주고받는 자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에 ‘작은 결혼식(스몰웨딩)’ 붐이 일어나고 있다. 진취적인 젊은이들에 의해 작은 결혼식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우리의 결혼 풍속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작은 결혼식이란 불필요한 규모와 허례허식을 줄이고 절차를 간소화한 결혼식을 뜻한다.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고비용의 혼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각 지자체에서 산하 공공시설을 ‘작은 결혼식장’으로 개방 운영하면서 붐이 일기 시작했다.

대구시는 출산 친화적인 환경 조성을 위해 ‘출산 장려 및 양육 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는 결혼을 장려하고 결혼비용의 거품을 빼기 위해 야외 공공시설을 예식장소로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대구시는 또 ‘작은 결혼식’을 위해 하객 의자 배치, 꽃길, 음향장비 등의 설치도 지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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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이태원의 리즈발코니에서 아들과 예비며느리의 요청으로 예약된 양가 친지 70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작은 결혼식을 치렀다. 비용을 줄인다기보다 ‘하고 싶은’ 결혼식을 하겠다는 취지라 했다.

아들이 약혼자와 함께 찾아와 저희가 알아서 작은 결혼식으로 치르겠다고 하기에, 처음에는 체면치레나 축의금 거래 명세 등을 생각할 때 다소 난감했지만, 일단 한번 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했다. 주말마다 바쁜 삶을 이어왔는데, 앞으로는 ‘나를 잃지 않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내심 잘했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작은 결혼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결혼’이 싫다는 것이다. 결혼식은 즐겁고 행복하면서도 성스러운 행사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기쁨 대신에 오히려 큰 부담을 느끼고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이 흔하다. 예단, 예물, 혼수, 결혼식 문제로 얼굴을 붉히고 심지어 결혼을 앞두고 갈라서는 경우도 있다.

양복 한 벌을 해 주겠다는 아들에게 예의상 한번 사양했더니, 와이셔츠와 넥타이만 사 들고 왔다. 아들의 알뜰한 생각에 왠지 서운하지도 않았다. 필자는 아비로서 노트북을 선물했다.

아직도 체면(體面)을 중시하는 오랜 관습 때문에 많은 가정에서 비싼 호텔결혼식을 선택하고 있지만, 당장은 어렵더라도 점차 소박하고 간소한 결혼으로 바꿔야 할 것으로 본다. 결혼식이 그날의 주인공인 신랑·신부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양가 혼주의 사회적 체면과 인맥 관계를 보여주는 자리라면 뭔가 잘못된 관습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큰 것을 좋아한다. 결혼식은 물론 집도 차도 큰 것을 좋아하고, 다리나 도로 이름 등에도 ‘큰 대(大)’ 자 붙이기를 좋아한다.

소박한 작은 결혼식에서 소박(素朴)하다고 할 때의 ‘흴 소(素)’ 자는 누에고치에서 뽑아 올린 물들이지 않은 명주실을 뜻한다. 여기에서 ‘흰색, 바탕, 소박’ 등의 의미가 파생되었다. ‘순박할 박(朴)’ 자는 본래 ‘통나무 박(樸)’으로 썼었다. 가공하지 않은 목재를 뜻했는데, 여기에서 ‘순박하다’의 뜻이 나온다. 박(朴) 자는 ‘후박나무’의 뜻도 있다. 여기의 복(卜) 자는 후박나무의 껍질이 터진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한·중·일 모두 주로 결혼(結婚)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결혼이란 말보다 ‘혼인(婚姻), 가취(嫁娶), 혼가(婚嫁), 혼례(婚禮), 성혼(成婚), 혼취(婚娶), 가약(佳約)’ 등의 다양한 용어를 더 자주 사용했다. 음은 다르지만, 뜻이 같은 단어가 여러 개라는 사실은 결혼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겼다는 증거가 된다.

또 있다. ‘장가들다’는 고어에서 ‘댱가들다, 쟝가들다’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같은 뜻으로 ‘겨집하다, 혼인(婚姻)하다, 가취(嫁娶)하다, 혼가(婚嫁)하다, 성혼(成婚)하다, 혼취(婚娶)하다’ 등의 용례도 보인다.

남자가 결혼하면 ‘장가가다’, 여자가 결혼하면 ‘시집가다’라고 한다. ‘장가가다’는 ‘장인의 집에 가다’라는 뜻으로 데릴사위제에서 생겨난 말로 보이고, ‘시집가다’는 혼례 이후 처가에 온 신랑은 처가를 위해 일하고 신부는 아이를 낳아 어느 정도 기른 후에 ‘시댁(媤宅)에 가다’라는 뜻이다. ‘시집 시(媤)’ 자를 보면 여성이 생각해야 할 곳은 친정이 아니라 시집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시집갈 가(嫁)’는 ‘여자가 시집에 가서 집을 이루다’, ‘장가들 취(聚)’는 ‘여성을 취하다’, 곧 강제로 여성을 빼앗아 가는 탈취혼(奪取婚)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축의금 봉투에 흔히 ‘화혼(華婚)’이라 적는데, 여기에 ‘꽃 화(華)’ 자를 쓰는 이유는 지금까지 지켜온 아름다운 꽃 청춘을 사랑하지만, 이를 아낌없이 버릴 때 귀한 가정과 2세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상징이 들어 있다. 일반적인 풀꽃을 지칭하는 ‘꽃 화(花)’와는 구분된다.

중국에서는 이성지합(二姓之合) 백년가약(百年佳約)하여 부부가 화합하고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는 뜻에서 ‘쌍희 희(囍)’ 자를 많이 쓰고, 일본에서는 신랑·신부를 ‘붙이다, 묶는다’는 뜻에서 반창고(絆瘡膏)라 할 때의 ‘얽어맬 반(絆)’ 자를 흔히 쓴다.

결혼(結婚)에서 ‘맺을 결(結)’ 자는 이왕 맺을 일이라면 ‘길(吉)하게 맺으라’는 뜻이고, ‘혼인할 혼(婚)’ 자에 ‘저물 혼(昏)’ 자가 들어있음은 어둑어둑해질 때 혼례를 올렸다는 것과 이때 점촉 의식이 필요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신혼부부여, 촛불을 끄고 사랑을 밝히라. 결혼이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시작이다. 그리고 자신은 물론 나라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작은 결혼이지만 큰 사랑의 시작에 의미를 두고 행복한 꽃잠 이루길….

권상호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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