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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

기차가 지나가네요, 내 애인은 철로변 집에 살아요.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집과 똑같은 집, 그 집에서 살아요, 우리는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사랑을 나누어요, 기차 바퀴 소리에 놀라 들썩이는 야생 민들레 꽃밭 사이로 날아다니는 자디잔 흰구름은 정말 황홀해요, 나는 황홀한 게 좋아요, 황홀할 땐 어떤 나쁜 생각도 깃들지 못하거든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민들레 씨의 아름다움은 내 애인만큼이나 정말 착해요, 매시간 지나가는 기차처럼 우리 삶에는 머묾보다 떠남이 더 많고, 매번 불타는 그 떠남 속에서 나는 늙어가지만, 나는 내 위로 지나가는 기차 소리가 좋아요, 마음이 저리도록 나를 꼭 껴안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푹 파묻히게 하는 내 애인처럼, 삶은 격렬하고 또한 한없이 적막하지만,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인생은 짧아지고 숨막히는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서서히 세상에서 멀어져가지만, 매번 다시 오고가는 기차 소리는 정말 황홀해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두 줄로 끝없이 이어진 철로, 내 애인은 철로변 집에 살아요, 내 키보다 큰 야생 민들레꽃들이 서로를 덮쳐 내뿜는 쓰라린 망각 속에 황홀하게 피고 지는,

-신작시집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문학동네)에서

◆ 김상미 시인 약력

△1957년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 △2003년 박인환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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